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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부터 살았던 사람으로서 요즘 젊은 분들이 알지 못하는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희호 김 전 대통령 부인의 자서전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뜻이 될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었다는 자서전의 제목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는 퍽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여사는 고령임에도 또렷한 눈매와 말씨로 깊은 속내를 많이 털어놓았다.

 

김 전 대통령의 부인이면서 또한 빼어난 지식인의 한 사람, 사회운동의 지도자로 ‘정치인 김대중’과 동행(同行)한 파란만장한 역정을 적은 책이다. 이는 다른 여러 가치와 함께 극적인 여러 상황에 관한 호기심의 표적으로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자서전 출간에 즈음한 기자회견은 열기로 충만했다. 이날 저녁 여의도 63빌딩에서는 성대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인사말씀’을 통해 그는 김 전 대통령과의 동행을 연극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첫째 장면은 남편이 오랜 야당 생활 끝에 국회에 들어갈 때까지 고난과 탄압과 빈곤을 이겨내야 했던 시절, 둘째 장면은 1971년 대선까지 약 8년 동안 국민적 지지 속에 화려한 야당 역할을 했던 시절, 셋째 장면은 1972년 유신체제 후 납치 투옥 사형언도 망명 등 고난의 절정, 마지막 장면은 대통령이 되어 국가적 난제의 해결과 남북의 관계를 냉전시대에서 화해 협력의 시대로 물꼬를 튼 장면입니다."

 

기자들이 ‘고난과 영광’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가장 슬펐던 때와 가장 기뻤던 때는 각각 언제였을까?

 

“실질적인 구금상태에서 라디오를 통해 남편의 사형선고를 들었던 그 격동의 80년대 초를 보낼 때의 절망감이 항상 머리에 떠오릅니다. 기뻤던 때요? 대통령에 당선된 날과 노벨상을 받았던 것이지요.”

 

이때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알지 못하는 ‘뒤안길의 역사’를 언급했다. 인간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들을 극복한 불굴의 인간혼이 느껴졌다. 가냘펐지만 그 목소리의 울림은 컸다. 오바마 후보의 미대통령 당선 언급에서도 그랬다.

 

“오바마의 당선은 링컨의 노예해방에 버금가는 위대한 혁명입니다. 미국은 이제 백인과 더불어 아프리카계 히스패닉계 아시아계 등 여러 민족이 공동으로 통치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이와 여성도 국정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평생을 지지해온 남녀평등운동에 관해서도 오래 얘기했다. 오랜 관성(慣性)이 남녀의 동등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방해한다고도 했다. 여성 스스로 남성이 우월한 것으로 간주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개탄도 숨기지 않았다.

 

이 여사는 “우리는 모든 것을 서로 의논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한마디로 ‘동행’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일 먼저 남편과 자신의 이름을 나란히 단 문패를 언급하며 부부간의 평등한 생활방식에 대한 자부심의 한 자락도 내비쳤다.

 

마무리 발언으로 그는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줬다. 사형수와 대통령의 아내를 함께 겪은 ‘인간’의 안목이겠다. 주위가 숙연해졌다.

 

“의롭게 살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우리사회에는 많습니다. 그런 이들을 위해서도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자서전학교(www.mystoryschool.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시민사회신문 논설위원입니다.


태그:#이희호, #대통령,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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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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