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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전지(戰地)

 

.. 실제로 위안부를 배로 실어 전지(戰地)로 보낼 때에 일본 육군이 관리하는 일본 선적의 군용선을 사용했는데 ..  《요시미 요시아키/이규태 옮김-일본군 군대위안부》(소화,1998) 51쪽

 

 앞에는 ‘배로 실어’라고 말합니다만, 뒤에는 ‘군용선’을 씁니다. ‘군용선’이 한 낱말이겠지만, ‘군대배’쯤으로 다듬으면 어떨까요. ‘사용(使用)했는데’는 ‘썼는데’로 손봅니다. 보기글 앞쪽처럼 “군용배로 실었는데”로 손봐도 되고요.

 

 ┌ 전지(戰地) = 전쟁터

 ├ 전쟁터(戰爭-) : 싸움을 치르는 장소

 │

 ├ 위안부를 배로 실어 전지(戰地)로 보낼 때

 └→ 위안부를 배로 실어 싸움터로 보낼 때

 

 일본사람들은 ‘전지’로 흔히 쓰는 듯합니다. 이와 달리 한국사람들은 ‘전지’라는 말을 거의 안 씁니다. 쓴다고 해도 ‘전쟁터’라 합니다. ‘-터’는 토박이말로 붙이고, ‘전쟁’만 한자말로 붙입니다. ‘-터’ 앞에 토박이말 ‘싸움’을 붙이면 한결 낫지만, 이만큼 마음을 기울여 주는 이는 드뭅니다.

 

 그나저나, 일본말로 된 책을 한국말로 옮길 때에는, ‘싸움터’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전쟁터’쯤으로는 풀든지요. 그렇게 안 하고 일본 한자말을 그대로 쓰자니, 어쩔 수 없이 묶음표를 치고 한자로 ‘戰地’까지 써 넣게 됩니다. 처음 번역을 할 때 얼마나 마음을 쏟느냐에 따라서, 이 번역을 읽을 사람들 품이 줄어드느냐 늘어나느냐가 달라짐을 새삼 느낍니다.

 

ㄴ. 고난(苦難)

 

.. 쪼보타니에 있는 그의 찌들어가는 집에 번번이 드나들 무렵, 아사오는 일가가 걸어온 고난(苦難)의 드라마를 이야기해 주었다 ..  《구와바라 시세이/김승곤 옮김-보도사진가》(타임스페이스,1991) 44쪽

 

 “쪼보타니에 있는 그의 찌들어가는 집에”는 “쪼보타니에 있는 그가 사는 찌들어가는 집에”나 “쪼보타니에 있는 찌들어가는 그 사람 집에”로 손질합니다. ‘일가(一家)’는 ‘한집안’이나 ‘집안식구’로 다듬고, “드라마(drama)를 이야기해”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들려”로 다듬어 봅니다.

 

 ┌ 고난(苦難) : 괴로움과 어려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

 │   - 고난에 빠지다 / 고난을 겪다 / 고난을 이겨 내다 /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

 │

 ├ 고난(苦難)의 드라마를 이야기해 주었다

 │→ 괴롭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괴롭고 슬프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힘겹고 아팠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

 

 북녘나라는 올해도 먹고살기 고달픕니다. 지난해와 그러께에도 고달팠습니다. 지난 열 해 동안 한 해도 수월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한 해가 흐르고 두 해가 흐른들 나아질 낌새가 없습니다. 그래서 북녘나라 우두머리는 “고난의 강행군”을 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 고난의 강행군

 │

 │→ 괴롭고 힘든 길

 │→ 괴롭고 고단한 싸움

 │→ 허리띠 졸라매기

 │→ 허리띠 죄기

 └ …

 

 남녘나라에도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 사람이 훨씬 많으며, 먹고살 만한 살림이지만 눈만 높아져서 지금 삶을 놓고 흐뭇해 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넉넉하지만 넉넉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넉넉하지만 이웃과 나눌 마음은 키우지 못하면서 똥배만 더 크게 불립니다.

 

 괴롭거나 고달픈 사람이 많지만, 괴롭거나 고달픈 사람들 삶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오붓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삶 또한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머니에 돈은 넉넉해도 마음은 가난합니다. 주머니에 돈은 넘치지만 어떻게 해야 즐겁게 쓸 수 있는가를 모릅니다. 주머니는 돈으로 가득하지만, 머리는 쓰레기만 찰 뿐이고, 온 집안에 돈다발이 쌓이는 동안 따순 사랑과 믿음은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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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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