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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이 절정에 있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대원사를 찾았다. 주변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가을 단풍이 막바지인데도 찾는 이들은 드물었다. 노란 은행잎은 절정이며, 주변 단풍도 곱게 물들었다.

아직도 은행잎이 절정이다.
▲ 노오란 은행 아직도 은행잎이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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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는 비구니의 수도장으로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처음 지었다고 하며 그 후 1948년 여순반란 사건으로 불탄 것을 1959년 다시 지었다. 사찰에는 대웅전, 원통보전, 사리전, 대원사다층석탑(보물 제1112호)이 남아 있다. 입구에는 지나치기 쉬운 몸돌과 옥개석이 남아 있는 석탑의 일부와 석종형 부도군이 있다. 대원사로 올라가면 그림으로 사천왕상이 표현되어 있고 경내가 나온다.

대원사의 문화재로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인 사리전 옆에 있는 다층석탑(보물 1112호)은 여전히 출입이 제한되었다. 예전 두 번 정도 찾았으나 빨리 보고 돌아 나와 아쉬움이 많았던 탑이다. 동안거가 시작된 지금도 역시나 출입하기가 어려웠다. 같이 동행한 일행 중에 다행히 도움이 되는 분이 계셔서 천천히 여유있게 둘러 보고 왔다.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라 잘 보지 못하는 석탑
▲ 대원사 다층석탑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라 잘 보지 못하는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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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에서 가장 주목 가는 점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본 떠 새기는 대신 석인물상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4면에 사천왕상 혹은 팔부중상(일부 책에는 보살상을 새겨 놓았다고 한다)이 새겨져 있다. 자세히 보니 선각으로 금강저를 든 것이 팔부중은 아닌 듯 하며 신장상이라 표현하면 맞을 듯하다. 다들 현지 확인 없이 예전 책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 같아 현장 확인의 중요성이 드러났다.

인물 석상이 새겨진 탑이다.
▲ 인물 석상 인물 석상이 새겨진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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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부중, 사찬왕, 보살상으로 표현한 것 이다.
▲ 신장상 팔부중, 사찬왕, 보살상으로 표현한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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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층 지붕돌에는 금방이라도 고즈넉한 경내를 깨울 듯한 풍탁이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이 탑은 9층탑으로 석재에 철분이 많이 들어 있어 검붉게 보인다는 특징밖에 없다고 말한다. 안내문에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가 처음 세웠으며 임진왜란 때 파괴되자 조선 정조 8년(1784)에 다시 세워 놓은 것으로 드물게 남아있는 조선 전기의 석탑이라고 써있다.

탑 앞에는 정조 8년(1784)에 중건하였다는 음각명을 갖춘 배례석이 놓여 있다. 현 모습은 1972년 보수되었다가 1989년에 해체, 복원되었는데 당시 58과의 사리와 사리 장엄구편이 조사되었다고 한다. 경내 대웅전 옆에 있는 원통보전은 참 건물의 구조가 정자각에서 보이는 구조로 특이하였다.

건물의 구조가 특이하다.
▲ 원통보전 건물의 구조가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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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를 나와 왼편 마을로 진입하면 논 밭에 탑 하나가 보인다. 삼장사지 삼층석탑인데 주변은 삼장사의 옛터로 그동안 파손되었던 것을 일부 수습하여 1989년도에 복원하였는데, 2ㆍ3층의 탑신석과 상층기단 갑석 일부를 보강하였다. 통일신라 후기 9세기 이후의 탑으로 추정된다.

삼장사지 삼층석탑
▲ 삼장사지 삼층석탑 삼장사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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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앞쪽에는 괘불 걸이(석주)가 있는데, 문화재 안내간판에는 당간지주라 잘못 설명하고 있고 또한 탑의 꼭대기라 설명하며 한자도 잘못 표기 되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철조여래좌상과 석등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온데 간데 없다.

조용한 내원사에서 비로자나불을 만나다

이제 내원사로 갔다. 가장 먼저 본 삼층석탑(보물 1113호)은 1950년 도굴꾼들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61년 복원해 놓은 상태이다. 지붕돌의 모습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화재로 인하여 전면에 걸쳐 심하게 손상되었다.

내원사 삼층석탑
▲ 내원사 삼층석탑 내원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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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로는 가장 이른 시기의 불상

현재 비로자나불상으로 가장 빠른 시기에 조성한 예로 조각사 편년 연구에 매우 중요한 불상이 이곳에 모셔져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석남암사에서 옮겨올 때 무게를 줄여 쉽게 가져 오기 위하여 무릎 밑과 등 부분을 깎아 버려 현재처럼 되었다고 한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옷은 얇아서 신체의 굴곡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옷주름 역시 촘촘하고 부드럽게 표현하여 8세기 불상의 옷주름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손모양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한 비로자나불상으로 주목받는다.
▲ 내원사 비로자나불좌상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한 비로자나불상으로 주목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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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좌는 상대ㆍ중대ㆍ하대로 이루어졌는데, 8각의 하대에는 아래를 향한 연꽃무늬를 새겼다. 중대는 8각의 각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으며, 상대에는 2겹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대좌 중앙의 구멍에 있었던 사리호 표면에 기록된 글에는 영태 2년(신라 혜공왕 2년(766) 현재 부산시립박물관 소장)에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석남암사에 모신다는 내용이 있다. 해 넘어가는 조용한 시간에 찾아서인지 산사의 아늑함을 느끼고 돌아온 곳이다. 


태그:#대원사, #내원사, #삼장사지 삼층석탑,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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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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