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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남편과 베트남인 아내. 이제는 아내도 한국인이다. 다정한 부부는 행복한 웃음을 짓고 카메라 앞에서 서슴없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 다정한 부부 한국인 남편과 베트남인 아내. 이제는 아내도 한국인이다. 다정한 부부는 행복한 웃음을 짓고 카메라 앞에서 서슴없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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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20(토) 오후에 있었던 일로, 사실은 지난해 말에 쓰고 싶었던 글이다. 글을 쓰려고 몇 번 마음먹었지만, 연말의 다사다난하고 번잡 무성한 곡절 속에서 막상은 실행을 할 수 없었다. 덧없이 시간을 잃고 세월을 넘기면서 포기를 했는데, 적이 아까운 얘기여서 보름도 더 지난 시점에서나마 굳이 소개를 할까 한다.

태안 사람들은 창의성이 강한 면이 있다. 타지역 사람들보다 앞서서 생각하고 실행하는 일들이 많다. 지난 2007년 12월 5일 저녁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태안군협의회'에서 연 '새터민 초청 위로 및 화합대회'라는 이름의 행사도 그 중의 하나다. 10여 년 전부터 최근에까지 북한을 탈출해 와서 서산과 태안 지역에 자리를 잡고 생활하고 있는 새터민 33명을 초청하여 가진 행사였다.

2007년 12월 7일 '기름유출' 사고 이후로는 언제 어디서나 넥타이를 매지 않고 운동화를 신고 생활하는 진태구 태안군수가 이날(2008-12-20)은 군복 차림을 했다. '베트남참전유공자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 진태구 태안군수의 축사 2007년 12월 7일 '기름유출' 사고 이후로는 언제 어디서나 넥타이를 매지 않고 운동화를 신고 생활하는 진태구 태안군수가 이날(2008-12-20)은 군복 차림을 했다. '베트남참전유공자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 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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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행사는 2008년 12월 17일 저녁에도 '새터민 위안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져서 해마다 지속될 행사임을 알게 해주었는데, 2007년의 1회 행사에 관해 내가 12월 13일 오마이뉴스 지면에 <북한에서 온 '새터민'들과 처음으로 가진 즐거운 시간>이라는 글로 자세히 소개한 바 있으므로 2008년의 2회 행사에 관한 소개는 피하기로 한다.

2008년 12월 20일 저녁 태안읍 동문리 '동문웨딩홀'에서는 '(사)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태안군지회 창립 제10주년 기념 다문화가정(베트남 출신) 초청 위안의 밤'이라는 다소 긴 이름의 행사가 있었다. 베트남참전유공자전우회 태안군지회(지회장 유영태)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베트남에서 시집을 와 이루어진 태안 지역 36개 가정의 부부들을 초청하여 가진 행사였다.

이 행사 역시 평통 태안군협의회에서 연 북한 새터민 위안의 밤 행사와 마찬가지로 전국에서 최초로 태안에서 이루어진 행사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을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태안군지회에서 착안하여 맨 먼저 시행을 한 것이다.

