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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와 개발도상국에게 경제특구 개발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다. 작년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이한 중국 경제의 눈부신 발전 이면에는 경제특구의 개발과 성장이 큰 몫을 차지했다.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인 선전, 경제개발구의 대명사로 꼽히는 쑤저우, 도농복합 경제특구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충칭과 청두의 현실을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전망을 현지에서 조명해 본다. <편집자말>

 

"인구 3만 명에 불과했던 작은 어촌 도시가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성장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요."

 

올해 퇴직을 앞둔 선전(深圳)시 고급 공무원인 천량(58)은 27년 전 처음 선전에 왔을 때를 떠올리며 감개무량해했다. 광둥(廣東)성 차오저우(潮州) 출신인 그는 하급 공무원으로 광저우(廣州)에 근무 중이었다. 1982년 광둥성 수도에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선전시로 발령받은 천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한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천은 "당시 선전은 1979년 바오안(寶安)현에서 시로 승격되고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된 뒤 도시 기반 건설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역사가 유구하고 생활환경이 잘 갖춰진 광저우에서 지내다 선전으로 내려오니 모든 것이 불편했다"면서 "무엇보다 경제특구라는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확신하질 못해 초창기 선전시 공무원들은 업무 스트레스가 다른 곳보다 컸다"고 말했다.

 

그의 회고처럼 선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도시 발전과 성장을 이뤄냈다. 1980년 갓 경제특구로 지정된 선전시의 전체 면적은 3㎢, 인구는 3만 명, 국내총생산(GDP)은 1억760만 위안에 불과했다. 1인당 GDP는 762위안으로 중국에서 가장 못사는 도시 중 하나였다. 홍콩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문화혁명기 선전에서는 자본주의 병폐가 수입될 것을 우려한 홍위병의 활동이 극렬하기도 했다.

 

시 승격 30주년이 되는 오늘날 선전은 천지개벽의 대변혁이 이뤄졌다. 도시 면적은 730㎢로 243배나 늘어났다. 상주인구는 2007년 말 1400만 명으로 467배 증가했다. 전체 GDP는 2007년 6765억 위안으로, 무려 3848배나 급증했다. 1인당 GDP도 2007년 47배인 3만5712위안으로 중국에서 가장 잘 사는 부자 도시가 됐다.

 

세계 도시 발전사에 있어 선전의 고속성장은 과거에 비슷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기적적이다.

 

 

천지개벽의 고속성장 이룩한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

 

선전이 작은 어촌 도시에서 인구 1천만 명이 넘는 초현대식 도시로 탈바꿈한 데에는 경제특구 정책에서 비롯된다.

 

1980년 8월 제5기 중국 전국인민대표자회의(全人代) 상임위원회 15차 회의에서는 '광둥성 경제특별구역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 조치에 따라 선전은 주하이(珠海)와 함께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됐다. 경제특구는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鄧小平)이 채택한 경제 전략이었다. 덩은 경제특구를 통해 계획경제의 구시대적 제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시장 메커니즘을 확립코자 했다.

 

제도적 뒷받침 속에 선전은 사회주의체제 안의 자본주의 도시로 급성장했다. 선전시는 자유로운 상거래와 기업 성장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았다. 외국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좋은 조건으로 공장 부지를 제공하고 금융 융자를 지원해 주었다.

 

기술과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법안을 잇달아 공포하여 기업 혁신의 여건을 조성했다. 선전시가 제정한 경제와 투자 관련 법률은 대부분 중국 최초로 제정된 것으로, 뒤이어 중국 전역에 퍼져나갔다.

 

1990년대까지 선전은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노동집약적 산업을 발전시켜 연평균 27%가 넘는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100여개가 선전에 진출했다. 선전과 주변 도시에서 생산된 막대한 산업 생산품은 선전항을 싱가포르, 상하이, 홍콩에 이은 세계 4위의 컨테이너 물동항구로 변모시켰다. 선전을 중심으로 한 주장(珠江) 삼각주 지역은 세계 최대의 공장지대로 성장했다.

 

선전의 발전은 홍콩이라는 거대한 배후도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홍콩은 천문학적인 자본을 직접 선전에 투자하면서 첨단 금융시스템과 무역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

 

선전에 있어서 홍콩의 역할은 주하이와 비교해 볼 때 확연해진다. 주하이는 마카오를 배후도시로 조성됐지만, 선전에 비해 발전 속도가 더디었다. 마카오는 도박산업을 제외하고 별다른 산업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선전과 같은 해에 경제특구로 지정된 산터우(汕頭)도 배후도시가 부재한 상황에서 발전이 정체됐다.

