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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피곤했으면 저렇게 깊이 잠들었을까?
 얼마나 피곤했으면 저렇게 깊이 잠들었을까?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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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망년회 잊지 않고 있겠지?”
낮에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며칠 전에 약속한 송년모임 잊지 말고 시간 맞춰 나오라는 것이었지요. 5일 저녁, 약속시간 늦지 않도록 아내와 함께 5호선 전철을 탔습니다. 전철은 다행히 그리 붐비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리에 앉고 보니 맞은편 자리에 젊은 커플이 곯아떨어져 자고 있었습니다. 앉은 자세로 몸을 구부려 자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무릎에 얼굴을 옆으로 돌린 채 엎드린 자세고, 남성은 그런 여성의 등 위에 같은 자세로 엎드려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피곤했던지 옆자리의 사람들이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꼼짝하지 않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손에 든 가방이며 옷차림으로 보아 어디선가 일을 하고 돌아가는 젊은 부부처럼 보였습니다.

“요즘 경제가 말이 아닌데 저 젊은 부부 어디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가는가 봐?”
아내는 편하지 않은 자세로 잠들어 있는 그들이 안쓰러운가 보았습니다. 그렇게 곤히 잠들어 있던 그들이 내린 곳은 우리들의 목적지보다 두 정거장 전인 발산역이었습니다.

송정역에서 내려 방화동에서 만난 친구들은 네 사람이었습니다. 부부동반이었으니 여덟 명이었네요. 친구들은 소규모 영세자영업자 두 사람과 나를 포함한 백수 두 사람이었지요. 모두들 주머니가 가벼운 형편이라 간단하게 소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으며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요즘 사업들은 어때?”
다른 백수친구야 비슷한 처지니 물어볼 말도 없었고, 그래도 사업을 하는 친구들에게 근황을 물었습니다.

“말도 말게, 죽을 지경이지 뭐, 이 고비를 어떻게 넘겨야 할는지 모르겠어.”
중고자동차 판매상을 하는 친구는 근래 들어 단 한 대의 차도 팔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무실에 나와 시간만 죽이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뭐 일감이 있어야지? 벌어놓은 돈도 없고... 큰일이구먼”
실내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한숨을 쉬는 친구들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몇 푼 안 되는 국민연금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백수들이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한 것 같았지요.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나자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얼큰하게 술기운이 도는 친구들이 어떻게 그냥 헤어질 수 있느냐며 옷소매를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노래라도 몇 곡 뽑으며 시름을 달래고 싶은 눈치였습니다.

노래방 입구에 서 있던 주인인 듯한 사람이 반색을 합니다. 오랜만에 찾은 노래방은 시설도 좋고 방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거의 없는 것 같았습니다. 두 개의 방에서만 노래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만 놀다 가기로 하고 사용료를 지불했습니다.

여덟 명이 한 시간이면 좀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추운 날씨에 거주지가 뿔뿔이 멀어서 아쉬움만 달래고 헤어지기로 한 것입니다. 술기운에 금방 기분이 살아난 친구들과 아내들은 흥겨운 노래에 젖어들었습니다.

“한 시간이 훨씬 지난 것 같은데 누가 시간 연장 했나?”
그런데 한 시간이 훨씬 지났을 것 같은데 노래방 시간이 끝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우리 시간 끝난 것 아닙니까?”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시간 연장해드렸습니다. 서비스니까 신경 쓰시지 말고 더 노세요.”
시간이 지났는데도 주인이 그냥 시간을 연장해준 것이었습니다.

“그냥 조금만 더 놀다 가자고. 우리 방이 입구에 있는 방이라 소리가 울려나가야 손님들이 들거든, 그래서 주인이 인심 쓰는 거야.”
듣고 보니 그럴듯한 말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 노래방의 홍보역할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불경기가 심각하긴 심각한 모양이야, 연말인데도 노래방에 손님이 없어서 이런 서비스를 다하고...”
결국 덤으로 더 많은 시간을 흥겹게 놀다가 시간이 다 끝나기 전에 지쳐서 밖으로 나오고 말았지요. 밖에 나와 시간을 보니 거의 두 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불경기로 노래방에 손님이 없어 한 시간은 덤으로 즐긴 것입니다. 밖에 나오니 싸늘한 바람이 금방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에 날씨까지 추워 어깨가 더욱 움츠러드는 밤이었습니다.


태그:#이승철, #망년회 , #노래방, #젊은부부, #불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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