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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노동자 중 800만 명이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중 70%가 여성이라고 한다. 나도 한때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몸담고 살았으면서도, 비정규직의 항의농성은 그냥 기사로만 대해왔었다. 그래서 가슴으로 느껴보지 못했다. 바로 내 문제로 나역시 노동현장에서 수차례 절박하게 겪은 일이었는데도 왜 그렇게 무관심했던 것일까.

 

그런데 한 방송사가 기획특집으로 기륭전자 해고자들의 고공농성 등 농성현장을 취재했다. 아득하게 높은 고공철탑 위에 올라간 조합원을 본 순간 전율이 일었다. 가족이 있는 그들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저렇게까지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는가 싶어 할 말을 잃었다. 그날은 농성 1000일째였다. 그들은 눈에 밟히는 어린 자녀들과 남편을 집에 남겨두고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고공철탑 위에서 싸우고 있었다.

 

눈물겹도록 처절한 투쟁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기자가 다가가 한 달 월급이 얼마냐고 물었다. 70만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입에서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한 달에 70만원, 기초생활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받고 일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측은 이들을 무더기로 해고해버렸다.

 

당장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일용직으로 다시 일하러 나가고 나머지 조합원들은 날마다 나와서 그들의 목소리를 내며 외쳤다. 그렇게 투쟁하다가 권명희씨는 끝내 암으로 숨졌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로 얼마 전에 그의 49재가 열렸다. 저승에서 내려다보는 그의 마음도 농성하던 예전처럼 아프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금융위기에 거리로 내몰리는 비정규직들, 그래서 그들은 투쟁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회사가 어려울 때 가장 먼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투쟁은 이제 1200일이 넘었다. 이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싸워 결국 협상타결을 이뤄낸 이랜드, KTX 등은 예외로 하더라도 비정규직의 문제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삶이 더 팍팍해지면서 비정규직에 관한 사회적 관심은 점점 확대될 수밖에 없다. 오늘 내가 정규직이라고 해서 안심할 처지도 아니다. 오늘은 네 문제가 내일은 내 문제가 된다.

 

세계 인권의 날, 한 조합원은 이렇게 외쳤다. "기륭전자에서 해고된지 만 4년이 돼 간다. 쉽게 썼다 자르고, 또 기계처럼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인권이란 단어는 허상이다. 정기 건강검진을 하는데 비정규직은 포함되지 않는 곳을 봤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하는 건 소모품이나 노예이기를 거부하려는 몸부림이다. 나에겐 투쟁이 곧 인권선언이다." 소모품이나 노예이기를 거부하려는 몸부림, 투쟁이 곧 인권선언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한국 노동운동사, 아니 한국 현대사를 바꿔 놓은 고 전태일의 어머니, 노동운동의 대모 이소선 여사의 일갈이 귀를 쟁쟁하게 때린다. “지금 정규직이라고 천년만년 할 것 같냐”

 

2006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 때 ‘전태일 노동상’을 주고 단상을 내려가던 이소선이 갑자기 뒤돌아 와 사회자한테서 마이크를 낚아채고는, 도저히 그냥 갈 수 없다며 쏘아붙였다는 말이 참으로 통쾌했다.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가슴에 불이 일어 새벽 4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한다는 할머니에게서 도대체 이런 촌철살인 같은 통렬한 외침은 어떻게 나올까. 그것은 분신항거하지 않고 살아있으면 올해 환갑일 아들 때문에 인생이 바뀌어버린 그의 처절했던 삶 때문이 아닐까.

 

“입으로만 노동자는 하나라고 외치면 뭐 하냐. 가장 밑바닥에서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비정규직을 나 몰라라 해서 어찌 민주노총이라 할 수 있냐. 지금 정규직이라고 천년만년 정규직 할 것 같냐. 정규직이 비정규직과 손잡고 싸우지 않으면 얼마 못 가 정규직도 비정규직 신세가 되어 발목에 쇠사슬 차고 노예처럼 일하게 될 거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해달라고 3년 넘게 온 몸으로 외롭게 싸워온 기륭전자 노조원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 싸움으로 그들의 몸과 마음이, 가정이 얼마나 다칠까 안타까웠었는데 아,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할머니가 던진 한 마디에 명쾌한 답이 있었다. 사측이나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을 테니 해법은 한가지다. 비정규직들의 싸움은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모든 정규직들, 내 문제가 아니라고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사람들, 그들도 언제 자기 문제로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모두가 한마음일 때, 그래서 함께 갈 때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


#비정규직#인권#한마음#고공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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