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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준비

초겨울, 뺨에 닿는 바람결이 싸하다. 나무도 제 몸을 줄여야 겨울을 날 수 있는 걸까? 이파리를 죄다 떨쳐낸 앙상한 나무가 애처롭다.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느껴진다. 그래도 자기 분신을 떠나보내고도 의연하게 버티고 서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낙엽이 진 자리에 눈이 생겼다. 봄이 오면 잎이 나오고, 꽃을 피울 태세를 갖추고 있다. 마치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법일 것이다. 바람에 밀려 땅에 나뒹구는 낙엽은 흙 속에 묻혀 뿌리에 양분을 만들어주겠지. 나무는 소리 소문 없이 겨우살이 채비를 하고 있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끼룩끼룩!" 대오를 지어 기러기 떼가 날아간다. 적막한 농촌 하늘을 수놓는다. 녀석들이 추위를 이겨내는 비결은 뭘까?

아내가 차를 몰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차 밖으로 나오며 손을 호호 분다. 나를 보자마자 저녁 찬거리 걱정을 한다.

색깔이 곱고, 맛도 좋았다. 뜨거운 밥에 쭉 찢어 걸쳐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
▲ 김칫독에서 꺼낸 김장김치. 색깔이 곱고, 맛도 좋았다. 뜨거운 밥에 쭉 찢어 걸쳐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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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우리 배추김치 꺼내 먹을까? 김칫국도 끓이고! 간단하고 뜨끈하게."

아내는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올 겨울 우리 집 소중한 먹을거리가 묻혀있는 김칫독으로 내 손을 잡아끈다. 텃밭 가장자리에 묻힌 김칫독이 정겹다. 김칫독이 셋이나 된다. 배추김치가 둘, 하나는 순무김치를 담가놓았다.

우리 김치 맛 어때?

아내가 조심스레 김칫독 뚜껑을 연다. 독 속에 들어있는 김치를 꺼내며 아내가 호들갑이다.

밭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김칫독이 정겹다. 올 겨울 우리 집 귀한 양식이 될 것이다.
▲ 김칫독. 밭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김칫독이 정겹다. 올 겨울 우리 집 귀한 양식이 될 것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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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김치 냄새가 너무 좋아요. 색깔이 이리 예쁠 수가!"

김치 한 조각을 양푼에 꺼낸다. 혹시 바람이라도 들어갈까 꺼낸 자리를 꾹꾹 눌러준다. 빨간 포기가 먹음직스럽다. 순무김치는 더 숙성이 되어야 제 맛이 날거라며 꺼내려다 만다.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한다. 오늘 저녁 주인공은 두 말 할 것 없이 배추김치이다. 아내는 김치 꼭지만 잘라낸다. 그리고는 그만이다. 길쭉하게 밥 위에 걸쳐 먹을 셈인 모양이다. 푸른 겉잎은 송송 썰어 콩나물과 함께 멸치를 넣고 김칫국을 끊인다.

순식간에 저녁상이 차려졌다. 포기김치를 쭉 찢어 뜨거운 밥에 올려먹는다. 손끝에 양념이 범벅이다. 짭조름하고 아삭한 김치 맛이 식욕을 돋운다. 멸치 국물이 우러나고, 콩나물과 어우러진 김칫국이 제법 근사하다. 개운하고 칼칼한 맛이 쌀쌀한 겨울날씨에 딱 어울린다.

입가에 빨간 고춧가루가 묻어있는 것도 모르고 아내가 저녁을 맛나게 먹으며 내게 묻는다.

"여보, 우리 김치 맛 최고지!"
"그럼! 누구 솜씬데! 적당히 간이 배이고, 매콤한 맛이 그만이야!"

세상에 자기네가 담근 김치를 두고 맛없다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우리도 그 짝인가! 음식점을 경영하는 사람치고 자기네 식당 음식 맛이 최고라고 자랑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아무튼 우리 집 김장김치 맛은 내 입맛에는 딱 맞다.

식사 후 아내가 뜨거운 차 한 잔을 타왔다.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실 때는 항상 여유롭다.

