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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너무 해서일까. 나가도 너무 나가서일까. <조선일보>나 <중앙일보>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고 나선 것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초·중·고교에 한국 현대사 교육 보조교재라고 배포한 '기적의 역사'라는 동영상 자료 이야기다.

 

9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교과부의 이 현대사 동영상 자료가 너무 우편향적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모두 "좌편향도 문제지만 우편향도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과부의 현대사 동영상 자료가 한마디로 균형을 상실한 자료라고 비판했다.

 

<조선> <중앙> 눈에도 불편한 '교과부 우편향'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정적 유산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은 채 경제개발의 성과만 강조했다는 지적이다. 또 "현대사의 중요한 축이었던 민주화 운동은 4·19를 빼고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조선일보>)는 점도 꼽았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시 업적인 청계천 복원사업을 영상물 표지로 내세운 것은 낯간지럽다"(<중앙일보>)라고도 했다.

 

<조선일보>는 이런 교과부에 대해 "교육이 문제라니까 아무 고민도 없이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 홈페이지의 영상 자료 등) 당장 손쉽게 눈에 띄는 것을 갖다 쓴 것"이라면서 "이런 교과부에 우리 2세들에 대한 역사 교육 바로 세우기를 맡겨 두고 있는 현실이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공정성·객관성이 요구되는 학생용 역시 학습자료를 이런 식으로 허술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교과부는 학습자료로 부적절한 영상물을 수거해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도 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고교 현대사 교과서 논란이 벌어졌을 때 앞장 서 이들 교과서들이 좌편향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신문들이다. 이런 신문들까지 교과부의 현대사 영상자료가 너무 '우편향적'이라며 당장 회수하라고 나섰을 정도라면 교과부의 영상 자료가 얼마나 '무리한 것'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교과부의 이 현대사 영상자료는 '4·19혁명'을 '4·19데모'라고 하고 있다. 영상 자료들도 시위 장면만을 부각시켰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가 지적한 것처럼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나 87년 6월항쟁, 6·15남북공동선언 같은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한겨레> "이 정권에 대한 쿠데타도 좋단 말인가"

 

<한겨레>는 9일 사설(쿠데타·독재 부추기는 '엠비'식 역사관)에서 교과부의 이 현대사 영상 자료를 "헌법이 수용한 판단조차 무시한 정치선전물"이라고 비판했다. 그 의도에 대해서는 "독재세력을 정당화하고, 그들에게 빌붙어 영화를 누렸던 수구·냉전 세력의 집권을 정당화하고 항구화하며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최악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권력 게임에 올인하고 있는 이 정권에 대해 "그렇다면 이 정권에 대한 쿠데타도 좋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초중고교생들에게 '삐라' 같은 영상물을 현대사 자료랍시고 제작해 배포하는 정권이라면,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기존의 민주주의 성과까지도 모두 전복하는 식이라면 "이 정권에 대한 쿠데타도 좋단 말이냐"고 물은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한겨레>는 정권을 잡았다고 모든 것을 제멋대로 해도 되느냐고, 권력이 역사를 제멋대로 재단해도 되는 것이냐고 물은 것이다. 과거 5·16쿠데타와 12·12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권력을 용인하고, 그들을 높게 평가한다면 이 정권에 대한 쿠데타도 용인될 수 있는 것이냐고 물은 것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교과부의 이 현대사 동영상 자료에 대해 "좌편향도 문제지만 우편향도 안 된다"고 선을 긋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교과부의 이런 정치선동적 행태가 미칠 정치적 파장이 신경 쓰여서 일 것이다. 노무현 전 정권에 등을 돌린 다수의 시민들이라고 하지만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을 미화하는 식의 '정치선동'에 동의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교과부가, 나아가 이 정권이 초중고교생들에게 이런 '삐라' 같은 동영상 자료를 현대사 자료랍시고 버젓하게 배포할 배짱을 키워 준 것은 과연 누구인가.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 논란 때 정상적인 심의과정을 거쳐 채택된 검인정 교과서임에도 이들 교과서가 '좌편향'됐다며 교과부가 나서서라도 당장 고치도록 해야 한다고 다그쳐, 그것을 관철시킨 것이 어떤 신문들이었던가.

 

그런 신문들이 이제 와 "우편향도 문제"라며 교과부를 탓하고 나선 것은 우스운 일이다. 격발시켜놓고, 총알이 왜 튀어나갔느냐고 탓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미처 이런 일까지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알리바이' 정도나 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교과부의 이런 편향된 현대사 자료 배포에 대해 아예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고 있지 않은 <동아일보>나 <국민일보> <세계일보>보다는 그래도 <조선일보>나 <중앙일보>가 낫다고 해야 할까.

 

참고로 <경향신문>은 기사 등을 통해서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하는 한편 이 문제와 맥을 같이하는 '이상희 국방장관의 편향적 역사인식' 문제를 사설로 지적했다.

 

<서울신문>은 사설(역사는 정권의 전유물도, 전리품도 아니다)에서 근현대사 교과서 논란, 건국절 논쟁, 10만원권 지폐 도안 인물 논란 사례 등을 적시하고 "역사는 정권의 전유물도 아니"고 "전리품은 더욱 아"닌데도 "이명박 정부는 역사를 제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 역시 사설(4·19가 데모라니, 교육부는 왜 이럴까)을 통해 "국민의 민주화노력 까지 깡그리 무시한 무지와 무신경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며 "아무리 정권에 맞추는 게 정부라지만 역사 교육의 기본자세조차 갖추지 못한 점에 실망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교과부를 성토했다. <한국일보>는 '기적의 역사'의 즉각적인 회수와 책임자 문책을 촉구했다.

 

그런데 정작 정치권에선 이 문제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역사과 교육, 민주주의가 다 걸려 있는 문제인도 논평 하나 제대로 찾아볼 수 없으니, 그 많은 의원들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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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기적의 역사, #교과부, #우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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