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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도 기울고 사람도 기울고 그렇게 세상도 기울었나보다. 1940년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나 열 세살 어린 나이때부터 이미 날카로운 필치를 자랑해온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10번째 책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르네상스 펴냄, 2004)가 보여 준 첫 얼굴이다. 책은 그렇게 세상을 거꾸로 봐야 할 이유를 제대로 꼬집는 지은이 맘을 잘 대변해주면서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로 우리를 이끈다.

 

오늘도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들을 배우고 있다. 그 중에는 사실상 생존기술이라고 해야 할 것들도 적지 않다. 아니, 요즘 우리가 문제시하는 교육 내용이란 대개 생존용인 경우가 많다.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기계를 키우는 것같은 세상에 대해 많은 이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세상이 아름다운 고유 법칙에 따라 잘 운영되고 있다는 전제 아래 배우는 '부당한' 교과과정과 달리 이 책이 소개하는 학교의 '정당한' 교과 과정은 남다르다. 세상이 곧 학교요, 그 학교란 비뚤어진 세상을 비추는 거울 그 자체이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이 학교가 비추는 세상을 비틀고 또 비틀어서 그 속내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여주려 노력한다.

 

"거꾸로 된 세상은 '거꾸로 정신'에 상을 준다. 정직함을 멸시하고, 노동을 징벌하며, 경솔함에 상을 내리고, 잔인함을 북돋아 키운다. 이 학교 교사들은 자연을 중상 모략한다. 불법이 바로 자연법이라고 역설한다. 가장 저명한 교직원 중 한 명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자연실업률을 이야기하고, 리처드 헌스타인(Richard herrnstein)과 찰스 머리(Charles Murray)는 자연법상 흑인이 가장 낮은 계층임을 가르친다.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사업의 성공 비결을 설명하면서 자연은 가장 적합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가장 쓸모없는 자에게 벌을 내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10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세상의 많은 고용주들은 여전히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자신들의 영예를 위해 저서를 집필했다고 믿는다."(<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15~16)

 

가장 적합한 자들만 살아남기?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이 학교 학생이 되는 "어린이들은 어린이다울 권리를 나날이 부정당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어린이다울 권리를 비웃는 현실의 일들은 일상생활에서 어린이들에게 현실 교육을 시킨다." 선택할 수 있는 여지란 사람 사이에 높고 낮음이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뿐이며 섣부른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모두 평등해 보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큰 잔치에 초대해 놓고 수많은 사람들의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 버리는 이 세상은 균등한 동시에 불평등하다. 세상이 강요하는 습관과 생각은 균등하지만, 세상이 가져다주는 기회는 불평등하다." 잘 못 들으셨나? 당신이 이 이상야릇한 학교에서 배우게 될 역설적인 교과과정은 앞서 말한 균등하면서 불평등한 구조 외에 "여성이 남성에게 복종해야 하듯이, 부하는 상관에게 영원히 복종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지배하기 위해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지배받기 위해 태어난다"는 내용이다. 이 두 가지 기본 과정 이름은 '불의'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와 남성우월주의'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일단 남아메리카를 휩쓴 부당한 권력에 거침없이 내뱉는 냉소를 본다. 그리고 한편으론 거부할 수 없는 족쇄처럼 삶을 옥죄는 이 세상의 교육지침들을 본다. 안전을 담보로 폭력을 허락받고, 그렇게 허락받은 폭력으로 진실과 정의를 한껏 비틀어버리는 이 세상을 향해 지은이는 끝없이 냉소를 퍼붓는다. 쓰레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수많은 이웃들을 대신해서.

 

"정의보다는 안전을 선호하는 세상이다 보니, 안전의 제단에 정의를 희생물로 바치는 데 동조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 의식은 거리에서 거행된다. 범죄자가 난도질당해 죽어 갈 때마다 그가 속한 사회는 성가시게 달라붙는 질병 앞에서 한시름 놓는다. 타락한 인간 한 명의 죽음은 안락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약효를 나타낸다. '파머시(pharmacy)'라는 말은 '파르마코스(pharmakos)'라는 그리스어에서 왔는데, 이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던 희생자를 일컫는 말이었다."(같은 책, 93)

 

불필요한 사람은 알아서 사라지거나 사라지게 해야(그러니까, 이 말은 일부러라도 없애야 한다는 말이 되겠지)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아무 생각하지 않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부러라도 뒤집어서 다시 들추어보지 않으면 말이다.

 

이성을 잃을 권리? 부당한 현실을 뒤집는 내일의 현실이라고나 할까...

 

지은이는, 사람이란 존재 자체를 필요와 불필요로 나누고 비용과 산출 비율에 따라 생존 가치를 평가하는 세상에 끝없이 이의를 제기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평가방식을 무슨 정당한 지식이나 되는 것처럼 온 세상에 퍼뜨리는 움직임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옮긴이는 이 책이 마치 인권과 계급을 다룬 르포르타주같다면서 "20세기 성장의 신화와 자본주의에 덮여 있는 거품을 빼고, 시장경제와 신자유주의를 재해석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의 온갖 부조리를 조명하고, 현대적 생활방식이 지닐 수밖에 없는 불의를 고발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그 서술은 매우 예리하고도 우아한 필치를 보여준다고 했다.

 

이에 한층 더 빛을 더해 준 것은 책 여기저기 실린 삽화들인데, 그 삽화들은 멕시코의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가 그린 작품들이다. 이 책에 소개된 그의 삽화들은 우스꽝스럽다고 해야 할만큼 웃음과 씁쓸함을 동시에 지닌 해골 그림들이 많다. 물론 멋지게 옷도 입고 화려한 동작들도 많은 살아움직이는 해골들이다. 그런 모습 자체가 바로 이 세상이 지닌 역설이다.

 

거꾸로 된 세상을 다시 거꾸로 보려는 그의 희망은 결코 희망사항으로만 머무를 수 없는 새로운 목표들을 제시한다. 그 수많은 목표들 중 일부를 함께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보여주는 부당한 현실, 곧 뒤집어봐야 할 현실을 거꾸로 확인할 수 있다. 아 참, 지은이가 전하는 희망들을 한낱 라틴아메리카의 문제로만 여기지 말기를. 그저 그이가 지나치게 세상을 비뚤어진 시각으로 본다고 하지 말기를. 현실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인간의 두려움과 욕망은 독성 물질을 내뿜지 않으리라. 그래서 대기는 깨끗하리라.”

“사람은 일하기 위해 살지 않고, 살기 위해 일하리라.”

“경제학자는 소비수준을 ‘삶의 수준’으로 부르는 일도, 물건의 많고 적음을 ‘삶의 질’로 부르는 일도 없으리라.”

“역사가는 모든 국가가 침략당하기를 반긴다고 믿지 않으리라.”

“아무도 배고파 죽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아무도 소화불량으로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교육비를 낼 수 있는 사람만의 특권이 아니리라.”

“어느 곳에서 태어났든, 어느 곳에서 살았든, 지도와 시간의 국경선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고, 정의와 아름다움에 대한 의지가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민족이자 동시대인이 되리라.”

덧붙이는 글 |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 지음. 조숙영 옮김. 르네상스, 2004.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조숙영 옮김, 르네상스(2004)


태그:#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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