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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고교 교육은 세계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하루 15시간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한국의 미래는 교육의 변화에 달려있다."

 

지난해 방한한 세계적인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가 한국 교육에 대해 피력한 말이다. 세계의 교육은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창의적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는데, 한국은 과거 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비판이다.

 

비단 미래를 내다보지 않더라도 현재 국민들은 우리 교육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가? 왜곡된 학벌사회와 그로 인한 대학서열화, 공교육 부실화, 사교육 비대화 등 변하지 않는 교육현실에 국민들의 고통과 불만은 쌓여만 간다. 모두들 교육에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교육개혁은 하루 아침에 뚝딱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로부터 십년수목백년수인(十年樹木百年樹人) 즉, '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심는다'고 했다. 교육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수단적 가치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보장하고 지․덕․체로 대표되는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는 본질적 가치를 가진다. 이러한 교육을 개혁하는 것은 국가 전체와 국민 개개인의 미래가 걸려있는 일인 만큼 수십 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 진행해야 한다.

 

국민과의 소통 '빵점' 받은 MB정부의 '묻지마 교육'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교육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집권 1년 만에 우리 교육의 근간을 흔들어대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에서 빵점을 받은 낙제생답게 교육정책 역시 국민 여론과 상관없이 '묻지마'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올해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웠던 ‘촛불’들은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독주에 분노를 터뜨렸다. 0교시 수업, 우열반, 야간자율학습 등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학교 자율화 정책이 ‘미친 교육’으로 비하되며 광우병 ‘미친 소’ 수입만큼 원성을 샀다. 그럼에도 정부는 일제고사, 학교별 성적 공개, 학교선택제, 자사고 등 특수학교 300개 설립 등 인수위 시절 계획했던 교육정책들을 여전히 국민과의 소통 없이 진행하고 있다.

 

더욱이 올해 내내 논란이 된 국제중 설립 문제에 대처하는 정부는 그야말로 안하무인 격이다. 지난해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 밀려 실현되지 못했던 국제중 설립 사안을 공정택 교육감이 당선 인터뷰에서 불쑥 발표하고, 교육과학기술부는 한 달도 채 안 돼 이를 최종 승인했다. 보다 못한 서울시교육위원회가 시교육청의 동의안을 보류했으나, 누구의 압력 때문인지 보름도 안 돼 새벽에 결국 가결 처리했다. 공청회와 같은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기는 커녕, 국민의 70퍼센트가 넘는 반대여론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농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쫓기듯 무조건 내달린 것이다.

 

수월성으로 포장한 MB의 신자유주의 교육 '개악'

 

이명박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국민도 무시하며 교육 ‘개악’을 추진하고 있는 걸까. 정부는 현재 교육에 경쟁과 시장주의 원리를 적용하면 성공할 거라고 확신한다. 이는 학교 간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고, 수준이 떨어지는 학교는 도태시키겠다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이다.

 

그러나 정부가 벤치마킹한 영국의 신자유주의 교육 모델은 실패했다. 아이들의 학력은 저하됐고 온갖 정신장애에 시달렸으며, 저소득층 아이들은 교육에서 방치됐다. 공교육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편법․불법 행위로 위기에 몰렸고, 각 학교는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소수의 상류층이 다니는 일류학교와 다수의 중하위층이 다니는 삼류학교로 재편돼 학벌 세습구조를 공공히 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수월성 교육’을 명분으로 학부모들을 현혹시켜 자신의 입맛에 맞게 교육을 재편하려 한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수월성 교육은 모든 학부모들이 원하는 교육이 아닌 부유층이 독식하고자 하는 영재교육, 귀족교육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그 결과 10퍼센트의 선택된 인재 안에 들기 위한 아이들의 ‘소리없는 전쟁’은 겉잡을 수 없이 불붙어 사교육 시장은 거대해졌다.