나는 이 행사를 계기로 우리 태안 지역에 베트남에서 시집 온 여성들로 이루어진 가정이 36집이나 되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베트남에서 시집 온 젊은 여성들을 30여 명이나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 지레 묘한 설렘을 갖게 했다. 그런 행사를 기획한 전우회의 집행부에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베트남참전유공자회'와 '고엽제전우회' 회원인 기자는 '내빈 소개' 때 태안예총회장을 소개하는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일어서서 참석자들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오랜만에 입어본 군복이고, 오랜만에 해본 거수경례였다.
▲ 오랜만의 군복차림과 거수경례 '베트남참전유공자회'와 '고엽제전우회' 회원인 기자는 '내빈 소개' 때 태안예총회장을 소개하는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일어서서 참석자들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오랜만에 입어본 군복이고, 오랜만에 해본 거수경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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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회 유영태 회장과 가길현 사무국장, 그리고 고엽제전우회 신현규 사무국장이 내게 축시를 부탁할 때는 더욱 고마운 마음이었다. 전우회원 중에 시를 짓는 문사가 있는 사실을 모두 잘 알기에 손쉽게 축시 낭송 계획이 수립되었겠지만, 그런 뜻 깊은 행사에 시 낭송 자리를 마련해준 그들이 정말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행사에 150명 가량의 전우들이 군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전우들 중에는 진태구 태안군수도 있었다. 진 군수도 물론 군복 차림이었다. 2007년 12월 7일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 이후로는 언제 어디서나 넥타이를 매지 않고 운동화만을 신고 생활해 온 그가 이날은 군복을 입고 행사에 참석했다. 모든 전우회원들의 눈에 더욱 친숙하게 보일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 행사 덕분에 나도 모처럼 만에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어보았다. 조금은 군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기도 했다. 군복차림의 모든 전우회원들이 하나같이 정답게 느껴졌다. 비록 거의 환갑 나이를 넘긴 늙은 모습들이었고, 더러는 병고를 겪는 모습이 안쓰러움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배낭 지고 월남의 정글을 누비던 젊은 시절의 잔영(殘映) 같은 것, 긴장감으로 눈을 번뜩이는 전투병의 모습이 얼비치는 것도 같았다.  

베트남 전장에서 나는 무려 100편의 시를 외웠고, 회식이 벌어지는 막사들을 찾아다니며 시낭송을 즐겼다. 군대 시절 이후로는 무려 37년 만에 군복 차림으로 시낭송을 해보았다.
▲ 노병의 시낭송 베트남 전장에서 나는 무려 100편의 시를 외웠고, 회식이 벌어지는 막사들을 찾아다니며 시낭송을 즐겼다. 군대 시절 이후로는 무려 37년 만에 군복 차림으로 시낭송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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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장 안에 부부끼리 앉아 있는 사람들, 베트남 출신 젊은 여성들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눈으로 인사를 교환하기도 하고, 다가가서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특이한 정다움을 가슴 가득 안는 기분이었다. 군대 시절 베트남에서 자주 보았던 아가씨들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백마사단 도깨비연대 1대대본부 사병 식당에서 거의 매일 보았던 아가씨들은 지금도 내 앨범 속에서 미소를 지고 있지…. 그 아가씨들도 이제는 할머니들이 되어 있을 거야.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앳된 여인들은 그 식당 아가씨들의 영락없는 그 시절 모습이야. 그녀들의 딸이요 손녀들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잠시 그리움에 젖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의 남지나해 항해를 마치고 나트랑 항에 내렸을 때, 트럭을 타고 거리를 지나며 처음으로 보는 베트남 여성들의 가는 허리, 삿갓 같은 모자 밑으로 흘러내리는 긴 머리칼, 바람에 펄럭이는 아오자이 자락들을 정신 없이 바라보곤 했던 그 날의 아슴한 기억 속으로….

행사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정숙하고도 진지한 자세로 내 축시 낭송을 들어 주었다. 앞줄 오른쪽부터 유영태 베트남참전유공자회 태안지회장, 진태구 태안군수, 이용희 태안군의회의장, 유익환 도의원
▲ 축시 낭송을 듣는 이들 행사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정숙하고도 진지한 자세로 내 축시 낭송을 들어 주었다. 앞줄 오른쪽부터 유영태 베트남참전유공자회 태안지회장, 진태구 태안군수, 이용희 태안군의회의장, 유익환 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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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관장들과 함께 맨 앞자리에 앉았다. 예총 회장이라는 직함이 있어서 대접을 받은 셈이었다. 사회자가 '내빈 소개' 시간에 소개를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예총 회장이나 문인으로서보다는 군복을 입은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회원으로서 참석하고 있는 사실이 기쁘고도 다행스러웠다.