꺼내 먹기 좋게 거적을 덮었다.
▲ 김칫독. 꺼내 먹기 좋게 거적을 덮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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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김장김치가 넉넉하니 든든하지? 담글 때 힘들었지만…."
"그럼요. 당신, 김장 농사짓느라 애썼어요. 김칫독도 묻어주고! 수고했어요."
"수고는? 김장하느라 당신이 고생했지!"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김치만 있으면 반찬 걱정 끝!

예전 어렸을 때 부모님이 김장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 때 김장김치는 겨울철 양식 중 하나였다. 김장을 담가놓아야 겨우살이 준비가 끝이 났다. 지금이야 김치를 시중에서 사먹기도 하고, 필요할 때 조금씩 담가도 먹지만 내 어렸을 때만 해도 김장은 초겨울 연례행사였다. 채소가 귀한 겨울철에 김치는 다른 반찬 없어도 밥그릇을 비우는 소중한 음식이었다. 김치를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소금에 잘 절구어진 배추를 깨끗이 씻었다.
▲ 김장배추 손질. 소금에 잘 절구어진 배추를 깨끗이 씻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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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거둔 고춧가루로 소를 만들었다.
▲ 김치 소 만들기. 우리 집에서 거둔 고춧가루로 소를 만들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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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김장을 담갔다.
▲ 김장배추 버무르기. 아내는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김장을 담갔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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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에 땅이 얼기 시작할 때쯤, 우리 어머니는 김장을 하느라 부산하였다. 200여 포기 넘게 배추를 뽑고, 무도 지게로 몇 지게는 날라 김치를 담갔다. 김장을 할 때는 집안 식구 모두가 팔을 걷어붙였다. 이웃과도 품앗이를 하며 사나흘 걸려 경을 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더미처럼 김장을 했던 것 같다. 어디 배추김치뿐이랴! 무를 이용하여 시원한 동치미를 담그고, 남은 무가 있으면 소금에 절여 먹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총각무는 따로 담갔다. 쪽파와 함께 버무린 갓김치는 우리 집 별미였다. 그때 먹었던 김치는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에 어떤 찬거리보다 맛이 있었던 것 같다.

김장김치는 겨울철 소중한 밑반찬이다. 특히, 배추 포기김치는 다양한 음식으로 변신한다. 김칫국을 끓여먹기도 하고, 찌개로도 활용한다. 찌개를 끓일 때 돼지고기와 김치는 환상의 궁합이다. 여기에 두부를 넣으면 그 맛이 더한다. 김치로 만두를 빚어먹으면 그 맛은 또 어떤가!

요즘 김치를 담그는 집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김치 담그는 일이 좀 번거롭고, 값싸고 맛있는 김치를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어서 일게다. 주거양식도 바뀌고, 겨울에도 채소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양을 담글 필요가 없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다음엔 김치로 만두를 빚어볼까요?

며칠 전, 우리는 가을 김장을 마쳤다. 수월찮은 양을 하느라 아내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무진 고생을 하였다.

우리는 텃밭에 손수 배추, 무, 순무, 갓, 쪽파 등을 심어 김장 재료로 사용하였다.
▲ 채마밭. 우리는 텃밭에 손수 배추, 무, 순무, 갓, 쪽파 등을 심어 김장 재료로 사용하였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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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가 꽉 찬 배추를 들고 기뻐하는 아내
▲ 배추. 포기가 꽉 찬 배추를 들고 기뻐하는 아내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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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텃밭에서 손수 가꾼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갔다. 올해는 가을 가뭄이 심해 작황이별로 좋지 않았지만, 애써 가꾼 것이라 귀하게 여기고 담갔다. 김치 맛은 고춧가루 맛이 좌우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직접 거둔 고춧가루가 올핸 색이 고와 김치 색깔이 좋았다.

땅에 묻어둔 김칫독, 김치냉장고에도 가득한 김치. 아내는 겨울 반찬 걱정이 없단다. 아내의 계산은 뻔하다. 김장김치는 겨울나기 양식이 아니라 일년 양식이다. 김칫독에 있는 것부터 먼저 꺼내먹고, 김치냉장고에 있는 것은 나중에 먹을 셈이다. 그러면 내년 김장을 할 때까지 먹고도 남을 것이란다.

전화벨이 울린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딸내미가 집에 온다는 전화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아내가 말을 한다.

"여보, 내일은 우리 딸 좋아하는 김치로 소를 만들어 만두나 빚어볼까요?"


태그:#김장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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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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