 

값싼 노동력, 배후도시, 개방적 문화, 앞선 경제전략으로 급성장

 

개방적인 도시 분위기는 선전을 발전시킨 또 다른 원동력이다. 선전은 신흥 이주민의 도시로, 토착문화와 외래문화가 접목하여 독특한 도시 문화를 형성했다. 열린 지리적 특성과 이주민이 가져온 다양한 문화는 선전을 개방성, 포용성, 창조성을 띤 도시로 만들었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문화 토대는 선전이 첨단 디자인 도시로 지정되는 밑거름이 됐다. 작년 12월 7일 유네스코는 아시아에서는 일본 나고야에 이어 두 번째로 선전을 창의성과 혁신성이 뛰어난 도시에게 주어지는 '유네스코 디자인 도시'로 선정했다.

 

창조적 무대를 향해 개척정신을 지닌 다양한 인재가 선전으로 몰려왔다. 네이멍구(內蒙古) 출신으로 베이징의 한 명문대를 나와 변호사로 일하는 후성원(30)도 그 중 하나다. 후는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광둥성 여타 도시와 달리 선전은 이주민이 건설한 도시라 원주민과 같은 조건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전시도 젊은 인재가 새로운 비즈니스에 실패할 경우에 최소한의 위험 부담을 떠안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20세기 말 노동집약적 산업을 통한 성장에서 하이테크 기술산업 육성으로 경제 전략을 수정한 것도 선전의 발전을 지속시켰다. 1992년 선전시는 하이테크 기술산업을 주요 성장산업으로 채택했다. 다양한 법률을 제정하여 기업의 혁신을 독려하고 핵심기술 보유와 최첨단 산업 발전에 힘썼다. 이 덕분에 최근 10년 동안 선전시의 하이테크 기술산업의 총생산액은 연평균 30% 이상 성장하며 4대 핵심산업 중 하나로 발전했다.

 

2006년 선전시 하이테크 기술산업의 총생산액은 1808.17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29.18% 증가하여 중국 도시 중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선전 하이테크 기술산업의 R&D 분야에 종사하는 인구는 7.8만 명에 이른다.

 

발명 특허권과 국제 특허권수도 중국 내 1위, 세계 도시 중 36위로 명실상부한 중국 최고 과학기술도시로 발돋움했다. 작년 6월 12일에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선전시를 '혁신도시'로 선정했다. 선전의 고삐 풀린 도약에는 이처럼 성공적인 산업 구조조정이 한몫 했다.

 

 

사라진 경제특구 메리트, 홍콩과의 경제통합으로 돌파한다

 

폭주 기관차처럼 고속성장을 질주한 선전이지만, 미국발 금융위기와 급변하는 경제상황은 미래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작년 10월 쉬쭝헝(許宗衡) 선전시장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보다 더 혹독한 경제적 시련을 맞고 있다"면서 선전시의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14.7%에서 12%로 낮췄다. 쉬 시장은 "2008년 상반기 선전시 GDP 성장률이 10.5%에 머물렀다"며 "이는 1980년 선전시가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선전은 경제특구로서의 독점적 지위와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에 기대어 중국의 고속성장을 이끌었지만, 이전과 판이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발전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중국 다른 도시들도 전면 개방되면서 경제특구로서의 장점은 사라졌다. 외국 자본을 불러들이던 값싼 노동력도 해마다 20% 가까이 임금이 급상승하면서 매력이 떨어졌다. 이 때문에 지난 2~3년간 선전의 외자 유치는 정체된 상태이다. 도시 발전의 동력이 줄어들면서 2007년 말부터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빠져 신규주택 가격은 40%나 폭락했다.

 

중국은 선전의 미래를 홍콩과의 경제통합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작년 11월 13일 열린 홍콩-선전 경제회담에서 헨리 탕 홍콩정부 수석보좌관과 쉬 선전시장은 금융위기에 대응해 경제통합을 더욱 가속화시키기로 합의했다.

 

광둥성과 홍콩 정부도 홍콩과 선전을 금융, 무역, 물류, 교통, 기술의 중심지로 개발할 계획을 마련했다. 이를 위해 현재 건설 중인 선전 바오안 공항과 홍콩 첵랍콕 공항을 17분 만에 연결하는 고속철도가 2011년에 개통된다. 광저우-선전-홍콩을 잇는 광선강(廣深港) 고속철도도 올해 착공하여 2014년 완공된다.

 

천량은 "선전은 중국 개혁개방의 바로미터와 같은 도시"라며 "경제특구로서의 매력은 사라졌지만 선전의 발전은 곧 중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름하기에, 중앙정부도 지금껏 신경을 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992년 덩샤오핑은 부진한 개혁개방정책을 독려하기 위한 남순강화에서 "당의 기본노선인 개혁개방은 100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지켜야 한다"고 외쳤다. 선전 중심가인 선난(深南)대도 변에 위치한 덩의 초상화 입간판은 선전의 불확실한 미래를 이겨내게 하는 부적과도 같다.

 

 

태그:#선전, #중국 경제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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