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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설 때는 하늘이 말짱했다. 일기예보(서해안 제외, 눈)가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우린 신나게 달렸다. 목포를 향해서. 대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할 즈음 조금씩 불길한 예감이 끼어들었으니, 바로 그 문제의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 것. 그것이 하늘에서 나풀나풀 날아 우리 신랑 어깨에도 내 머리에도 살포시 내려 앉으며 우리 마음을 애태웠다.

 


우리 신랑은 눈발을 외면하고 싶었는지 목포는 서해안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지만, 중간중간 뜸하던 눈발은 목포에서도 영암에서도 조금도 기죽지 않고 펑펑 내려서 쌓여갔다.

"그래도 눈을 보니까, 겨울 풍경다워서 좋긴 하다, 그치."

위안삼아 눈을 보며 말은 하지만 결혼하고 첫 번째 나선 해맞이라 끝까지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모양. 급기야 원망의 눈길이 눈으로 간다.

 

"눈도 참 대단하다. 웬 눈이야 대체!" 

 

애초 목포 유달산에서 해넘이를 보고 영암에서 해돋이를 볼 예정이었다. 일기예보는 불과 하루 전에도 전국에서 해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했고. 그 말을 믿은 우리는 천리길을 마다않고 달린 것이다. 그런데 눈발이 어찌나 탐스러운지 일몰은커녕 일출도 장담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아침을 위해 영산강 하구둑을 건너 영암에 숙소를 잡아놓고 아침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현대호텔로 갔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거리였다. 답사를 하면서 의구심이 생겼다. '해맞이라면 엄청난 인파가 몰려올텐데, 어쩌려고 호텔 야외광장에서 치르겠다는 거지.' 암튼 직접 가서 보니 전망은 엄청 좋았다. 영산호와 농경지가 바로 눈앞에 넓게 펼쳐져 있는 게 아이들 말로 하자면 정말 짱이었다.

숙소도 잡았겠다. 슬슬 목포로 다시 이동. 그러나 워낙 퍼붓는 눈이 무서워 유달산은 포기하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목포 시내를 빠져나와 그냥 숙소로 와 버렸다. 잘못하다간 숙소에도 못오고 길에 갇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 따뜻한 방에서 일찌감치 쉬는 게 낫겠다며.

바람소리, 물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지만 설마 하면서 눈을 떴다. 여전히 눈보라는 치고 도로는 하얗게 눈에 덮여 있는데, 자동차들은 간간히 나타나 행사장을 향해 달려갔다. 게으른 우리는 '눈이 오는데 행사를 하긴 할까?' 긴가민가 하다가 마지못해 일어나 꾸물꾸물 준비하고 나섰다.


불과 5분 거리. 그런데 이미 행사장은 차량 통행금지. 호텔 아래에 있는 테니스 장 주차장으로 차들을 몬다. 세상에 거기도 거의 다 찼다. 그 추운데 교통경찰들은 얼굴이 얼어붙은 채 서서 수신호로 차들을 보내고 사람들은 완전무장하고 종종 걸음을 친다. 그리고 우린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리 그래도그렇지 이 추운 아침 눈보라에 아기들까지 데리고 행사장으로들 간다.

 


그러나 동쪽 하늘은 구름이 가득. 행사는 시작되고 군악대의 연주가 힘차게 흘러나온다. 곧이어 영암군수님의 신년사가 있고 구름에 가린 해가 미처 얼굴을 드러내기도 전 희망풍선이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리고 쬐끔 해가 얼굴을 보여주었다.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던 우리, 더 참지 못하고 사람들이 몰려 있는 실내로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지 우리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있었으니, 바로 떡국이 우리를 맞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우리 신랑은 행사에 가면 먹을 것을 많이 준댔다고 기대가 대단했지만, 난 솔직히 믿지 않았다. 줘 봐야 떡이나 커피 정도겠지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건 호텔 컨벤션 센터를 통째로 해맞이 행사에 내준데다가 떡국까지 주다니!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웨이터가 안내를 했다. 안으로 쑥 들어가라고. 시키는 대로 들어가보니 안에서도 떡국을 푸고 있었다. 우리는 떡국을 받아들고 탁자에 가 서서 먹었다. 탁자에는 김치와 시루떡이 놓여 있었다. 곧 단상에 지역유지들이 올라갔고 사랑의 떡 자르기 행사가 진행되었다.

 

 

군수님을 비롯, 다양한 계층의 인사가 모여 떡을 자르고 덕담이 이어졌다. 떡국을 나누는 일은 부녀회에서 했다는데 모두 3500인분을 준비했다고 한다. 떡은 탁자에 놓인 것만도 10말이 넘는다니까 준비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했는지 정말 감동적이었다. 

 

떡국을 먹고 로비로 나와 손님을 위해 마련해 놓은 소파에 앉아 쉬면서 안내 책자도 읽고 비즈니스센터에 들러 인터넷 메일도 확인했다. 이 지역에 하나뿐이라는 특급호텔이 주민을 위해 이렇게 큰 역할을 하다니 정말 놀라웠다. 해는 조금밖에 못봤지만 푸짐한 행사와 극진한 대접에 다른 어느해보다 마음이 훈훈해진 날이었다.


태그:#해맞이,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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