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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19일이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1년이 됩니다. '경제대통령'을 맞이한 우리는 역설적으로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 최악의 경기침체라는 최악의 경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기업, 부동산, 금융 등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펴온 경제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해봅니다. [편집자말]
"그게 다 쇼여, 쇼…. 뭐, 그동안 변한 거 있간디? …기대도 안 혀."

정아무개(여·53)씨는 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곤 못내 시선을 돌린다. 이어 상자에 담겨 있는 마늘을 다시 까기 시작했다. 정씨가 다시 말을 이었다.

"거 뭐야, 언젠가 TV를 보니까, 저기 어디냐, 대통령이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도 뭐라고 했다고 하더만. 그러면 뭐하냐 말이여. 그냥 그런갑다 하고 말아야지…."

18일 오후 3시께 서울 관악구 봉천11동 재래시장.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평일 오후이어서인지 시장은 한산하기 짝이 없다. 대부분 상점엔 거의 드나드는 손님이 없었다. 거리의 좌판도 크게 다르지 않다. 10여 가지 야채를 내다 파는 정씨의 좌판도 마찬가지. 그는 "우리 같은 사람이야 매년 힘들지"라며 "대통령이 다녀간 것이 뭐가 대수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10개월 전 "서민 잘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당선인이 2월 3일 설을 앞두고 관악구 봉천11동 재래시장을 찾아 설경기를 점검하는 도중 병천순대국밥집에서 순대국을 시식하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이 2월 3일 설을 앞두고 관악구 봉천11동 재래시장을 찾아 설경기를 점검하는 도중 병천순대국밥집에서 순대국을 시식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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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올해 2월 3일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 처음으로 방문한 재래시장이다. 이 대통령은 당시 설 연휴를 앞두고, 별다른 예고 없이 이곳을 찾았다. 시장 상인들은 이 대통령을 향해 "당선을 축하드린다", "서민을 좀 살려주세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한 분식집에서 어묵을 사 먹으며 "서민경제가 잘돼야 재래시장도 잘되고 그래야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시장 한쪽에서 생선을 파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고,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러한 장면은 최근 이 대통령이 새벽녘에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방문했을 때와 비슷했다.

다시 봉천동 재래시장. 이곳에서 만난 상당수 상인들은 "경제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접은지 오래됐다"는 반응이 많았다.

어묵 등을 팔며 5년째 간이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김아무개(42)씨는 "맨날 서민들을 위해 뭐 한다고 하지만, 이제껏 한 번도 제대로 (정부 정책을) 느껴본 적이 없다"면서 "지금도 살기 어려워 하루가 멀다 하고 문 닫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냥 더 이상 망가지지만 않았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또 다른 상인은 좀 더 직설적이다. 그는 "신문이나 TV를 보면, 수십조원을 풀어서 경제를 살린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많은 돈이 누구에게 가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30년 넘게 일하면서 나랏돈에 기대서 살지 않았지만, 요즘 같아선 단 1000원짜리 한 장이라도 준다면 받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 속엔 그만큼 절박감이 묻어 있었다.

암담한 2009년을 살아가는 법

2008년을 마무리하는 한국경제는 정말 절박한 상황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말처럼, 최근 몇 달 사이에 달라진 경제 상황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내년 경제 전망치도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2%대의 성장을 내다보고 있다. 이마저 미국과 중국 등 세계 주요국가들의 경제 성장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줄 때나 가능한 수치다. 따라서 다수 경제전문가들은 내년 성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할 정도다.

이미 시작된 실물 경제 침체와 기업 구조조정, 도산과 폐업 등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주가와 환율은 폭등과 폭락을 넘나들면서 여전히 불안한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당분간 물가와 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고, 가계 소득은 그대로이거나 사실상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다. 그만큼 내년엔 더 힘든 일들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특히 이미 시작된 부동산 버블 붕괴와 함께 가계 부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잠재적 폭탄이다. 주식과 펀드·부동산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거기에 묻어뒀던 자산 가치가 폭락하는 '반토막' 인생이 속출하고 있다.

