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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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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국경 넘기

암스테르담에서 3일을 보냈더니 주변 풍경들이 익숙해진다. 처음 도착할 때 설레기만 했던 마음은 친근함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제 또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할 때. 시내를 벗어나니 포플러, 은사시, 버드나무, 떡갈나무 등 친근한 나무들이 길 옆을 지키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푸른 초원은 조그만 곡선도 만들지 못하고 하늘과 맞닿아 있다. 군데군데 외따로 있는 농가들은 허전하게만 다가온다. 산이 없다는 게 이렇게 마음을 채우지 못하는가? 김동리의 소설 <붉은 산>이 생각난다.

 국경이 없다보니 차량 번호판에 국가표기를 하게 되어 있단다. 네델란드, 벨기에, 독일 번호판
 국경이 없다보니 차량 번호판에 국가표기를 하게 되어 있단다. 네델란드, 벨기에, 독일 번호판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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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계속 달린다. 오늘 벨기에 국경을 넘어 안트베르펜(앤트워프)으로 가야 한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간혹 영화 속에 나오는 국경수비대의 검문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경을 차로 넘는다는 것은 당분간 경험하기 힘들기 때문에 몹시 궁금하기만 하다.

국경을 지나는 것 같은데 차는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린다. 허무하다. 차라도 멈출 줄 알았는데. EU 국가 내에서는 국경은 형식적인 영역표시일 뿐이라고 한다. 수 없는 전쟁으로 서로 싸우며 살아온 유럽이 하나가 되어 국경을 없애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같은 민족끼리도 줄을 긋고 살아가는 데…. 그저 부럽기만 할 뿐이다.

하나의 나라는 세 개가 되고...

학교 다닐 때 세계사 시간에 나오던 베네룩스(Benelux) 삼국.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왜 이걸 외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외웠다. 그걸 외어야 할 정도로 큰 의미가 있었을까?

16세기 말 네덜란드가 독립하기 전까지는 베네룩스 삼국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하나의 나라였다. 당시 스페인은 네덜란드인들을 멸시하고 종교(신․구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세를 만들어 종교적으로 탄압을 했다고 한다. 이에 반발하여 북쪽으로부터 독립전쟁을 일으켜 스페인을 압박해왔다.

스페인은 무역의 중심이었던 네덜란드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상권과 무역을 현재의 벨기에 안트베르펜으로 옮기고는 회유책으로 종교세를 감면해 주었다. 그런 노력 덕분에 벨기에는 독립전쟁에 참여를 하지 않게 되어 네덜란드와 분리되게 되었다. 하지만 벨기에가 독립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문득 우리나라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하지만 베네룩스 삼국은 2차 세계대전 말기 관세동맹으로 시작해서 베네룩스 경제연합으로 발전하여 결국 다시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결국 EU를 태동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작은 나라였던 베네룩스는 유럽의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EU 본부가 벨기에 브뤼셀에 있다고 한다.

안트베르펜의 밤거리

밤이 늦어서야 안트베르펜에 도착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늦은 밤 산책을 나왔다. 아마 지금이 아니면 도시를 구경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안트베르벤 밤 거리. 거리가 무척 어둡다.
 안트베르벤 밤 거리. 거리가 무척 어둡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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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어둡다. 사람들 유동이 많은 버스정류장 옆인데도 플라타너스 낙엽들이 뒹구는 거리는 황량하기만한 하다. 더욱 우리나라 거리와는 완전 딴판이다. 상점 간판 불빛도 글자정도나 읽을 정도. 무작정 큰 도로 불빛을 따라 걷는다. 커다란 영화관도 있다. 젊은 청춘들이 북적거린다. 하지만 우리나라 밝은 거리에 익숙해서인지 모든 게 어둡게 느껴진다.

거기다가 외국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 불안감을 더한다. 평소에 영어 공부 좀 할 걸.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모자를 눌러쓰고 거리를 걷는다. 어두운 밤거리에 말 못하는 이방인. 혹시나 모를 돌발 상황에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말을 못 한다는 게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누가 말을 걸어올까 무섭고, 키 큰 친구들이 몰려서 가면 불안감은 더해진다.

한참을 걸으니 커다란 건물과 함께 지하철 표지판이 보인다. 지하철이 다니나 보다.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나 할까? 역으로 내려서서 지하도를 걷는데 모자를 눌러쓰고 군복바지를 잎은 키가 무척 큰 놈이 말을 걸어온다. ‘아! 노우.’ 나도 모르게 손을 저으며 내두른 말. 상대가 멋쩍어 한다. 지나쳐 돌아보니 마주 오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다. 이야기 하는 정황으로 봐서 길을 묻는가 보다.

