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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8시 동네 근처를 돌아다니던 도중, 어느 한 상점에 제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상점들 영업하느라 바쁠때 유독 한 상점의 불빛이 까만 것이었죠. 그 상점이 동네에서 잘 나가는 한복집인데 설날을 얼마 앞두고 영업을 하지 않더군요. 다른 한복집 영업 시간이 대략 오전 11시~오후 11시(1~2시간 정도 오차 있음) 라는 점을 비춰볼 때, 제가 있던 시간대에 가게내에 아무도 없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한복집 옆에는 떡집이 있었는데 젊은 남성 직원분들이 가래떡을 뽑느라 분주했습니다. 가래떡을 보관할 장소가 비좁아서 한복집 맨앞에 자리를 깔아서 쌓았는데 아무래도 명절이 가까워지다보니 떡 수요량이 많더군요.(직원들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한복집에도 사람들이 즐비하게 있었을텐데 그런 모습은 어제 제 두눈앞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복집 앞 유리창에는 '정리大세일'이라는 문구가 종이에 표시된 것과 함께 '임대'라는 또 하나의 문구가 새겨져 있었죠. 임대라고 씌워진 것을 보면 '다른 상점들이 그런 것 처럼' 한복집이 없어지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없어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실제로는 한복집이 계속 존재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 종이를 보면서 웬지 모르게 가슴이 아프더군요. 예전에 동네에서 많이 번창했던 한복집들이 갈수록 없어지는 모습 말입니다.

 

저는 20년 넘게 신림동 난곡에 있는 어느 모 동네에서 자랐는데, 나이를 먹어갈 수록 한복집들 숫자가 점점 줄어들더군요. 제가 동네에 이사왔을때 한복집들 숫자가 10곳은 충분히 넘었는데 지금은 단 3곳만 남았습니다. 1곳이 제가 말한 그 한복집이고 1곳은 한복과 이불을 함께 겸하는 상점, 다른 1곳은 순수한 한복 전문점입니다. '세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괜히 만들어진게 아님을 실감할 수 있지만, 상점이 없어진다는 것 자체가 제 마음을 아프게 하더군요.

 

저는 어렸을적 부터 한복집들을 많이 구경했습니다. 엄마와 손을 잡고 난곡 종합시장(IMF 이후 없어졌죠)에 가면 한 장소에 한꺼번에 몰린 한복집 6~7집이 제 두눈에 금방 들어왔습니다. 그곳 상인들을 보면 바느질 하랴, 재봉틀 작업 하랴, 물건 나르느랴, 돈을 세느랴 등등 정신없이 일하는 모습들이 '어렸던' 저에게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시장 밖에 나가면 개인 한복집들이 여러 곳 있어서 '한복'이라는 존재감이 제 머릿속을 강하게 각인시켜 놓았습니다. 저희 동네에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들이 많으셔서 그런지 몰라도 어딜가든 한복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한복에 친숙할 수 밖에 없던 것은 시골에 살고 계시던 증조 외할머니가 서울에 오실때면 난곡 종합시장에 있는 모 한복집을 자주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워낙 한복을 자주 입으시던 분이셔서 그 집에서 한복을 자주 맞추셨죠. 어떨때는 저의 엄마가 직접 한복을 받아간 적도 있었는데 그 곁엔 항상 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도 한복을 가끔씩 입었죠.

 

아마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랐는지 몰라도, 학창 시절에 어느 누구보다 바느질을 잘했습니다. 저와 악연이있던 여자 가정 선생님 조차 "이거 너네 엄마가 한거 아냐?"라며 의아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집에 가면 엄마가 재봉틀로 옷을 많이 많드셨기 때문에, 제 머릿속에서는 '나중에 커서 한복집 차릴까?'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의류 디자이너가 촉망받는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어서 한복집으로 성공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IMF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한복집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IMF 이후 바로 없어졌다기 보다는 숫자가 차츰 줄어들었죠. 워낙 한복 가격이 1벌에 최소 10만원 넘다보니(요즘에는 20~30만원이 많지만) 사람들이 부담스럽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한복 대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 시절이어서 한복집들의 매출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죠. 사람들이 한복 입는데 불편함을 느낀 이유도 있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를 구성하는 세대가 차츰 젊어졌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에도 한복을 구입할 수 있어서 오프라인 한복집들에게 타격이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명 오픈마켓 옥션에서는 한복을 중고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데 1벌에 3만원을 넘지 않는 한복들도 여럿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한복은 옷감의 질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쌀수록 더 좋은 옷이라 할 수 있겠지만(비싼 옷 중에서도 옷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간혹있긴 하지만) 옥션 중고를 비롯하여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시더군요.

 

물론 한복집들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수도 있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이 시간이 지나도 항상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취향은 세월이 흘러 변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거리에 나가보면 한복입고 있는 분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 대부분 '요즘 세상에 누가 한복입냐?'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죠. 물론 명절이나 결혼, 회갑, 교회 행사 같은 곳에서는 한복입는 경우가 많지만 평소 한복을 입고 지내는 분들은 대한민국에서 아마 극소수일 겁니다. 이러한 현상이 결국에는 한복집들이 문을 닫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의 전통옷인 한복이 예복화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복을 어떻게 입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매번 명절이 되면 인터넷 뉴스마다 <한복 입는 법>이 단골 소식으로 등장할 정도로 말입니다. 이는 한복이 대중들에게 친숙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러한 현실이 저에게는 아쉽게 비춰질 수 밖에 없더군요.

 

다행히 요즘에는 한복 대여 및 개량 한복이 활성화되고 있고 한복 패션쇼도 꾸준히 개최되고 있습니다. 잘나가는 한복집들 중에서는 브랜드화된 곳들이 여럿 있어서 '한복 대중화'에 힘을 쓰고 있지요. 연예인들이 한복 입은 사진 같은 경우에는 저 같이 젊은 세대들이 주로 활동하는 유명 커뮤니티에서 반응이 뜨겁습니다. 다만 젊은 세대에게 있어 한복 구입할 수 있는 돈이 비싼데다 입을 기회가 적은 것, 신체가 계속 발달하는 이유 때문에 한복입고 다니는 20대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한복이 대중화 되려면 아직 갈길이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저 같은 경우에도 한복 입은지 오래되었습니다. 4년전까지 한복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되어서 못입게 되었죠. 집에서는 가끔씩 입을 수 있었는데 밖에 한복 입고 돌아다니면(주로 집안 행사때)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못입게 되더군요.

 

언젠가는 밖에서 한복을 부담없이 입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있기를 바라며, 현재 한복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 꼭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이 바늘에 실을 꿰어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고운 한복을 지었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옷인 한복이 빛날 수 있으니까요. 그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동네 한복집들도 다시 활성화되어서 제가 20년전에 봤던 것 처럼 많은 사람들이 부쩍 찾는 날이 다시 왔으면 좋겠습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인터넷쇼핑몰까지 겸업하면 매출은 더 오를겁니다. 저의 동생 지인분이 개량 한복집을 그렇게 성공하셨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pulses.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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