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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우연의 일치

 

..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서 마음이, 정이 기우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다 우연의 일치로 좋다는 것마다 동양 것이 된 것일까? ..  《김성혜-이민가족》(주우,1981) 129쪽

 

 “마음이, 정(情)이 기우는 것일까”처럼 적을 수 있을 테지만, “마음이, 눈길이 기울까”나 “마음이, 애틋함이 기울어 갈까”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동양 것이 된 것일까”는 “동양 것이 되었을까”로 다듬어 줍니다.

 

 ┌ 우연(偶然) :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

 │   - 우연의 일치 / 우연으로 볼 수는 없다 /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이었다 /

 │     다 같은 우연 속에 내맡긴 행위라 할지라도

 ├ 일치(一致) : 비교되는 대상들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같거나 들어맞음

 │   - 의견의 일치 / 언행의 일치 / 이 공통점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면

 │

 ├ 우연의 일치로

 │→ 우연하게

 │→ 운 좋게

 │→ 뜻하지 않게

 │→ 어쩌다가(어쩌다)

 │→ 어찌하다 보니까

 │→ 생각지 않았어도

 └ …

 

 생각을 하고서 하는 일은 ‘생각했던’ 일입니다. 어떤 뜻을 품고서 한 일은 ‘뜻했던’ 일이고요. 그러나 생각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루어지는 일은 ‘생각 못한’ 일이며 ‘생각 밖’ 일입니다. 뜻을 품지 않았으나 이루어진다면 ‘뜻하지 않은’ 일이거나 ‘갑작스러운’ 일입니다.

 

 ┌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다 → 뜻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이었다 → 미리 짠 일이 아니라 갑작스런 일이었다

 └ 우연 속에 내맡긴 행위라 할지라도 → 알아서 되라며 내맡긴 일이라 할지라도

 

 한자말 ‘우연’을 쓰는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한자말은 쓰임새가 많고 두루두루 즐겨쓰이는 낱말입니다.

 

 다만, 때에 따라서는 ‘우연’을 덜어낼 수 있고, 또 이 한자말 ‘우연’을 덜어내고 보면 토씨 ‘-의’ 털어내기도 한결 수월합니다. 그리고, 한자말 ‘우연’을 쓰더라도 얼마든지 토씨 ‘-의’를 떨구면서 말을 살리고 생각을 살리며 뜻을 살리는 길을 걸어갈 수 있어요.

 

 

ㄴ. 우연의 일치 2

 

.. 형은 수많은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살아남았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형이 나가기를 거부한 전투에서는 항상 모든 병사가 전멸했다 ..  《벤슨 뎅,알폰시온 뎅,벤자민 아작/조유진 옮김-잃어버린 소년들》(현암사,2008) 406쪽

 

 ‘전쟁(戰爭)터’는 ‘싸움터’로 손질합니다. ‘용감(勇敢)하게’는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꿋꿋하게’나 ‘씩씩하게’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나가기를 거부(拒否)한”은 “나가지 않겠다고 한”으로 손보고, “항상(恒常) 모든 병사가 전멸(全滅)했다”는 겹치기이니 “늘 모든 병사가 죽고 말았다”나 “언제나 모든 병사가 싹 죽어 버렸다”로 손봅니다.

 

 ┌ 우연의 일치인지는

 │

 │→ 우연인지는

 │→ 놀랍게 들어맞았는지는

 │→ 얼결에 맞아떨어졌는지는

 │→ 뜻하지 않게 딱딱 맞았는지는

 │→ 하늘이 도와서 그러했는지는

 └ …

 

 꿈을 꾸지 못한 일, 아니 꿈조차 꾸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 때가 있습니다. 아주 놀라운 때입니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자리에서 용하게 살아남기도 합니다. 그저 이제는 마지막이로구나 하면서 한숨을 쉴 뿐이었는데 가까스로 살아남게 되니, 이는 하늘이 도와준 셈인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가리키는 일은 하나같이 ‘하늘이 돕지’ 않고서는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뜻하지 않게 맞아떨어지는 일들은 ‘놀랍다’는 말만 나오게 되는 일이곤 합니다. 생각도 못하던 일이 한 번 두 번 잇달아 생겨날 때, ‘갑작스러움’을 느끼고,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꾸어야 할 말과 글은 하늘이 돕거나 땅이 거들거나 바다가 함께한다고 해서 될 노릇이 아닙니다. 누가 도와주기를 바라지 말고 우리 스스로 해야 합니다. 바깥에서, 또는 안쪽에서 흐트리거나 엉망으로 망가뜨리려는 무리가 있다고 하여도, 우리가 꿋꿋하게 맞서면서 슬기롭게 이겨내고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을 지키면서 우리 넋을 지킵니다. 말을 살찌우면서 우리 문화가 살찌우게 됩니다. 말을 사랑하면서 우리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고, 말을 아끼면서 내 삶터를 고이 아끼는 매무새가 다져집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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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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