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겉그림 유경의 〈죽음준비학교〉
책 겉그림유경의 〈죽음준비학교〉 ⓒ 궁리
얼마 전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게 ‘9988234’라는 숫자가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9988234’라는 것은 ‘구십 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다가 죽는다’는 뜻이다. 그렇게만 죽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다.

말은 쉬워도 그렇게 세상을 뜨는 사람들이 있을까? 죽는 문제는 그처럼 쉬운 게 아니다. 죽는 순간도 문제겠지만, 남은 가족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떠나는 것이 좋은지는 곰곰이 생각할 부분으로 남기 때문이다.

유경의 〈죽음준비학교〉는 노년의 어른들이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여 할지, 남은 가족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나야 할지, 제대로 된 이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그만큼 생의 매듭을 바르게 지을 수 있도록 돕는 지침서이다.

“아직까지 부모님이 살아계신 한두 분을 빼고는 놀랍게도 거의 모든 어르신들이 ‘어머니’를 가슴 속으로 모셔서 이야기를 나누고 소리쳐 부른다. 자식과 손자 손녀를 둔 지 오래고, 그 손자 손녀가 또 가정을 이루어 당신은 이미 증조할아버지 혹은 증조할머니가 되어서까지도 결국 ‘어머니’를 찾는 것이다. 그 사연 또한 구구절절해 ‘어머니’를 부르는 어르신들도 울고 듣는 나도 결국은 눈물을 쏟고 만다.”(32쪽)

이는 어르신들과 죽음준비수업을 진행할 때,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분들 가운데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을 초대한다고 하는데, 그 때가 되면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어머니’를 떠올린다고 한다. 살만큼 사셨고, 눈물도 다 말라버렸을 것 같은 그 분들이 엄마 잃은 아이가 되어 엉엉 우신다고 하니, 곁에서 지켜보는 유경씨도 눈물이 글썽인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분들과 함께 하는 수업은 당연히 살아 있는 당사자들의 몫이다. 이미 떠나보낸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회상의 아픔이겠지만, 그것은 실제적인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참여한 어르신들에게 죽음이 슬프거나 괴로운 일이 아님을 인식시키기 위한 차원이라고 한다.

죽음준비학교, 생의 매듭 바르게 짓는 길라잡이

죽음준비학교에서는 ‘죽음의 색깔’을 통해 죽음의 여러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며, 당사자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인생 그래프로 그려보게 하고, 남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의 사망기를 쓰도록 하며, 한 달 남은 인생 속에서 꼭 하고 싶은 것과 버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남은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유언장 등을 쓰도록 한다고 한다.

“인생 그래프 그리기에 이어지는 수업의 제목은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죽음준비과정에서 그 동안 살아오면서 어떤 형태로든 관계 맺은 사람들을 떠올려보고 나름대로 정리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미처 해결하지 못하고 지나온 인간관계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롭게 조정해서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131쪽)

더욱 놀라운 것은 지은이 자신이 죽은 고인이 되어 관속에 들어가고, ‘취토’하여 흙에 묻히는 시간까지 실제적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살아 있는 사람이 관 속에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지는, 관이 흙에 묻히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는 관 속에 들어가 본 사람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실로 만감이 교차했다고 하니, 진정으로 뜻깊은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늘의 수명을 다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누구든 진지하게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예고 없이 다가올 때가 많다. 아직 살아있을 때, 그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이 땅에서 좀 더 아름다운 생의 매듭을 짓지 않겠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든 분들이 말로만 ‘9988234’를 노래하기보다는 ‘죽음준비학교’에 입학하여 제대로 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더욱 진지하고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물론 그 학교에 실제적으로 입학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대로 하나씩 하나씩 인생을 정리하는 것도 더욱 뜻깊은 일이 아닐까 싶다.


유경의 '죽음준비학교' - 삶의 소풍을 즐기고 있는 이들을 위한

유경 지음, 궁리(2008)


#유경의 죽음준비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