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
▲ 키스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키스해줘요 그대 오늘밤 키스해줘요(Kiss me darling kiss me kiss me tonight)'란 아주 유명한 팝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 한 단어만 고치면 아주 딱인 키스의 성지가 있다. 'Tonight'를 'Whenever'로 바꾼다면 말이다.

'어라? 저건 무슨 낯간지러운 작태? 방파제가 무슨 자기 집 침대라도 되는 줄 아시나? 시국이 어느 땐데 벌건 대낮부터 이런 대담한 애정 행각인가? 나, 순수남, 미풍양속을 해치고 솔로들의 가슴에 휑한 절망감만 안겨주는 이런 행동,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환한 표정이 참 좋다.
▲ 아이들 환한 표정이 참 좋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아쉬운대로 해수욕장으로도 사용된다는 사실.
▲ 모래사장은 아니지만 아쉬운대로 해수욕장으로도 사용된다는 사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28년 명품 솔로의 자부심을 갖는 내가 그곳에 간 것부터가 어쩌면 적시에러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유명한 밀회의 장소 아바나 말레콘 방파제 너머로 수줍은 새색시 홍조를 띠 듯 붉게 물든 석양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다시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에 허우적댄다는 것을. 우리에게 물레방앗간이 있다면 아바나 시민들에겐 말레콘이 있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동안에 자꾸 현실을 회피하며 고개를 가로젓기에 바쁘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니, 젊은 친구들이 지금 그게 무슨 행동이요!"
"네?"
"지금 당신들이 이 눈부신 푸른 하늘 아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때마침 말레콘 방파제 너머 펼쳐지는 아름다운 카리브 해의 풍경에 스며들어 마치 한 폭의 영화를 보는 것 같잖소! 당신들의 키스 장면에 흠뻑 매료되어 사진 한 장 찍을까 해서 성큼성큼 걸어왔습니다만. …한 번 더 아까 그 뭐시기…키스하면 안 될까요?"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나 보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미소 한 번 짓더니 정말 뜨겁게 키스한다. 자기들이 무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게이블&비비안 리인 줄 아나. 허리를 꺾는 게 아니라 아예 눕히는 군. 그냥 그대로 카리브 해 바람과 함께 조용히 사라져라.
 
좋을 때구나. 부러우면 지는 거다.
▲ 행복한 연인의 키스 좋을 때구나. 부러우면 지는 거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형, 맘 아프다. 제발, 그러지 마라.
▲ 앗, 너희들까지? 형, 맘 아프다. 제발, 그러지 마라.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저 먼 바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내 고독을 껴 안네.
말레콘에 철썩 부딪히는 그 파도는 내 외로움을 삼키네.
하지만 카리브 바다내음에 슬쩍 묻어오는 연인의 키스는 날 슬프게 하네.

...그리고 미국 국기모양 팬티를 입은 아이의 묘한 대칭.
▲ 쿠바 국기가 그려진 방파제 ...그리고 미국 국기모양 팬티를 입은 아이의 묘한 대칭.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신은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시련을 안겨주는 것일까? 자전거 여행에 마땅한 로맨스 한 번 없다는 것이 가당키나 하는 일인가? 얼어죽을 궁상에 되도 않을 망상만 선푸른 에메랄드 빛 파도의 포말 위로 흩어 뿌린다.

'없는 놈이 죽일 놈.' 아무리 솔로의 편리함과 유익함에 대해 사자후를 토해내도 연인들 앞에 서면 공허한 메아리. 해보나 마나 한 게임이다. 그렇게 뒤돌아서는 자의 어깨는 또 얼마나 쓸쓸하고 무거워 보이는가.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방파제로 여행자들 사이에 정평이 난 말레콘은 연인들의 보금자리이자 천상의 데이트 장소다. 돈 없고, 마땅한 유희꺼리가 없는 그들은 낮이나 밤이나 이곳에 나와서 남의 시선 아랑 곳 않고 온 몸으로 연인을 사랑해 주는 것으로 그들의 삶이자 취미를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이곳에서 솔로는 당연 이방인 취급이다. 아니 누구의 시선 전에 이미 스스로 그렇게 위축된다. 그렇다고 울적한 마음으로 길을 걷다 '아니 근데 저기엔 남자들이 있구나!'하고 반가운 나머지 함부로 뛰어가지 말자. 게이들도 엄연히 한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까. 굳이 같은 동성을 사랑하는 어렵고 험한 길을 택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이성간의 사랑이 존중되는 만큼 동성간의 사랑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게 나눌 수 있는 곳이 관대한 말레콘의 법칙이다.  

귀여운 삼륜 미니택시.
▲ 꼬꼬 귀여운 삼륜 미니택시.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식민지 풍 건물들이 석양을 받아 눈부시게 비친다.
▲ 말레콘 맞은 편 식민지 풍 건물들이 석양을 받아 눈부시게 비친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말레콘에서의 사랑은 애·어른, 이성·동성,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종류와 형식을 가리질 않는다. 하지만 특히 토요일 밤이라면, 게다가 혼자라면 솔로라 사무치는 서러움을 가슴에 안고 말레콘 방파제를 산책해야 한다.

자전거를 타며 밤바람을 쐬던 나는 깜짝 놀랐다. 세계에서 가장 긴 연애 행렬을 보았기 때문이다. 끝에서 끝까지 5km가 넘는 말레콘 방파제 위로는 온통 연인들로 가득 메워져 있는 장관이 연출된다. 간혹 가족이 있긴 하다. 또 남자끼리 은밀하게 붙어있는 경우도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 밤을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그 뜨거운 눈빛과 달콤한 입맞춤을 교교한 달빛 아래서 주고받으며 더욱 솔로의 애간장을 녹인다. 이 대단한 데이트 길이가 괴짜를 좋아하는 기네스 협회에 등재되지 않은 것이 참으로 신기할 정도다. 자전거를 타며 파노라마처럼 보이던 그 부러운 행렬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다는 명백한 사실. 나는 자꾸 바닷바람에 먼지가 눈으로 들어온다며 고개를 옆으로 젖힌다. 

따뜻함...하지만 어딘지 모를 허전함.
▲ 말레콘의 모자 따뜻함...하지만 어딘지 모를 허전함.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몹쓸 솔로는 정말 낭만적인 여행지만 가면 그만 맥이 탁 풀린다. 너무 아름다워 슬프다는 말, 그 말 절대 공감한다. 혼자이기 때문에. 그 밤 말레콘의 달콤한 속삭임들은 아바나가 왜 그토록 카리브 해의 여행지로 손꼽혀 칭송받아야 하는지 알게 만들어 준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아, 끝없이 이어지는 키스, 쉼 없이 주고받는 키스. 이런 죽도록 아름다운 키스, 키스, 키스!

"사랑을 노래하는 연인들이여, 키스가 그립다면 말레콘으로! 사랑을 염원하는 솔로들이여, 키스가 그립다면 나도 몰라 이 사람아!"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쿠바,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말레콘, #아바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