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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새벽, 요절가수 배호(1942년 출생, 1971년 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차가운 밤공기가 나를 유혹했습니다. 나는 <배호평전>을 썼을 만큼 배호의 노래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수 배일호씨는 2005년 5월에 열렸던 '<배호평전> 출판기념회' 때 ICN 인터뷰에서 "배호 선배님만한 가수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가수 배호를 '가신(歌神)'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래의 신'이라는 말이죠. 사람이 어떻게 저렇듯 완벽하게 노래할 수 있을까 아직도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네에 있는 라이브 카페를 찾았습니다. 배호의 <오늘은 고백한다>를 불렀습니다. 몇 달 전에 '배호를기념하는전국모임' 정기모임에서 그 노래를 부르고 김광빈 선생님의 찬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김광빈 선생님은 바로 가수 배호를 길러내신 스승이며 외숙부입니다. 나는 김광빈 선생님의 온화한 모습을 떠올리며 그분이 작곡하신 <두메산골>을 불렀습니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직 날이 새지 않은 시각에 들어와 잠이 들어갈 무렵,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배호 모친과 누이동생(배명신)을 돌보아 드린 일이 있으며 라이브 카페 '돌아온 배호'를 운영하고 있는 정용호씨였습니다. 이 새벽에 웬 전화일까 하고 전화를 받아보니, 김광빈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가요계의 큰별이 떨어진 것입니다. 배호의 <두메산골> <굿바이> <녹색의 장미> <밤안개 속의 사랑>, 도성의 <사랑의 배신자>, 강소희의 <이별이란 가슴 아파> 등 주옥 같은 명곡을 남기신 김광빈 선생님. 특히 미발표곡이었다가 최근에 공개된 배호의 <밤안개 속의 사랑>은 직접 작사까지 하신 노래로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 줍니다.

 

"고요한 안개 속에 헤매는 이 밤          

깨여진 사랑에 가슴 아파서           

정처 없이 걷는 이 발길                 

아~ 쓰라린 가슴 못 잊을 추억이여      

고요한 안개 속에 사랑을 불러본다

 

고요한 안개 속에 추억에 젖어

짖밟힌 청춘의 미련만 남아

정처 없이 걷는 이 발길

아~깨여진 가슴 못 잊을 추억이여

오늘도 안개 속에 사랑을 불러본다."     

 

 

1922년 10월 4일에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출생하신 그분은 일제 강점기에 중국 산동성 제남대학 음악과를 졸업하시고, 해방 후에 귀국하여 대한민국 대중가요 개척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분입니다. 1962년부터 1967년까지 MBC 초대악단장을 지내셨으며, 최근에도 인천에서 열린 '배호를기념하는전국모임' 인천지부(지부장 이점선) 주최 '배호 콘서트'와 '배호를기념하는전국모임'(회장 박두태)이 주최하는 '배호가요제'에서 심사위원을 맡으시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셨습니다. 

  

2004년 11월에 정용호씨와 함께 김광빈 선생님 내외분을 모시고 김광빈 선생님의 가묘를 찾은 일이 있습니다. 지프 안에서 <목포의 눈물>(문일석 작사, 이난영 노래)의 작곡가 손목인 선생님과 필자와의 인연을 말씀드렸더니, "그분은 나보다도 선배이신 훌륭한 분"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노랫말이 있을 때 작곡하기가 더 좋으십니까?"라고 여쭈었더니 "그렇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날 가묘에 갈 때와 올 때, 김광빈 선생님과 부인 안마미 여사님은 배호의 생애에 대해 많은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가묘에서 돌아온 뒤에 김광빈 선생님께서 필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파트가 어떻습디까?"

 

그분이 말씀하신 아파트란 바로 가묘를 뜻하는 것이었죠. 김광빈 선생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늘 겸손하시며 유머 감각이 아주 탁월하신 분이셨습니다.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계시며 성자(聖者) 같으신 분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미수(米壽)를 한 해 앞두고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만들어 주시고 배호 님이 불러주신 노래들은 우리들의 가슴에 영원히 간직되고 널리 애창될 것입니다. 

 

서산에 지는 해를 바라보면 참으로 장엄하고 아름답습니다. 뜨는 해가 아니라 지는 해이지만 결코 함부로 쳐다볼 수 없는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배호라는 불세출의 가수를 길러내고 주옥 같은 명곡(100여 곡)을 남겨 놓으신 김광빈 선생님. 돌아가시기 직전의 그분의 모습은 바로, 서산에 지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태양 같은 것이 아닐까요.  

 

현재 김광빈 선생님의 빈소는 한양대학병원 2층 8호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발인은 12월 3일 오전 10시이며, 장지는 양주시 신산리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 <소설 역도산>, 단편소설집 <우리 시대의 운전>, 평전 <배호평전> 등을 펴낸 소설가이며 문화평론가입니다. 


태그:#김광빈, #배호, #배호를기념하는전국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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