 

사회적 합의로 교육개혁 이끈 해외 사례들

 

새로운 미래사회를 위해 세계가 추구하는 ‘모두를 위한 수월성 교육(excellence for all)’은 학생 개개인의 잠재적 능력과 적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식 교육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역시 ‘모두를 최고로 만드는’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 국민의 동의와 참여를 구하는 일이다. 유럽 지역의 몇 가지 사례들은 국민과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어떻게 교육을 개혁할 수 있는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현재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핀란드는 교육개혁을 딱히 누가 주도한다고 하기 힘들만큼 탄탄한 사회적 합의와 지지, 안정된 시스템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건 교육 및 사회체제 전반에 대한 항상적인 진단과 모니터링을 토대로 10년 주기의 교육개혁을 지난 40년 간 지속해 왔다. 특히 중요 교육개혁 방향과 정책에 대해서는 국민의 대의기구인 의회의 결정을 토대로, 입법적 조치를 취한 후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의 주도 및 일선 학교의 참여 하에 제반준비와 실험적 시도가 범국가적으로 이뤄진다.

 

프랑스는 2003~2004년 1년 간, 국민교육대토론회를 개최해 학교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프랑스 교육체제를 진단하고 향후 15년 간의 교육정책 방향을 수립했다. 국민교육대토론위원회는 22개의 토론주제를 제시, 각 학교와 지자체, 청소년․학부모 단체, 정치․사회․경제 각 분야별 기관 및 비영리단체 등을 망라해 토론회를 조직하고 토론 결과를 심층 분석했다. 웹 사이트 상에는 국민들과의 대화를 위해 수십 개의 온라인 포럼을 개설했다. 제시된 22개의 주제는 학교의 가치와 사명, 학교에서 추구해야 할 형평성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학습동기를 부여하고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지도 방법, 시험의 기능과 모형, 학습부진아 대책, 교육행정체제 개선 등 매우 구체적이다.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믿음직한 교육정책을 수립한 좋은 예다.

 

또한 유럽연합의 볼로냐 프로세스(Bologna Process)의 경우에는 1999년 ‘볼로냐 선언’을 기점으로 2년에 한 번씩 각 국가의 교육부 장관들이 모여 회의를 통해 고등교육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고등교육의 질적 보증이 유럽 고등교육 통합의 전제 조건’임을 공유하고, 45개 참여국들이 2010년까지 학점기반의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통해 대학 교육을 표준화해 학생들의 학점 교류를 자유롭게 할 계획이다. 이와 같이 세계는 국가를 넘어 다양한 국가 간 협력으로 교육개혁을 이루기도 한다.

 

공동체 참여로 교육 대개혁을 만들어 나가자

 

올해 1년 간 이명박 정부가 보여 온 교육정책은 경쟁 교육,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 ‘수월성’이라 포장한 귀족학교 중심의 영재교육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정부의 교육정책은 사교육을 비대화시키고 공교육을 무너뜨려 교육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우리나라에 진정 필요한 교육개혁은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과 정반대라 할 수 있다. 학생들끼리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협력식 교육,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기반으로 한 창의성 교육, 모두를 최고로 만드는 ‘맞춤형 수월성 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요구되는 교육개혁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새로운 교육개혁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 먼저 정부가 주도하고 주민, 학부모 등 공동체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는 현재의 교육개혁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유럽의 사례에서 봤듯이 교육개혁은 국민들이 사회적 합의를 이뤘을 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하물며 교육열이 높고 우수한 인적자원을 기반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우리나라는 말 할 것도 없다. 각 지역의 교육 관련 전문가, 교사, 학부모, 학생, 일반 주민 등이 공동체를 이뤄 교육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논의하고, 그 공동체가 교육개혁을 실행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과거 입시정책 위주의 근시안적인 교육개혁이 아니라 교육철학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근원적 교육개혁이 되어야 한다. 대다수 국민들은 오래전부터 학벌사회나 대학서열화 문제를 지적해 왔다. 그러나 이의 대안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교육을 지향해야 하는가, 학교는 어떤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가'라는 교육철학이 합의되지 않은 채 당장의 해법만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의뿐 아니라 구체적인 행정과 재정적 방안이나 교육 내용과 방법 등 교육 전반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로 교육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교육은 우리나라의 미래다. 이제 교사, 학부모 등 전 국민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제동을 걸고 교육문제에 전면 나서야 할 때다. 이를 위해 한국교육의 새로운 개혁 방향을 근원적으로 모색하는 교육 대개혁의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갈 틀을 마련해야 한다.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가 아닌 '모두가 용이 될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http://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새사연 최선정 교육모임 회원이 썼습니다.


#핀란드교육#영국교육#이명박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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