행사는 국민의례 다음에 진태구 군수, 이용희 군의회의장, 유익환 도의원 순으로 축사를 했고, 이어서 내가 축시 낭송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36쌍의 부부들에게 갖가지 선물을 전달하고 기념촬영을 하는 일이 오래 진행되었다. 그 다음은 즐거운 만찬 순서였다.

나는 초청 형식으로 와서 축시 낭송을 해준 외부 인사가 아니었다. 주최측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말해 당사자 처지에서 군복 차림으로 축시 낭송을 한다는 사실이 이상한 감회를 가지게 했다. 나는 군대 시절로 돌아간 듯 우렁찬 소리로 축시를 낭송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행사에 참석하면서 꽤 많이 축시라는 것을 낭송해 왔지만, 이번처럼 힘차게 낭송을 한 적은 없지 싶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축시 낭송들 중에서 가장 힘차게, 가장 감동적으로 낭송했지 싶은 그 시를 여기에 소개해 본다.     
             

베트남참전유공자회 태안지회가 정성껏 마련한 갖가지 선물들을 받으며 즐거워하는 베트남 출신 새댁들
▲ 선물 전달 베트남참전유공자회 태안지회가 정성껏 마련한 갖가지 선물들을 받으며 즐거워하는 베트남 출신 새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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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땅에서 온 딸들을 사랑하자
―베트남참전유공자회 태안군지부 창립 10주년 기념
다문화가정 초청 위안의 밤 행사를 경축하며

우리 모두에게
월남, 베트남이라는 이름은 각별하다
각별한 정다움 속에서
오늘도 인연의 강이 흐른다

1964년 7월 18일부터 시작된
인연의 강은
시작만이 있을 뿐이다

인연의 강물 위에 떠서 오가던
전쟁이라는 이름의 배는
1973년 3월 23일 닻을 내렸지만

그 후로도 끊임없이 흐르는
인연의 강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장엄한 역사의 강이 되었다

인연의 강
장엄한 역사의 강은
32만 전우들만의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강이다

5천여 전우가 산화하고
1만6천여 전우가 피를 흘리고
절대 다수가 고엽제를 접했던 그 땅은
우리 한국인의 피와 땀과 눈물이 수 놓여진
깊은 인연의 땅이 되었다

그 인연의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늘의 젊은 세대는 모두
우리 참전 전우들의 아들딸들이다
대한민국과의 인연 속에서 태어났으므로
우리 모두가 살피고 보듬어주어야 할
우리 인연의 2세요 3세들이다

우리가 숨을 놓고 피를 흘렸던
그 인연의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의 귀한 딸들이
대한민국으로 시집와서 가정을 이루고
한국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시각에도
인연의 강은 생동하며 흐른다

대한민국 땅에서도 충청도 태안 땅으로 와서
보금자리를 튼 우리의 딸들
36개 가정을 축복하는 이 자리,
베트남참전유공자회 태안군지부가
국내 처음으로 마련한 이 행사는
한 그루 아름답고도 우람한 꽃나무다

오늘 우리 다 함께
저 인연의 땅, 인연의 강을 아우르는
우리의 꽃나무, 우리 스스로 가꾸고 꽃피우는
오늘의 꽃나무를 사랑하고 축복하자

이 꽃나무를 오래오래 가꾸고 사랑하며
한국인이 되고 태안 사람이 되어
우리 고장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베트남 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자

그리하여 우리 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아기자기한 삶의 미덕들을
고귀한 가치와 의미들을
더욱 힘차게 꽃피어 가자!

(2007년 12월 20/토 오후 5시 태안읍 동문장 행사장에서 낭송)  

다문화가정 부부가 36쌍이나 되다보니, 가족들과 내빈들, 베트남참전유공자회 집행부가 함께 하는 기념 촬영을 여러 차례 나누어서 해야 했다.
▲ 다문화가정 기념 촬영 다문화가정 부부가 36쌍이나 되다보니, 가족들과 내빈들, 베트남참전유공자회 집행부가 함께 하는 기념 촬영을 여러 차례 나누어서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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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베트남참전유공자회, #다문화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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