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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0에 스스로 이름을 감춘 '촌노인'이 되려고 했던 까닭은 아내와 나의 건강을 챙기면서 살겠다는 뜻도 있었지만 그보다 부당한 권력 남용과 경제적 불평등, 어지러운 사회 문제 등과 거리를 두겠다는 의도가 더 강했다고 본다.

 

이따금 완곡하게 현실의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비교적 관망하고 살려는 노력을 많이 한 셈이었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하고 숨죽여 살기에 나는 아직 젊은 것일까. 2008년은 날마다 군부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아 악몽에서 헤맨 한해였다. 대통령과 그 일당들이 하는 꼴을 보면서 원망과 울분으로 몸살을 앓았던 시간이 많았던 때문이다. 

 

분별없이 소란스러웠던 인수위의 친미적인 작태, '고소영' '강부자'라는 새로운 조어를 만든 대통령의 인사, 남북관계의 경색을 자초하는 발언, 촛불시위에 반성했다고 고개를 숙여 정말 반성하는 줄 알았던 국민들에게 책임을 묻는 공안정국 조성, 참혹하게 무너지는 경제, 그 와중에서 부자들만을 위한 사실상 종부세 폐지, 방송 장악을 위한 비열한 음모, 교과서 논쟁, 일제고사 실시와 거부했던 교사들의 중징계, 그리고 공무원 숙청, 운하 계획을 국민에게 알린 연구원에 대한 징계….  아무리 잘한 일을 찾으려 하지만 너무 막나갔다는 생각뿐 서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정치는 없었다.

 

사실 이런 세상이 오리라는 것은 1년 전 대통령 선거당시부터 예견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이명박 후보에겐 도곡동 부동산, BBK 의혹, 자녀들의 위장 취업 등 많은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오직 747을 앞세우는 보수언론의 선동에 놀아난 국민들이 진실에 눈을 감았을 때 국민의 고통은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명박 대통령과 그 일당들에겐 소통과 화합의 정치, 국민을 살리는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절망과 고통을 강요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 없이 가난한 서민들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면서도 반성은커녕 매사에 전임자 탓이나 하고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발뺌이나 하는 대통령, 진실성 없고 겸손하지 못한 언행으로 다수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은 대통령에게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 도청 앞의 크리스마스 츄리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그 화려함도 빛을  잃고 말 것이다.
옛날 도청 앞의 크리스마스 츄리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그 화려함도 빛을 잃고 말 것이다. ⓒ 홍광석

 

오늘은 성탄절이다. 오후에 멀리 한천면에 있는 참샘에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산속에 있는 허름한 오두막을 보면서 나는 문득 옛날 교과서에 나왔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물론 우리나라 헌법도 노예는 인정하지 않는다. 참혹한 노예제도가 인정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또 지금 우리는 노예제도를 인정했던 당시 미국과 비교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당시 미국의 현실과 오늘 우리의 현실이 부분적으로 겹쳐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다 그렇게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멈출 수 없었다.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는 이명박 정부가 지금 하는 일을 보고 있으면 사상의 자유를 통제하고 국민의 입을 막고 눈을 가리려 하면서 영혼 없는 노예이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돈에 팔려 다니는 영혼 없는 존재가 아니다. 국가는 월급으로 인간의 양심까지 산 것은 아니다. 의롭지 못한 권력과 부당한 자본에 저항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요 의무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었다고 세상의 모든 권세를 장악한 것처럼 인간을 전리품 다루듯 한다면 야만의 시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흑인 노예들의 피땀으로 부를 축적해 화려한 교회를 세우고 그 안에서 자신의 부와 명예가 신의 축복이라며 찬양과 기도를 올렸던 백인들과 짐승의 우리 같은 오두막에서 인간이 되고 싶다고 했던 톰의 기도가 유난히 대비되었던 것은 나만의 상념이었을까?

 

개인뿐 아니라 동반 자살하는 가족이 많이 있음에도 가난은 개인의 책임일 수밖에 없는 나라. 영혼과 양심이 없는 공무원이기를 요구하는 나라. 대통령과 부자들의 의도에 맞추어 춤을 추는 헌법기관과 사정기관, 대통령의 충견노릇이나 하는 권력기관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나라. 어떤 재벌들은 은행 설립을 꿈꾸고, 어떤 재벌은 전략적인 공항의 활주로 방향까지 바꾸어버리겠다고 우기는 나라. 과거 유정회보다 못한 작태를 보이고 있는 자들이 여당의원이라며 국회를 통법부로 전락시키고 있는 나라. 권력자들과 재벌과 부자들만의 잔치만 이어지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내가 믿는 신은 과연 사랑이요 정의인지, 인간의 야비한 만행이 통하는 사회, 거짓과 폭압이 오히려 세상의 권력을 장악하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권력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갔던 옛날 유정회를 연상시키는 여당의 국회의원들의 작태를 보면서 정치인들에 대한 노여움을 품었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안다. 교회가 의로운 사람들이 온정과 평화를 나누며 연대를 다지는 곳이라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나는 끝내 오늘 성탄 미사에 가지 않았다. 거짓 회개와 거짓 사랑과 거짓 평화를 기도하는 자들이 앞에 앉아 있는 자리라면 참석하는 나도 한 사람의 '백인'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의는 승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죽은 후에 이루어지는 정의란 죽은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자유로운 인간이고 싶다'는 흑인 노예의 기도가 떠오르는 날이었다. 과연 내년에는 소통과 화합의 정치, 서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정치는 이루어질 것인가? 

덧붙이는 글 | 만나는 사람마다 대통령 때문에 나라가 추락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그러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안되는 줄 알지만 성탄 미사도 거른 채 아내와 멀리 드라이브를 갔다가 온 후 우선 나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몇자 메모를 해봤다.  이글은 한겨레 필통에도 옮긴다.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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