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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팬티 어디 갔어? 표시까지 해놨는데도 가져 가냐? 가져간 사람 빨리 내놔라."
"잘 찾아봐. 누가 팬티를 가져 가냐?"
"진짜 없어. 지금이라도 돌려주면 아무 말도 안할 테니까 갖다 놔라. 창피하면 아무도 없을 때 몰래 갖다 놓던가."


평화롭기만 하던 내무실이 팬티 실종사건(?)으로 인해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여분의 팬티가 있었기 때문에 노팬티로 생활해야 하는 낭패를 겪지는 않았지만 내가 입던 팬티를 누군가가 입고 있다는 생각에 찝찝하기 그지 없었다. 만약에 사라진 팬티를 돌려준다고 해도 다시 입기가 영 불쾌했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 병사로 군에 다녀온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병사들 사이에서는 허다한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장교후보생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어서 그런지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저분하게 팬티에 뭔 이름을 그렇게 크게 쓰냐? 다 이유가 있더라

관물대는 장교나 병사나 같다 사진은 병사내무반의 모습. 장교들도 후보생시절에는 병사들과 같은 모양의 관물대를 사용한다. 하지만, 침상은 마루처럼 길게 놓여져 있는 병사들과는 달리 장교들의 침상은 2층침대로 2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관물대가 개방적인 탓에 가끔 내 물건이 '위치이동'하기도 한다.
▲ 관물대는 장교나 병사나 같다 사진은 병사내무반의 모습. 장교들도 후보생시절에는 병사들과 같은 모양의 관물대를 사용한다. 하지만, 침상은 마루처럼 길게 놓여져 있는 병사들과는 달리 장교들의 침상은 2층침대로 2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관물대가 개방적인 탓에 가끔 내 물건이 '위치이동'하기도 한다.
ⓒ 육군훈련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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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후보생이었던 난 1997년 4월 경북 영천에 있는 3사관학교에 장교가 되기 위한 소양과 전술전기를 연마하기 위해 입교했다. 12주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게 느껴지는 기간 동안 난 육군 장교가 되기 위한 고난(?)의 길을 가야만 했다. 오직 목표를 향해 달리는 동안 어려운 난관에 많이 부딪히기도 했지만 목표가 있었기에 견디고 또 참아냈다.

이렇게 힘든 생활을 견뎌내는 참에 내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폭발한 사건이 일어났다. 내 관물대에 각을 맞추어 곱게 정리되어 있던 속옷 한 벌이 사라진 것이다.

힘든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에 들어와서 체육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샤워장에서 샤워를 마치고 다시 내무반에 들어왔는데 그 사이에 사라진 것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래도 내무반에 몇 명의 동기들이 있었던 터라 '본 사람이 있겠지?'하고 동기들에게 물었다.

"내 팬티 누가 가져갔는지 본 사람 없어?"
"왜? 팬티 없어졌어? 내 꺼 정리하느라 정신 없어서 못 봤는데?"
"너는? 너두 못 봤어?"
"나두 내 꺼 정리하느라 못 봤는데?"


난 아무도 못 봤다는 말에 황당해졌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각자 자기 물건을 정리하느라 못 봤다고 말하는 동기들 모두가 의심스러워졌다.

"그래두 내무반에 있던 니들 중에 한 사람이 그랬을 거 아냐?"

갑자기 화도 났다. 물론 아무 것도 모르고 정말 자기 물건만 정리하다가 못 본 동기에게는 미안했지만 이들 중 누구 한 명의 소행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동기들을 발가벗기고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동기들 말대로 팬티에 이름이나 크게 써 놓을 걸'하는 후회도 들었다.

사실 3사관학교에 처음 입교해서 군복과 군화, 속옷 등을 지급받고 나서 내무반에 들어오자 몇몇 동기들이 갑자기 매직펜을 꺼내들더니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새 속옷을 꺼내들고는 속옷 위에 '○○번 ○○○'라고 크게 표식을 하는 게 아닌가!

"병사도 아니고 이름은 왜 쓰냐? 그것도 지저분하게 그렇게 크게 쓰냐?"
"이래야 안 잃어버리지. 잃어버리면 나만 손해 아냐?"
"그건 그렇지만, 누가 속옷을 훔쳐가기야 하겠냐? 병사들은 가끔 그런 일이 있다고 하던데 설마 장교 후보생이나 되는데."
"그래도 모르는 일이야. 너두 얼른 표시해. 어차피 이 팬티는 여기서만 입고 임관하면 새 것으로 다시 사면 되잖어."
"난 됐다. 설마 팬티까지 가져 가겠냐?"


'그 때 동기 말을 들었으면 팬티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하지만, 그 때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난 동기들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그러고 보니까 나만 팬티에 이름을 안 썼잖아? 내 꺼 금방 찾겠네. 괜히 창피당하지 말고 돌려줘라.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좋으니까 원래 있던 자리에다 갖다 놓으면 없던 일로 할게."

말을 마친 뒤 난 나와 같이 샤워를 했던 동료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위치이동'한 거라고? 거 표현 한 번 좋다

나와 함께 밖으로 나온 동료는 웃음기 띤 얼굴로 말을 건넸다.

"갖다 놓을 거 같냐?"
"양심에 맡기는 거지 뭐. 안 갖다 놔두 여분이 있으니까 그걸 입으면 되고. 그리고 갖다 놓는다고 해도 찝찝해서 입겄냐?"
"그럼 뭐하러 찾으려고 그러냐? 어차피 입지도 않을 거라면서."
"팬티가 별 건 아니라고 해도 이번 거 가만 놔두면 또 다른 것두 가져갈 수도 있잖어. 그건 모르는 일이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자유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동료와 난 다시 팬티가 본래의 위치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내무반으로 들어갔다.

내무반 문을 열면서도 속으로는 '제발, 제발 없던 일이 되길'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서서히 관물대 앞으로 다가가는 나를 동기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 있네! 다행이다. 근데 다시 입기는 쫌 그렇네. 이거 입었던 애는 안 찝찝했었나?"

내 말이 끝나자 내무반에 있던 동기들 모두가 웃는다.

"잠시 위치이동했다가 제자리를 찾은 거라고 생각해."
"위치이동? 거 표현 한 번 좋다. 훔쳤다고 하는 거보다 위치이동 거 좋네."
"앞으로 위치이동 당하지 않게 간수 잘 해."
"그래. 당장 이름부터 크게 써 놔야겠다."


그렇게 해서 내무반에서 일어났던 '팬티 실종사건'은 작은 소동으로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난 단체생활을 할 때는 때로는 남들 보기 안좋아도 자기 물건에는 자기만의 표식을 해서 만약 잃어버리더라도 금방 찾을 수 있도록 해야 되고, 때로는 남들이 다 표식을 남긴다면 이와는 반대로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는 것도 자기만의 표식방법이라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영하의 기온과 차가운 바람이 엄습하는 최전방 철책에서 가족들의 안위와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오늘도 임무완수에 여념이 없는 국군장병 여러분들의 노고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며, '위치이동' 없는 내무반에서 남은 복무기간동안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내 인생의 미스터리' 응모작



#장교후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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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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