금리 부담과 함께 가계빚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9월말까지 가구당 부채가 4000만원을 넘어선 상태다. 대신 주가급락 등으로 개인의 금융자산 보유액은 감소했다. 신용불량자와 개인파산이 속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예상치 못한 고통과 괴로운 일들이 닥칠 텐데, 이를 피하거나 도망가선 안 된다"면서 "가계든 기업이든, 도망가지 말고 거품이 있으면 빼야 하고, 과잉투자가 있으면 해소하는 구조조정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구조조정을 피하려고 꼼수를 부리다가는 결국 고통만 더 커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설투자로 경기 부양하겠다는 정부의 꼼수... 후폭풍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오후 경기도 과천정부종합청사에서 내년도 경제운용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오후 경기도 과천정부종합청사에서 내년도 경제운용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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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미래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연일 위기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내년 경제 운용 방향도 일찍 내놨다. 성장률 3%, 소비자물가 3%, 경상수지 100억 달러 이상 흑자, 취업자 10만 명 이상 증가 등이다.

강만수 장관 스스로 3% 성장을 두고 "열심히 노력해 (이룩)하겠다는 목표치"라고 할 정도였다.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은 한마디로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잘라 말한다.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현실성 없는, 낙관적인 수치만 내놓을 뿐 구체적인 정책수단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규모 재정지출과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경기부양을 위한 수단 역시 '녹색성장'과 '한국형 뉴딜'이라는 각종 수식어를 갖다대며, 4대강 정비사업 등 주로 건설·토목공사에 치중돼 있다. 반짝 경기를 살릴 수 있을지 몰라도, 향후 지식경제기반의 성장 잠재력을 쌓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유종일 교수는 "비효율적 건설투자로 경기 부양에 나섰다가는 과거 국가 재정의 빚만 늘어나게 만든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론 이뿐만 아니다. 정부는 위기 극복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각종 주택과 토지, 기업, 환경 등의 규제를 대거 완화할 예정이다. 내년엔 서울 강남 등 부동산 투기 광풍의 핵심지역 등에 대한 투기지역 해제를 비롯해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투기 조장과 무분별한 금융권 지원... 누구를 위한?

규제 완화로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 역시 아직은 정부의 기대일 뿐이다. 경제침체와 위기 상황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푼다고 해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부실 건설사의 구조조정을 늦추고, '부동산 거래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나서 합법적으로 투기를 다시 조장해주는 꼴이 되는 셈이다. 물론 기업이나 경제의 체질 악화와 부작용은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또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 등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30조원을 은행 등에 직접 지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 뻔한 공적자금에 대해 국회의 심의나 동의 절차 없이 진행됐다.

특히 정부는 최근 수년간 계속된, 무분별한 외형 확장과 무리한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인한 은행 경영실패 책임을 제대로 묻지도 않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금융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최종 대부자로서 기능은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사실상 공적자금에 대한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도 없이 집행되는 것은 오히려 기업과 금융권의 구조조정 비용과 시간만 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부실기업과 부실 금융기관이 정부가 대주는 유사 공적자금으로 연명하는 상황에서는, 1980년대 말 버블 붕괴 이후 일본경제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도 장기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마지막 세 가지 제언

김 교수의 말대로 한국경제가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경제주체 사이의 소통 문제를 해결하고, 하루 빨리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과정에서 드러난 소통 실패 문제는 경제 분야 전반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각종 경제 지표와 전망을 두고, 정부 산하 연구기관을 비롯해 심지어 민간 경제연구소 전문가들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지 못할 정도다.

정부의 내년도 경제성장 전망에 대한 인터뷰 요청에,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현 정부 들어서 유독 견제가 많이 들어온다"면서 공개적인 인터뷰는 사양했다. 국책 연구기관의 경우는 아예 정부 쪽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사실상 금기 사항이 될 정도로 위축돼 있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고참급 박사는 "연구자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유지되지 못하고, 자료나 정보가 제대로 오픈되지 않은 상황이 결국 온라인 공간에서 '미네르바 현상'을 가져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지금이라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현 경제팀 교체도 필연적이다.

김상조 교수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감세,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건설 등은 지금 당장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향후 선진각국의 경제정책 기조 변화와도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지금은 위기관리와 국정과제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정부는 건설투자를 비롯한 공공사업 중심의 1930년대식 올드 뉴딜(OLD NEW DEAL) 방식을 버려야 한다"면서 "중산층과 중소기업·영세 자영업·지역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공적자금 투입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부유층을 위한 감세보다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감세로 (정책을 전환하고), 금산분리 완화가 아니라 금산분리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고, 사회경제의 양극화를 극복하는 동반성장의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한국형 제3의 길'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유종일 교수는 "정부가 현명하게 경제위기에 대응해나가면서 구조조정을 질서정연하게 추진하면 기술적으로 금융위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서 "문제는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다 보면, 위기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서로 믿고 따르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정치적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면서 "경제위기를 하루 빨리 극복하기 위해선 갈등보다는 통합을 이끌어내는 정치가 오히려 경제를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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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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