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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은 동짓날이다. 그믐께 동지를 노동지라 한다. 올해는 노동지인 셈이다. 동지(冬至) 날 아침부터 흰 눈이 나풀나풀 내린다. 세상은 살기 힘들고 시끄러워도 동짓날 눈이 내리니 새해는 상서로운 일이 많이 생기려나 보다.

 해마다 붉은 팥 심어 팥죽도 쑤고 시루떡 고물도 만든다.
 해마다 붉은 팥 심어 팥죽도 쑤고 시루떡 고물도 만든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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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가 동지(冬至)이다. 일 년 중 밤이 제일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이 날은 태양이 부활하고, 생명력과 광명이 다시 솟아나는 날로 절기 중 가장 큰 명절이다. 동지를 지내야 한 살 더 먹는다 하여 ‘작은 설’이라고도 부른다.

낮은 양(陽)이고 밤은 음(陰)이다. 이 날부터 낮은 길어지고 밤은 짧아진다. 낮이 길어진다는 것은 양기가 왕성해간다는 뜻이다. 양은 붉은색이다. 밝음과 따스함의 양기를 붉은색으로 맞이하자면 팥죽만큼 선명한 색깔이 없겠기에 해마다 팥을 심어 죽도 쑤고 팥 시루떡도 만들어 고사를 지내기고 한다.

  팥색을 닮아 손도 마음도 붉어온다. 망나니가 제일 무서워하는 팥색.
 팥색을 닮아 손도 마음도 붉어온다. 망나니가 제일 무서워하는 팥색.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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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가 죽어 외로이 하늘을 떠돌다 동지 날 땅으로 내려와 기둥에 달라붙으면 천연두가 여문다 했다. 이 망나니가 평상시에 붉은 색을 무서워해 동지 날이면 팥죽을 쑤어 대문이나 기둥에다 바르면 천연두가 사라진다고 믿었다. 새알심은 귀신의 나쁜 기운이 서서히 빠져나간다 하고, 뱀 사[巳]자를 써서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집안을 넘보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다.

옛날에 동지 날은 ‘어머니 날’이었다. 요즘엔 카네이션 몇 송이로 끝내 버리지만, 동지 날에는 딸과 며느리는 버선을 지어 바치고 아들들은 아무리 늙고 나이가 먹었어도 때때옷을 입고 노모를 즐겁게 하기 위에 춤을 추었다.

‘엄마, 나 예뻐’ 하고 재롱을 떨면 어느 어머니가 웃음을 참았을까 싶다. 동짓날에 어머니를 깍듯이 대접한 것은 동지 날부터 해가 길어 수명이 길어지길 축원했던 것이다. 재롱을 떨지 않더라도 오늘 동지가 다하기 전에 어머니께 전화나 한 통 해 볼일이다. 그래도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

 동짓날 아침 산촌에 서설이 내린다.
 동짓날 아침 산촌에 서설이 내린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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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팥죽을 쑤어 대문에 뿌릴까하다 참았다. 출입구에 눈 맞은 산수유와 사철열매가 저리도 붉고 맑은데 차마 악귀가 들어올까 해서이다. 비린내 나는 산귀신이 있다면 팥죽 냄새만 맡아도 도망가지 않을까 싶어 먹는 것으로 대신한다.

 오후가 되자 서설이 녹아 더욱 붉어 귀신도 달아날듯.
 오후가 되자 서설이 녹아 더욱 붉어 귀신도 달아날듯.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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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을 먹지 않으면 다음 해에 잔병이 많이 생기고 쉬이 늙는다는 민간신앙이 전해오고 있다. 잔병예방과 노화방지를 위해 오늘 그 옛날처럼 보시기에 팥죽을 담아 먹고 있는데 자꾸만 하얀 눈이 내린다. 삶은 팥은 포근포근, 새알심은 매끌매끌 잘도 넘어간다. 이 정도면 올 건강도 잘 지켜낼 성싶다.

 팥죽을 쑤워 조상신께 건강과 복을 빌고...새알심이 쫀득쫀득.
 팥죽을 쑤워 조상신께 건강과 복을 빌고...새알심이 쫀득쫀득.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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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가 지나면 해가 노루꼬리만큼씩 늘어난다. 실학자 이익(李瀷)은 '길어지는 해 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했다. 내일부터 해맑은 겨울 햇살을 밟으며 새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무병장수나 빌어볼 참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과 농촌공사 웰촌 전원생활, 북집네오넷코리아,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이야기를 방문하면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고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동지 팥죽#국산팥#팥색 닮은 산수유#산수유에 서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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