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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세상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 둔다. 그리고 민주주의 뒤에는 법원이 존재한다. 그러나 판사가 모든 국민의 사랑을 받는 나라는 없다. 승자와 패자가 구분되는 재판을 업으로 삼는 판사는 국민 모두를 민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판사라는 직업이 존경받고, 판사가 독자적인 사상과 철학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를 사법선진국이라고 말한다. 특정 판사가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기에 앞서 이를 논하는 문명의 바탕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 <지혜의 아홉 기둥> 서문 중에서-

 

미국의 밥 우드워드와 스콧 암스트롱이 지은 <지혜의 아홉 기둥, THE BRETHREN>(2008년 12월, 라이프맵 출판, 안경환 옮김)은 민주 사법의 상징인 미국 연방대법원의 내부를 조망한 책이다.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넘어 살아 있는 미국의 양심을 대변하는 연방대법원의 업무에 관한 비사(秘史)이다.

 

연방대법원은 신생 미국에서 초강대국 미국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 동안 헌법을 해석했고, 국가의 근본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법적 쟁점들을 판결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의 내부는 오랫동안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여겨지며 외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벽히 차단돼 왔다.

 

지난 1968년 9월 4일 연방대법원장 임명 9개월 전, 연방고등판사로 일한 보수주의 판사 워렌 버거는 오하이오 주 사법회의에서 "재심이 불가능한 최종판결을 내리는 법원은 다른 법원보다 더욱 엄정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자만의 늪에 빠지기 마련이며, 자기분석에 태만하게 된다.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어떠한 공기관이나 이를 움직이는 어떤 특정개인도 공적 토론으로부터 면제되지 아니한다."라고 했다.

 

이 책은 대법원이 내린 중요한 판결들을 중심으로 각 판사들이 표결, 각종초안, 의견서 작성과정, 중심논지 등을 흥미롭고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이 다룬 시기(1969~1975)는 200여년에 걸친 미국 법조사에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전 세계 사법사를 통틀어 가장 찬란한 진보적 사법적극주의의 금자탑을 세웠다고 평가하는 얼 워렌 연방대법원장이 퇴진하고 워렌 버거, 렌퀴스트 등의 대법원장의 주도아래 새로운 시대 조류를 반영하는 과도였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8년 9월 26일 미시시피 대학 토론회에서 역사상 최초로  민주당 버락 오바마와 공화당 존 매케인 대통령 후보가 흑백대결을 벌였다. 이 장소는 정확히 46년 전, 흑인 학생의 입학을 저지하려는 백인들의 시위로 유혈사태가 발생했던 곳이다. 미국 사회가 반세기만에 이토록 거대한 진보를 이룩한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중심에는 바로 연방대법원이 자리하고 있다.

 

외부적 인종차별의 문제를 둘러싼 극심한 대립의 상황에서도, 진보와 보수, 흑인과 백인의 이분법적 논리를 넘어 헌법정신을 철두철미하게 수호함으로써 미국의 양심이 결코 잠들어 있지 않았음을 전 세계 증명했다.

 

이 책은 분리교육을 철폐하라(1969년도 개정기), 베트남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1970년도 개정기), 음란물을 보면 안다(1971년도 개정기), 낙태판사 블랙먼(1972년도 개정기), 워터게이트 판결(1973년도 개정기), 선출되지 않는 대통령(1974년도 개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1975년도 개정기) 등 시기의 대 사건 판결을 위한 과정의 얘기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현재도 사형제, 동성애자의 권리, 경찰의 직무집행과 개인의 자유, 정교분리의 원칙, 음란물 규제, 재산권의 한계, 집회 시위의 자유 한계, 명예훼손의 법리, 정신장애인의 인권, 외국인의 지위 등의 문제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구체적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현재 우리 법조계 현실을 비추어 볼 때, 교훈적 의미가 매우 크게 다가온다.

 

공동저자인 밥 우드워드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38대)의 사임을 초래한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워싱턴포스트>에 특종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보도는 오늘날까지 탐사보도의 전범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또 2002년 9.11테러 이후 미국사회의 변화에 대한 심층 기획보도로 동료와 함께 풀리처 상을 공동수상했다. 현재 34년째 <워싱턴포스트>에 근무하고 있다. 공동저자 스콧 암스트롱은 현재 Information Trust 사장이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로 일했고 National Security Archive를 창립했다. 상원 워터게이트 조사위원회 상급조사관으로 일한 경험도 있다.

 

번역한 안경환은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다. 미국 로스쿨을 졸업하고 워싱턴과 캘리포니아 주 변호사로 일했다. 1987년부터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국연방법원에 대한 많은 글을 발표했다. 서울대 법과대학 학장, 한국헌법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지혜의 아홉 기둥 - 미국을 움직이는 숨은 저력, 연방대법원!

밥 우드워드 지음, 안경환 옮김, 비즈니스맵(2008)


태그:#지혜의 아홉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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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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