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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네 탓이라고 해도 괜찮아, 그래도 널 사랑할거야.”

 

움츠러들었거나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며 ‘다 괜찮아’ 라고 말해준다면? 딱딱하게 굳은 마음이 열리고 상처받은 마음은 따뜻한 위로로 치유될 것이다.

 

1월 14일(수) 저녁 7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는 ‘박미라의 글쓰기 특강’이 있었다. 주제는 ‘낡은 나를 벗는 시간’으로 가족이 만든 흔적에서 부부관계, 부모대 자식, 이성간 부모자식관계, 동성간 부모자식관계 등 가족경험의 사례를 들어 어느 시점,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에게 글을 쓰는 시간이었다.

 

“한겨레에서 뭔가 행사를 한다 하면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날씨가 꼭 이렇습니다. 그래도 하고나면 뿌듯합니다. 마련한 음료를 드시면서 오붓한 분위기로 강의도 들으시고 내 생활 속에서 잘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글쓰기에 신청해서 선정된 사람들은 15명이었다. 날씨가 워낙 춥기도 했다. 사정상 두 명이 시간이 되도 오지 않자 한겨레 이유진 기자의 변이었다. 기자는 강의가 진행되는 처음과 중간, 마무리에서 감칠맛 나는 말솜씨로 양념역할을 했다.

 

시작하면서 박미라씨는 글쓰기에 바라는 기대들이 크고 다양해서 오늘의 이 짧은 강의가 충족이 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글쓰기에 온 사람들은 남성이 한명이었고 모두 여성이었다. 그 중에 아이를 둔 주부가 반 이상이었다. 나도 그 속에 포함되었다. 여성인 나와 아이의 엄마, 아내, 며느리로 살고 있는 이 시대 여성의 ‘상처’가 어쩌면 남성이나 미혼보다 더 큰 것일까?

 

‘낡은 나를 벗는 시간’으로 우리는 강의를 들으면서 각자 자기 내면의 아이를 떠올렸다. 박미라씨는 내면의 아이는 하나가 아니라 그 이상일 수 있으며, 고통의 강도는 완전히 주관적이어서 긍정적으로 상처를 바라보게 되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가 자신의 어린시절 가족관계에서 받았던 ‘상처’를 얘기할 때 사람들은 모두 자기 안에 있는 내면의 아이와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등에는 서로 바라는 마음이 상충될 때 더 심하게 드러난다. 어머니이면서 연인이나 성모마리아를 기대하거나, 아버지이면서 연인이나 하느님을 기대하는 (기대했던) '나'는 기대가 어긋나면 상처가 된다. 그러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왜 초기 가족관계를 반복하게 되는 걸까? 그건 보고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이다.

 

우리가 성찰해볼 수 있는 내용에서 예를 든다면 '부모가 물려준 심리적 유산은 무엇인가?' 는 내 삶과는 무관한 유산이다. 또 '가족이 물려준 각본은 무엇인가?'에서는 같이 살면서 자주 듣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있다. 가령, '고통을 통해야 성숙해질 수 있다'거나 '일이 그렇게 쉽게 되겠어'라는 말을 들 수 있다. 나도 모르게 내 인생의 각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을 통하지 않고도 성숙해 질 수 있으며, 일이 쉽게 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그럼 내가 받은 상처들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내면의 아이를 발견하고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서 민감해지는지를 알아본다. 내면의 아이를 만났다면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그때 너도 무척 힘들었을 거야. 네 탓이라고 해도 괜찮아. 그래도 널 사랑할거야'라고 진심으로 따뜻한 위로를 보낸다. 과거의 고통은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갈 것이다.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만들어 자기가 원하는 비전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시간여의 짧은 프로그램이 무척 아쉬운 시간이었다. 강의를 듣고 'THE KID'라는 영화를 10여분 동안 감상하면서 '내면의 아이와' 만나는 글쓰기가 시작되자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내면의 아이를 만나 얽힌 감정을 풀고 격려하며 위로를 보내는 중이었다.

 

나도 사춘기때 내면의 아이를 만났다. 내 맘 속에 숨어서 언제나 깊은 열등감으로 남아있는 한 시절. 중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초등학교 남동생을 돌봤던 그때, 부모님마저 우리 곁에 없어서 그리움과 두려움으로 살았던 시간 속에 어린 소녀가 있었다.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누군가 티슈를 내밀었다. 나는 그 소녀에게 돈 벌러 간 부모님이 돌아오고 다시 친구들과 어울리며 교복을 입고 학교로 가게 해주었다. 

 

낡은 나를 벗고 치유된 나가 되기 위해서 글쓰기를 해보면 어떨까? 남한테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으면 글로 풀어내고 태워도 좋다. 글쓰기의 주제는 '내 유년의 외로움에게' '공포에 질린 내면의 아이에게'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따위가 있을 것이다.

 

나는 사춘기의 ‘내면의 아이’를 이제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생길 것 같다. 한 번, 두 번, 내면의 아이를 만날 때마다 상처는 옅어지고 말라가면서 어느새 딱지가 떨어져 나간 줄도 모르고 살고 있으리라. 강의가 끝난 밤 9시가 넘으니 날씨는 칼바람으로 더 찬데 마음 한줄기 따뜻한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최근 박미라씨는 감정치유에세이 <천만번 괜찮아>를 낸 바 있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글쓰기, #박미라, #치유, #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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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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