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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유를 사랑하며 모든 독재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소망하는 소박한 교사입니다. 그러나 지금 서글픈 마음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요즘 이야기되고 있는 한국사 특강과 관련한 일이 제가 속한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라이트 한국사 특강 강사 중에 일제 식민지 시대를 근대화 시기로 보는 사람도 있다는 보도를 들으며 참으로 희한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 군사독재 대학시절을 지내면서도 들어보기 힘들었던 말을 요즘 듣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가 세운 학교에 근무하는 저는 뉴라이트 역사 전도사들이 저의 제자들에게 한국사 특강을 할 수 있도록 강단을 열어주어야 할 입장에 서 있습니다. 제가 존경한 분들은 물론 교육을 위해 90 평생 꿈꾸며 우리 학교를 세운 설립자도 근대화를 가로막은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강요된 한국사 특강, 군사정권 때도 없었던 일

 

우리 학교에서는 고3 학생들에 대한 특별면학지도를 위해 수능 이전부터 자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강사를 섭외해 일정을 잡아놓았습니다. 그러나 수능 후 일주일이 넘은 지난 주 서울시교육청의 요청에 의해 한국사 특강을 하기로 결정되었다는 통보가 있었습니다.

 

강사를 섭외해 놓은 담당교사와 학년주임의 얼굴은 참담한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한 교사가 주임 교사에게 찾아가 물어보니 특강 여부는 선택이 아니라 교육청 지시사항이라고 합니다.

 

교감선생님에게 "뉴라이트 강사들의 역사관은 설립자의 교육정신과도 어긋나며 이런 일은 군사정권 때도 없었던 일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정치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먼, 강사들의 전문 영역에 대해서만 강의하도록 요청하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육청에서 내려온 특강의 목적과 제목은 '한국사'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훌륭한 역사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열정적으로 역사를 가르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비전문가가 와서 한국 현대사를 집중적으로 강의하겠다는 것이 교육청에서 내려온 프로그램입니다. 장차 어머니가 될 고3 여고생들을 위해 가까스로 섭외해서 약속해 놓은 예비 부모교육 강사에게는 쑥스러운 사과 전화를 드려 취소하고 교육청 일정과 프로그램에 따라 선정한 강사의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무 여섯 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처음 겪는 일입니다. 교사들이 머리를 모으고 검토해 만든 계획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즉각 변경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이 역사를 바로잡는 방식이라니 또 내용은 어떠할지 묻지 않아도 감이 잡힙니다. 절차마저도 교사들의 의견이 묵살되는 비민주적인 방식이라면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특강'이라는 팻말을 달고 다니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겠지요.

 

암울했던 60년 전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

 

역사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 그걸 부정합니까. 선생님들은 다른 관점을 지닌 강사를 동시에 초청해서 토론을 들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이런 대안을 말할 수밖에 없겠습니까?

 

우리 학교 설립 이사 중에는 독립운동가이자 군사 독재에 맞서 '씨알의 소리'를 목놓아 외쳤던 함석헌 선생님이 계십니다. 함석헌 선생님이 '현대사 특강'을 듣는다면 어떻게 말씀하실까 생각해 봅니다. 비전문가가 와서 군사 독재까지도 미화할 것을 생각하니 존경하는 어른들의 부릅뜬 눈빛이 떠올라 갑자기 부끄러워집니다.

 

요즘 분위기를 보면 김구 선생님이 돌아가신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입니다. 좌우 이념 논쟁과 대립과 갈등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애국인사들을 좌파로 몰아 암살하던 시기인 60년 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불행한 과거의 전철을 밟아서는 국가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IMF 국가위기 이후,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국민들의 합심과 노력으로 파산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나고 남북문제의 고리를 풀어 통일의 기초를 마련함과 동시에 투자환경 조성으로 대륙 진출의 희망을 심은 것은 지난 10년의 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공도 정치적 시각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좌파 내지는 빨갱이로 매도되곤 합니다. 더군다나 아이들에게까지 이러한 이념을 주입하고자 교육기관을 통해 강요하고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국론 통합을 위해 각 분야에서 상생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입장을 통합해야 합니다. 각각의 입장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이 있음에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탄압하고 과거의 공적을 짓밟아버린다면 국가의 발전은 요원한 일이 될 것입니다.

 

대승적으로 시대를 바라보며 정책을 입안하고 다양한 에너지를 통합해 창조하는 지도자와 교육자들이 그리워지는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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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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