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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못'. 아마 내가 살아가면서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이에게 감히 '친구'라는 단어를 다시 붙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홈스테이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기 무섭게 그의 오토바이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어그적어그적 우리집으로 그는 들어왔다.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 보이는 행동, 이방인이 듣기에도 웅얼거리는 발음, 항상 멋쩍은 웃음을 짓는 그는 누구에게나 한 명 쯤은 있을 법한 친근한 친구의 모습이었다. 그의 저질 영어 실력과 나의 저질 태국어 실력, 그래서 우린 말 한 마디 섞기도 어려웠다. 신기한 건 그가 두 시간여 쉴새없이 날 웃겨주었다는 것이다. 그에겐 대부분 사람들에게 있는 처음 관계를 맺는데에서의 어려움이나 주저거림이 없었다.

 

그는 왕리앙 마을의 토박이다. 그의 집은 슈퍼와 정육점을 겸하는 곳이고,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 일을 도왔다. 그의 하루 일과는 5시에 일어나 정선된 돼지고기를 집집마다 배달하고, 학교에 8시에까지 등교한 뒤 4시쯤에 집으로 돌아간다. 이 후에 집안 일을 거들고 밥을 먹고 쉬다가 9시가 되면 돼지를 잡는 일을 아버지와 같이 하곤 한다. 이런 일을 하는 그의 집은 센스있는 아버지와 유쾌한 어머니와 함께사는, 왕리앙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집 중 하나이다.

 

 

그의 주머니엔 항상 20바트(한화 700원 정도)짜리 지폐가 몇 장씩 들어있다. - 아마도 그것은 배달하면서 남은 잔돈을 본인이 가지거나 부모님이 준 걸로  생각된다 - 그는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곧잘 돈을 쓰곤 한다(예 : 낚시를 갈 때 떡밥을 사던가, 배고플 때 과자를 사던가). 학교 다닐 때 슈퍼집 아들은 항상 주머니에 동전이 있곤 했는데, 딱 그 모습이다.

 

엊그제인가. 눈이 너무 빨리 떠져 무료함을 달래려 마을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 때 우연찮게 그와 함께 옆 동네 가게로 돼지고기 배달을 갔었다. 그는 이미 능숙한 솜씨로 고기를 건네고, 몇 마디의 농담을 건네면서 거래처를 관리(?)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 같았으며, 돌아온 그의 어깨를 아버지는 말없이 툭툭 두드려주곤 했다.

 

그는 17명이 한 반인 왕리앙 학교 중학교 3학년 반에 공부로 10등을 하고 있다. 넉넉지 않은 왕리앙 마을의 대다수 아이들처럼 첫 번째 꿈은 '대학생'이지만, 본인은 고등학교가 아닌 기술학교로 진학을 한 뒤 대학을 꿈꾸는 것 같았다.

 

그의 두 번째 꿈은 '상인'인데, 상인을 표현하는 그의 바디 랭귀지는 '책상에 발을 올리고, 침을 뭍혀 돈을 세는 모습'이었다. 처음엔 익살스런 그 모습에 배를 잡고 웃곤 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을 일이 아니었다. 어느 새 그에겐 삶의 척도가 '돈'으로 결정된 것만 같아서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돈에 대한 관념이 철저하다. 내가 콜라라도 한 캔 사줄 낯이면 절대 받아먹지 않으면서 한국엔 파인애플이 비싸다는 말을 주워 듣곤 배달 갔다 오는 길에 파인애플을 사다가 우리에게 안겨주곤 한다. 낚시를 갈 때도 떡밥을 내가 살려고 하면, 강한 어조로 절대 안 된다며 내 손을 뿌리치곤 한다. 우리에겐 반드시 그렇게 해줘야 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냉정하게 말한다.

 

"우린 돈이 없으면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못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승려가 되는 애들도 있어."

 

병원은커녕 약국조차도 없는 이 동네, 살면서 경찰은커녕 그 흔한 자가용 한 대 보기 힘든 이 마을에 이렇게 잔인하게 자본에 대한 잔혹함이 침투되어 있다. 슬픈 것은 모두가 이를 순응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내 친구 '못'은 그나마 부모를 잘 만난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승려가 될지도 모르는 다른 친구들은 부모를 잘 못 만난 것. 그 뿐이다.

 

언젠가 못과 술을 진탕 먹은 적이 있었다. - 한국 나이로 치면 17살까지 되버리는 못은 원래 술을 먹으면 안되지만, 부모님도 허락하고 가끔 한 잔씩 하는 그의 스타일에 기꺼이 마셔주고 있다. - 절대 멀어서 아무도 못 간다는 폭포에 대한 이야기가 어쩌다가 나왔는데 내가 꼭 가고 싶단 뉘앙스를 풍겼다. 화끈한 못은 당장이라도 갈 수 있다는 시늉을 하더니 내일 가자는 말을 하며 팔자걸음으로 집에 갔다.

