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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결혼한 울 새신랑, 결혼 전부터 제주도를 노래했건만 계속 미루기만 했다. 드디어 내가 칼을 빼들었다. '그'라고 왜 빨리 가고 싶지 않았겠는가. 둘이 가자니 만만치않게 들어갈 비용 때문에 엄두를 못 낼 뿐이었지. 그런데 내 성화에 두 손 든 그, 드디어 제주도 항공권을 예약했다. 짠돌이답게 저가 항공이었다.

"거, 위험하지 않을까?"

주위에서 걱정반 의문반의 물음들을 날렸지만, 난 천하태평.

"나 예전에 안나푸르나 트레킹 갔을 때 열 몇 명 타는 작은 비행기 탔거덩,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잖아."

그런데도 4만원 선이라던 항공료가 결제할 때 보니 편도(2인) 13만원이 훌쩍 넘는다. 범인은 유류 할증료와 공항세. 공항세는 그렇다 치고 유류 할증료는 1년 전만 해도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괴상한 요금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제주 전체를 돌아보고 사진을 찍는 것. 나는 7년 전 배낭 하나 메고 제주를 돌았던 기억이 나 숙박은 예약 안 해도 된다고 큰소리쳤는데, 황금연휴가 바로 코앞이었다. 이러다 정말 방이 없는 건 아닐까, 속으로는 은근히 걱정되었다. 하루 전 예약한 우리 자리는 제일 뒤. 제주도로 실어다만 준다면 어떤 자린들 어떠리. 겨우 한 시간인데.

낯선 차에 올라 처음 핸들을 잡아보는 남편,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낯선 나라인 데다 내비게이션이라고 조막만 해서 도무지 접수가 안 된다. 심장이야 좀 떨리겠지만 어리버리 차를 몰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첫날은 함덕과 성산을 거쳐 우도로 들어가는 일정. 섬나라다 보니 금세 바다가 보였다. 조천을 지나 함덕으로 가는데, 이 남자 갑자기 눈빛이 달라지더니 차를 세운다.

"이런 풍경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되지."
"제주는 다 이런 풍경이야."


제주라고는 성산일출봉밖에 안 와 봤다는 이 남자, 단 번에 코발트 빛 바다에 매료된 거다. 말려 봐야 소용 없다는 걸 잘 아는 나는 멀뚱멀뚱 서서 구경만 한다. 과연 찬란하긴 하다. 동남아 휴양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물빛 곱고 경관도 빼어나다. 그래도 걱정은 된다. 저러다간 필름이 하루 만에 다섯 통은 들어갈 텐데. 울 신랑 여전히 수동 카메라를 애용 중이시다.

사실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기 싸움은 시작되었다. 문제는 필름이었다. 사진이 잘 나온다고 비싼 슬라이드 필름을 쓰는데, 이 사람 언제나 젓국 장사다. 항상 필름을 조금 준비하면서 그래야 아껴 쓴다며 내 말은 콧등으로도 듣지 않는 거다. 그럼 뭐하나, 막판에는 낯선 지방 도시를 돌며 사진관 찾기 퍼레이드를 벌려야 하는데….

바다체험을 하는 용감한 아이들...
▲ 함덕해수욕장 바다체험을 하는 용감한 아이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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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덕 해수욕장 바위 더미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구경거리를 찾아 나도 가세했다. 유치원생인듯한 아이들을 보트에 태워 바다 체험을 시키는 듯. 바다에 임시로 떠메어 놓은 방파제에 착륙시킨 후 무자비하게 바다로 처넣는다. '아유 잔인해 어떻게 아이들을….' 그러나 자세히 보니 아이들도 그걸 꽤 즐기는 모습이다. 안전하게 구명조끼를 입었고, 옆에는 물 위에 떠 있는 아이들을 다시 끌어올리는 교사도 있다. 아주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돌하르방 공원. 산책하기 좋은 작은 공원이었다
▲ 돌하르방 공원 돌하르방 공원. 산책하기 좋은 작은 공원이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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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내륙으로 들어가 돌하르방 공원을 보고 다시 해안가. 동복리라는 어촌으로 해서 우리가 닿은 곳은 북촌리. 정말 경치 죽여(?)준다. 그 경치를 비스듬히 끼고 휴게소가 있다. 식당도 겸하고 있는데 깨끗하고 괜찮아 보인다. 때도 되었고, 점심은 여기서 해결하기로 한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갈치조림. 나름 맛집을 꿰뚫고 왔다는 이 남자, 전혀 아는 바 없다는 데도 음식은 아주 맛있다. 앉은 자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바다도 아름답고.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북촌리 바닷가...
▲ 북촌리 바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북촌리 바닷가...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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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리 휴게소에서 먹은 갈치 조림... 휴게소지만 경관도 아름답고 실내 분위기도 훌륭한 식당이었다. 음식도 맛있었다.
▲ 갈치 조림 북촌리 휴게소에서 먹은 갈치 조림... 휴게소지만 경관도 아름답고 실내 분위기도 훌륭한 식당이었다. 음식도 맛있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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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대한 경치는 따로 있는데, 바로 김민수 기자님의 종달리다. 종달리. 그분이 제주에서 기사를 쓰는 동안 종달리는 내 상상의 근원이었다. 제주를 많이 돌아보기는 했지만, 난 원래 소박한 풍경을 좋아해 언젠간 꼭 찾아가리라 다짐하면서 그 기사를 샅샅이 읽었었다. 지도에도 분명 종달리가 나와 있었다. 성산일출봉 가는 길이었다.