사람이 이렇게 무서워지다니. 구경을 포기하고 다시 길을 되돌아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 아침 일찍 나서야봐야겠다. 근데 지도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용기를 내어 호텔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손으로 네모를 그리면서 ‘트래블 맵?’ 호텔직원은 손가락으로 아래로 가리키며 ‘히어?’ 기쁜 표정으로 ‘예스.’ 대충하는 엉터리 영어도 대화가 되기는 하는구나.

네로와 파트라슈의 슬픔이 살아 있는 안트베르펜 대성당

안트베르펜은 벨기에 제2의 도시다. 밤 풍경이지만 아주 고풍스러운 도시다. 그런 도시를 느껴보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게 너무나 아쉽다. 새벽 일찍 일어났다. 어젯밤 지도도 구해 어디로 갈 것인지 열심히 고민했다.

 새벽 첨탑을 비추는 둥근 달
 새벽 첨탑을 비추는 둥근 달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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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캄한 새벽에 당당하게 서있는 로트르담 대성당
 캄캄한 새벽에 당당하게 서있는 로트르담 대성당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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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기는 무척 청량하다. 가끔 새벽일을 나가는 분들이 보인다. 지도에는 큰 도로로 보이지만 실제 걸으니 골목길 정도다. 그래도 골목골목 전차가 다니고 있다. 은은한 가로등 불빛을 밟으며 새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둡지만 길 주변으로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조금 걸어 내려가니 큰 첨탑이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무조건 탑만 보고 골목골목을 걸어 들어갔다.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웅장한 건물. 와! 아름답다. 가까이 다가가니 아치형 정문을 장식한 작은 인물 조각상들은 섬세하고 사실감이 넘쳐나는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노트르담 대성당(Onze Lieve Vrouwe Kathedraal)은 고딕양식 건물로 탑의 높이만 123m에 이른다. 1351년부터 230여 년에 걸친 공사 끝에 완성되었는데 내부에 장식된 루벤스의 그림으로 유명하다. 옆으로 당시 건축하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성당 문 위의 조각 들과 건축연대를 표기하는 표지판
 성당 문 위의 조각 들과 건축연대를 표기하는 표지판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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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당 광장에 <플란다스의 개>의 무대였을을 알리는 네모난 표지석이 있다.
 성당 광장에 <플란다스의 개>의 무대였을을 알리는 네모난 표지석이 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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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광장에는 작은 표지석이 있다. 어! 일본말로 쓰여 있네. 윗면은 일본말, 왼쪽은 영어, 오른쪽은 네델란드어를 적어 놓았다. 평평하고 네모난 돌 윗면에는 네로와 파트라슈의 그림을 새겼다. 아! 이 성당이 그 유명한 <플란다스의 개>의 무대였구나.

<플란다스의 개>는 영국의 여류작가 위다(Ouida)가 1872년에 펴낸 동환데 당시에는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975년 일본에서 만화영화로 방영되면서 많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게 되었고, 시에서는 기념 표지석을 만들었는데 그 윗면을 일본어로 적었다고 한다.

한때 재미있게 봤던 <플란다스의 개>의 장면들이 오버랩 된다. 네로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루벤스의 그림. 근데 왜 성당의 그림을 볼 수 없었을까? 나도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싶다.

 시청 광장
 시청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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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아쉬움으로 변하고

성당을 뒤로 하고 나오니 커다란 광장이 보인다. 새벽을 여는 부지런한 가게는 장사준비를 한다. 시청 광장이다. 광장 가운데에는 동상이 서 있고 주위로 아름다운 건물들이 둘러서 있다. 대리석을 깎아 장식한 조각들은 건물의 멋을 더해준다. 건물 벽을 만져본다. 차갑다.

아쉽기만 하다. 이런 풍경을 어둠 속에서 감상해야 하다니. 그래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걸어보기로 했다. 강이 흐르고 강변으로 성 같은 건물이 보인다. 도시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강 너머로 둥근달이 여전히 밝게 비추고 있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다. 아쉽다. 다시 올 수 있을까?

일찍 아침을 먹고 안트베르펜을 나서야 했다.

 안트베르펜 아침 거리 풍경
 안트베르펜 아침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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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1월 9일부터 16일까지 다녀왔습니다.



#안트베르펜#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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