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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까지 깎으려하는 한국 정부와 달리 영국 런던시는 오히려 '생계임금'을 도입해 빈곤층 지원을 늘리고 있다. 사진은 런던 중심가 모습.
최저임금까지 깎으려하는 한국 정부와 달리 영국 런던시는 오히려 '생계임금'을 도입해 빈곤층 지원을 늘리고 있다. 사진은 런던 중심가 모습. ⓒ 김성수

한국에서는 정부와 한나라당이 고령자와 수습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깎아내리고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늘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여 '벼룩의 간'마저 빼먹으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꾸준히 인상하고 있다.

특히, 런던과 맨체스터 등 대도시에서는 물가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비싼 현실을 고려해서,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생계임금'이란 개념까지 도입하고 근무요건을 개선하는 등 노동자를 배려한 정책이 활성화되고 있다. 한국과는 정반대의 정책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보다 3배 높은 영국의 최저임금

영국의 최저임금은 올해에도 상승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쓸고 있던 지난 10월이었지만 영국 정부는 당초 계획대로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시간당 1만1377원(5.52파운드, 15일 환율 파운드당 2061원 기준)이었던 것을 1만1815원(5.73파운드)으로 올린 것.

영국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한국 최저임금의 거의 3배 수준이다. 물론 한국도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4천원으로 올렸지만, 양국의 물가 차이를 고려한다고 해도 영국의 최저임금은 훨씬 높은 수준이다.

존 후튼 노동당 의원은 BBC 인터뷰에서 "나는 최저임금제도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최저임금제도가 많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을 질적으로 달라지게 했고, 그들이 착취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신노동당이 집권한 이후 노동자를 배제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영국 정부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최저임금 제도가 갖는 중요성을 이처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런던시청의 '생계임금'... 최저임금보다 30% 이상 높게 책정

더욱이 런던시청(Greater London  Authority)에서는 최저임금보다 더 수준 높은, 노동자들을 위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올해 당선된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은 자신의 선거공약을 지켰다.

런던시청에 소속돼 청소, 서빙 등을 하는 직원들을 포함해서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5354원(7.45 파운드) 이상으로 보장하겠다고  발표한 것. 이는 영국 정부가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최저임금보다 무려 30% 이상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런던시에서 적용된 임금은 일반적인 최저임금 개념이 아니라 '런던 생계임금(London Living Wage)'이라는 개념으로, 이는 런던에서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 수준으로 산출된 것이다.

요컨대 다른 어떤 지역보다 물가가 높은 런던에서 노동자들이 시간당 최소 1만5354원은 받아야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영국 정부가 세운 획일적인 기준의 최소임금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노동자 처지에서 현실적인 생활비를 고려한 것. 예산 지출 증가가 뻔한데도 이 정책을 시행한 것에는 런던의 어두운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정책적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고, 특히 런던에만 65만 명의 어린이가 빈곤상태인 점을 감안할 때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리스 존슨 시장은 "런던에는 너무 많은 빈곤과 박탈감이 존재하고 있다"며 "나는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 중 하나에 사는 런던시청 직원들이 좋은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이고자 한다"고 밝혔다.

 '런던 생계임금' 운동을 주도한 시민단체인 '런던 시티즌'의 홈페이지.
'런던 생계임금' 운동을 주도한 시민단체인 '런던 시티즌'의 홈페이지. ⓒ 오마이뉴스

한 시민단체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실

런던시의 이러한 결정은 공익적 가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시민단체 '런던시티즌(London Citizen)'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단체는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는 청소부, 서빙 등의 일을 하는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어려운 삶에 주목했고, 수년 전부터 이들의 임금과 생활 수준 등에 대해서 시민운동 및 연구를 활발히 펼쳐오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어려운 삶을 개선시키려면 무엇보다 현실적인 수준의 임금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펼친 것. 이 단체는 단지 구호를 외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대학생과 석·박사 대학원생 등 연구 인력을 조직해 저임금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게 하는 등 그야말로 발로 뛰면서 그 실태를 낱낱이 파악했다.

연구 결과 "저임금 노동자들은 대부분 아프리카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로 주로 청소와 서빙 등의 업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영국 노동조합회의(TUC) 등과 결합해서 런던시로 하여금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만들었고, 이들 기관과 함께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 실태 파악을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런던시 당국이 이들의 요청에 선뜻 동의했다는 대목이다. 런던시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시에 별도로 팀을 조직해서 전문인력에게 최저임금에 관한 연구를 의뢰했고, 그 결과를 수용,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낸 것이다.

윤리적인 민간기업·대학들도 다수 참가... 맨체스터에도 확산

 '런던생계임금'을 연구한 한 보고서.
'런던생계임금'을 연구한 한 보고서. ⓒ 오마이뉴스
이 시민단체는 런던시에 만족하지 않고 런던에 있는 민간기업과 대학교 등도 '런던 생계임금' 운동에 동참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대학생이 중심이 되어 런던에 있는 주요 대학교를 타깃으로 '런던 생계임금' 실시를 위한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써니 훈달은 "심지어는 대학교에서 열리는 채용 박람회까지 와서 대학교 측과 학생을 채용하려는 기업들을 상대로 게릴라식 홍보를  펼치고 있다"며 그 효과가 상당히 좋다고 밝혔다.

그로 인해 KPMG , HSBC, 모건스탠리, 시티그룹 등 세계적인 금융회사뿐 아니라 런던정경대학교(LSE), 킹스칼리지 런던 같은 유명대학 등 총 80여 곳의 기관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게 됐다. 

이들은 이 시민단체의 제안을 받아들여, 직원들에게 (1)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5354원 지급하고 (2) 1년에 최소 20일의 유급휴가를 보내주며 (3) 최소 10일의 질병 휴가 (4)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접근 등을 허용하고 있다.

런던시의 이런 움직임은 영국 중부의 맨체스터에까지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맨체스터시 당국은 최근 심화된 경제 위기의 충격이 저임금 근로자에게 더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시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3891원(6.74파운드)으로 인상하기로 의결했다.

아직 런던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늘려 경제 위기의 충격을 줄여주자는 것이다. 이른바 '맨체스터 최저임금’이 만들어진 것. 버나드 프리스트 맨체스터시 의회의원은 "경제위기로 인한 충격이 이런 노동자들에게 불평등하게 가해진다"며 "맨체스터 최저임금 도입은 가난한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우수한 노동인력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반대로 돌아가는 한국 정부

이번에 런던 생계임금제도를 적극 지지한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은 보수당 출신의 정치인이다. 비록 보수당 소속이지만 그는 심각해지는 경제적 양극화의 문제점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동자들의 고난한 삶을 인식, 이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반면, '보수'를 자칭하는 한나라당과 한국 정부의 모습은 어떤가. 저임금 노동자와 비정규직을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상태로 몰아넣으려 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며칠 전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비정규직법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최첨단 수준의 보호 수준을 갖고 있다"는 근거없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하긴 민주당 의원들 일부도 이번 비정규직법 개정에 지지 의사를 밝혔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이른바 보수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비정규직 활용'을 강조한다. 그러나 과연 누구를 위한 경쟁력 강화인가. 최소한 노동자들이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나서 경쟁력을 운운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이렇게 힘든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재력 있고 힘이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고 고통을 분담해야지, 왜 저임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희생해야 하는가. 양심 있는 보수, 국민의 눈을 최소한이라도 의식하는 정부라면 '런던 생계임금'의 교훈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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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임금#최저임금#런던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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