첫날이고 흥분상태였던 우리 무조건 해안가만 찾아서 돌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나와 피곤한데다 이 남자, 5분을 못 견디고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어댄다. 난 가끔 차에서 멀끔히 내다보는 걸로 때우는데도 어찌나 힘들던지.

"저기 문주란 자생지래. 빨리 나와서 봐!"

문주란 자생지인 난도가 보이는 해안가
▲ 난도(토끼섬) 문주란 자생지인 난도가 보이는 해안가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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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뭉기적뭉기적 나가 보니 작은 섬이 보인다. 그리고 바위 위에서는 낚시가 한창이다. 제주에는 해안가면 어디든지 낚시가 가능하다. 제주에 살던 조카 말에 의하면 그냥 막대기에 작은 고기만 꿰어 던져도 고기가 물린단다.

종달리 철새도래지. 어디서 봐도 아름다웠다.
▲ 철새 도래지 종달리 철새도래지. 어디서 봐도 아름다웠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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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해수욕장. 종달해수욕장에서는 우도가 바로 보인다.
▲ 종달 해수욕장 종달해수욕장. 종달해수욕장에서는 우도가 바로 보인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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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종달리다. 철새 도래지가 있고, 종달 해수욕장이 있다. 이렇게 경관이 좋은 곳이 일터고 사는 곳이라면 분명 행운일 것이다. 몇 년을 사진을 찍어 올려도 여전히 두고 오기에 아까운 곳이었을 만큼 종달리는 아름다웠다. 미련을 버려야지. 그래도 우리는 오래 그곳에 머물며 눈도장을 찍어 두었다. 꼭 다시 오자며.

성산 일출봉은 동남아 관광객들로 초만원이었다. 언제부턴가 제주로 여행을 가느니, 차라리 동남아로 가는 게 저렴하단 말이 심심찮게 흘러 나왔는데 왜 성산일출봉엔 동남아 사람들이 득시글이지? 예상외의 인파로 제대로 여행을 즐길 수 없게 되자 나도 모르게 불만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우리가 외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보았던 그네들의 심상찮은 표정이 떠올랐다. 이래서… 이방인에 대한 눈총이 생겨난 것인지.

성산일출봉에서 바라본 풍경
▲ 성산일출봉에서... 성산일출봉에서 바라본 풍경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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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성산 일출봉에 대한 소감은 복잡함 외에 달리 말할 거리가 없었다. 밀린 빨래 하듯 후딱 해 치우고 우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느냐 없느냐로만 마음을 졸이며 달렸다. 마지막 배가 다섯 시였나, 여섯 시였나. 암튼 우리는 헷갈리는 골목을 찾아 달렸고 겨우 배를 탔다. 그리고 배 위에서 일몰을 보았다. 제주 여행을 계획하면서 꼽았던 우도 일박을 실행하게 된 것이다.

우도가는 배에서...
▲ 우도 우도가는 배에서...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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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본 해넘이...
▲ 해넘이 배에서 본 해넘이...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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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을 회상하자면, 난 우도로 가는 배에서 어린 아가씨 둘을 만났고, 그녀들과 같이 움직였다. 민박집에서 같이 저녁을 해먹고, 우도 일주를 하고, 다음 날 낚시를 다녀오고 점심으로 같이 자리 물회를 먹었다. 그리고 같이 승선, 성산항에서 헤어졌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만남이다. 낯선 사람과 만나고 낯선 풍경과 만나면서 일상을 돌아 보는 것. 혼자 하는 여행일 때는 만남도 생각도 무한 자유였다. 특히 그때는 외로움도 벗이었다. 그런데 이젠 자유와 결별했다. 대신 얻은 게 있다면 편리함(자동차)이다. 선택에는 언제나 좋은 거에 싫은 것도 따라온다. 이번 제주 여행은 그 단순한 진리를 체험하는 여행이었다.

덧붙이는 글 | 제주 여행은 10월 초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제주, #종달리, #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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