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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1월의 단풍잎이 참 곱구나.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취해 있는 늦가을의 나뭇잎들은 사실 겨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자신을 붉게 태우고 있는 거란다. 마지막 불태움이지. 그렇게 자신을 태우거나 낙화하지 않으면 나무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람아! 넌 슬픔에 울고 있었구나. 한때 너의 방황이 다시 도졌나 예단하고 마음 속으로 너에게 짜증을 냈는데 책상 위에 놓인 네 편지를 읽고 반성을 많이 했단다.

 

넌 편지봉투에 너의 이름 대신 '아침 자율시간에 들어오시기 전에 꼭 읽어주세요' 이렇게 써놓았지. 왜 그랬을까 한참을 생각했지. 그 이유는 너의 편지글을 읽고 알게 되었단다.

 

넌 이렇게 썼지. 다시는 결석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버스비가 없었다고. 300원 밖에 없어 학교에 올 수 없었다고. 그리고 아빠하고 통화하곤 싸우고 슬퍼서 울었다고. 종일 울었다고. 그러면서 죄송하다고도 썼었지.

 

그런데 말야. 난 네 글을 읽으면서 너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단다. 네가 나한테 죄송하다고 하는 말은 너를 온전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나에 대한 원망처럼 들리기도 했거든.

 

그래 맞아. 난 널 온전히 이해하려고도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은 거 맞아. 솔직히 조금 야속했거든. 5월, 네가 학교에 나오기 싫다고 할 때 널 만나러 간 시간이 밤 9시였지. 그땐 널 많이 생각하고 있었던 때였지.

 

그때 넌 너의 꿈을 무시하는, 아니 경청하지 않은 사람들이 싫다고 했고, 엄마와 아빠의 이별로 인해 홀로 버림받은 것 같다고 했지. 세상에 너 혼자 밖에 없다고 눈물 흘렸지. 그래서 난 그때 너와 많은 이야길 나누고 싶어 널 잡고 있었는데 넌 그게 무척 싫다고 했어. 널 설득하는 내 모습이 귀찮다고 했어.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뭔가 크게 잘못했나 싶었지.

 

아마 그래서였을 거야. 널 멀리 한 것이. 그 마음이 내게 남아 있어서인지 2학기 들어 난 너와 따뜻한 말 한 마디는커녕 눈길도 마주치지 않았지. 너도 내 눈을 피하려 들고 말이야. 너와 나 사이엔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그물 같은 게 놓여있음을 알면서도 너도 나도 먼저 다가서려 하지 않았고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지. 하지만 람아, 난 그 두 달 동안 널 줄곧 지켜보고 있었단다. 감시자의 눈이 아닌 관심자의 눈으로 말이야.

 

교실에서 밝게 생활하고 있는지, 아니면 시무룩하게 지내는지 다른 아이들에게 묻곤 했지. 다행히 넌 즐겁게 웃고 떠들며 지낸다고 하더구나. 그러나 교실에 들어가면 너와 난 여전히 그물을 드리운 채 있었지. 넌 책만 읽고 있었지. 나 또한 마찬가지고.

 

그런데 며칠 전 현장체험 때 네가 나에게 다가와서 '배고파요, 뭐 좀 사주세요' 하고 말을 걸었지. 그때 난 무척 기분이 좋았단다. 너에게 좋다는 표현은 안했지만. 이제 네가 마음의 빗장을 거두고 나에게 다가서려고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또 그날 스케이트를 타면서 넌 함께 릴레이 경기를 하자고도 하고 말이야. 예전의 너의 모습이 아니었거든.

 

그런데 어제 갑자기 넌 결석을 했고 아무 소식이 없어 또 그 병이 도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너희 집엔 전화가 없어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어 그냥 하루 더 기다려보자 했는데 다음 날 아침 내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보았단다.

 

편지를 읽고 교실에 들어가기 전 의자에 앉아 생각을 해보았단다. 왜 네가 나에게 이른 아침에 편지를 놓고 갔을까. 아마 걱정이 앞서서 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소식도 없이 무단으로 결석한 널 분명 혼낼 거라는 마음이 들어서일 거다. 그래서 넌 말이 아닌 글로 너의 사정을 말했을 거고.

 

교실에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도 넌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지. 물론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말이야. 널 조용히 불러 복도로 나오자 넌 주절주절 편지에 적혀있던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지. 네 눈엔 눈물이 반짝였지.

 

네 이야길 난 배시시 웃으며 들었고 이야기가 끝나자 너에게 한 첫 마딘 '밥은 먹고 왔니?' 였지. 왜 그런 물음을 한지 모르겠지만 난 종종 너희들에게 '밥은 먹고 왔니?'란 질문을 한단다. 참 슬픈 질문이지. 요즘 세상에 밥 안 먹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속을 들여보면 아침을 굶고 오는 아이들이 태반이거든. 그 이유야 너희가 더 잘 알거야. 그런데 정말 밥을 먹고 싶은데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못 먹고 오는 아이들도 많거든.

 

이야기가 옆길로 빠졌지. 내가 너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 다음 한 말 기억하지. '우리 밥이나 한 번 먹자'야. 내가 밥에 걸신들린 사람도 아닌데 '밥'으로 시작하고 '밥'으로 끝냈네. 그런데 그건 특별한 의미도 있단다. 어떤 선생님이 학생에게 밥을 먹자고 하는 건 남다르게 생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거든. 일종의 믿음의 표시이기도 해. 너와 나에게 그동안 쳐진 그물이 치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너에게 어떤 책에서 읽었던 글귀를 인용하며 들려주고 싶구나. 너도 알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게 쉽지 많은 안잖아. 무척 어렵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쌓여만 가고 말이야. 그런데 그 글귀는 이렇게 말하더구나.

 

두려워해도 된다고. 걱정해도 된다고. 그러나 비겁하진 말라고. 두려움과 마주하고, 근심 걱정과 부딪쳐서 그 순간을 뛰어넘으라고. 그리고 말이야. 우리가 무언가 간절히 원하며 우주는, 신은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고 하더라. 그러니 누군가 네 꿈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고 간절히 원하고 노력해보렴. 자신을 뜨겁게 태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상으로 낙화하는 나뭇잎처럼.


태그:#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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