 

다음 날, 표정이 안 좋은 친구들 몇 명을 데리고 못은 나타났다. 무조건 갈 수 있다며 빨리 가자는 못,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 친구들이 이야기했다.

 

"고, 폭포 엄청 멀어. 못가. 우리 다른데 가자."

 

바보같은 못은 내 말 한 마디 때문에 친구들의 의견을 보기좋게 묵살(?)하고 우리 집으로 왔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그날 새벽부터 날 보러 오기 전까지 일을 해서 지칠 떄로 치쳐있는 상태였다. 결국 못을 잘 설득해서 그 날 폭포는 가지 않았지만.

 

못도 태국 사람이라 때때로 물음을 던지곤 한다.

 

"싸눅마이?(즐거운가?)"

 

사실 다른 사람이 던지면 거짓말 보태가면 "싸눅(즐겁다)"를 연발하곤 했는데 그가 말을 던지면 마음 한 쪽이 동하곤 한다. 뭐랄까? 진심으로 "미쾀쑥(행복하다)"이라는 단어가 더해지게 된다.

 

아까도 잠깐 말했지만 하나의 사실 때문에 몇 일 전부터 너무 슬프다. 사실 왕리앙 학교가 수업이 느슨하고, 공부할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서 아이들이 정말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슬프지는 않다. 그들은 그 보다 다른 세상에서 유영하는 법을 알고, 살아가는 지혜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슬픈 일은 내 친구 '못'의 인생의 최고의 정점이 '돈'으로만 쏠리는 것 같아서다. 태국 왕이 '자급자족'을 부르짖으며 그렇게 '왕실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탁신이 농촌지역 개발에 많은 힘을 쏟았다고 해도, 동남아의 왕자라 불리며 연 평균 10% 이상의 경제 성장을 이룬다고 해도, '돈' 없으면 안되는 세상이 이 곳 시골에까지 전이되고 있다.

 

이미 농사만 지어선 먹고 살기 힘들다는 태국의 농촌, 이촌향도를 꿈꾸지만 뚜렷한 기반 산업이 없는 도시들, 오로지 대도시로만 몰려가는 젊은 피들. 그 속의 내 친구 '못'이 곧 동참할 것만 같다. 세상에 얼마나 중요한 가치들이 많은가? 나는 내 친구 '못'한테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법,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마음을 여는 법 등을 배우는 데 '못'에게 '돈'에 대한 가치는 점점 왜곡된 채 인식될 것만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드는 것이다.

 

슬프게도 그의 친구 '고'의 최고의 가치는 '돈'일런지 모른다. 최고까진 아니더라도 물질에 사로잡힌 대한민국의 슬픈 20대로서 따듯한 '상상력'이 이미 죽어버린 친구임엔 분명하다. 한국이 태국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잘 사는 것은 분명하지만 삶을 잘 살지는 않고 있다. 왕리앙에는 '웃음'이 있고, '이웃'이 있고, '자연'이 있다. 내 친구 '못'이 이 것들을 잃을 때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 친구 '못'에게 이런 나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까? 오늘 낯에는 한국어를 가르쳤고, 밤에는 태국말로 더듬더듬 대화하며 놀아갈텐데. 앞으로 담장에 페인트도 칠하고, 같이 놀이도 하고, 캠페인도 하고, 만들기도 할텐데. '못'이 이런 활동 속에 담을 내 진심을 알아채릴 수 있을까?

 

복잡한 머리가 정리가 안 되는데 '못'이 전화를 바꿔준다.

 

"이 전화는 고객에 요청에 의해 당분간 착신이 정지되었습니다!"

 

지난 번에 가르쳐준 내 한국 전화번호인데, 왜 신호가 안 가고 이상한 소리만 나오냐는 표정이다. 당장이라도 한국 가서 연락하면 왜 네가 아닌 기계적 음성이 전화를 받느냐는 약간의 불만도 섞여있다.

 

10년 후의 이런 고민을 하며 '못'과 술 한 잔 기울이는 날이 올란가? 그놈의 자본주의가 뭔지. 사람이 필요해서 만든건지, 자본주의가 필요한 게 사람인지 오늘도 난 가끔 멍하니 하늘을 쳐다본다.

덧붙이는 글 | KB-YMCA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태국 팀은 2008년 8월부터 2009년 1월까지 활동할 예정입니다.


태그:#라온아띠, #KB, #YMCA, #태국, #왕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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