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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오니 생뚱한 물건이 하나 놓여있습니다. 제 시선을 끄는 것은 부엌 한켠에 놓여있는 다름아닌 쌀 한부대 입니다. 10kg짜리인 듯합니다.

 

지난주 마트에서 장을 봐왔기에 그 때 사온 쌀을 꺼내 놓았나 생각했지만 금방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뚱하게 쳐다보는 저를 바라보며 아내가 둘째아이가 상을 받아왔다며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쌀 한가마(?)는 학원에서 둘째 아이의 중간고사 성적이 향상되었다며 부상으로 준 것이라고 합니다. 

 

취학 전까지 한글을 몰랐던 둘째

 

올해로 초등학교 6학년인 첫째 아들 정민이와 달리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아들 정연이는 학교 입학 하기 전에 지독하게도 학습진도가 늦었더랬습니다.

 

첫째와 달리 선행학습에 그리 신경쓰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학교 입학하기 직전까지 한글을 깨우치지 못했으니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요. 한번은 유치원을 다녀오더니 할머니한테 큰 목소리로 다급하게 외치더랍니다.

 

"할머니 할머니.... 종이 한장 빨리 줘"

"???"

 

손자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니 할머니는 놀라면서 종이 한 장을 내밀 수밖에요. 할머니한테 건네 받아든 종이에 뭔가를 부지런히 적더랍니다. 다름아닌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다른 학생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동안 한글을 깨우치지 못해 다른 친구들의 이름 조차 쓰지 못하던 손자를 보면서 땅이 꺼져라 걱정만 하시던 할머니는 손자의 대견스런 행동에 얼굴 한가득 만족한 미소를 띄웠습니다. 엉덩이를 토닥거리면서 칭찬을 해줬지요.

 

"우리 손자가 드디어 한글을 쓸줄 아는구나...."

"헤헤...아까 신발장에 있던 친구 이름을 그린 거야"

"..........."

 

그렇습니다. 당시 우리집 둘째 아들은 한글을 스스로 깨우쳐 이름을 적은 게 아니라 유치원 신발장에 붙어 있는 그 친구의 이름을 머리 속에 담아온 후 종이에 그린 것이었습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그림(?)을 잊어먹을까 걱정되어 할머니 한테 종이를 빨리 내놓으라고 채근했던 것이지요.

 

둘째 아들의 한글 깨우치기 시도는 그 이후에도 한 동안 계속되었답니다. 어떻게 된 게 하나를 가르쳐주면 그 하나와, 앞서 가르쳐줬던 하나마저 생각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습니다. 공보를 가르쳐주던 아내의 속도 타들어갈 수밖에요. 

 

한글을 지독히도 깨우치지 못하던 둘째 아이는 입학하기 직전에야 간신히 깨우치더군요.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이후에는 그런대로 학업을 따라가는 듯해 그때서야 안심했었답니다.

 

'꽃게유괴범'에서 '공부 잘하는 우리집 둘째아들'로

 

아내가 회사 출근 관계로 일찍 나가기 때문에 아침에 두 아이들을 깨워 밥 먹이는 것은 제 몫입니다. 곤하게 자고 있는 두 아이들을 깨우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아들들을 깨울 때 저는 별명을 붙여 깨우곤 합니다. 얼마 전까지 둘째 아들의 별명은 '꽃게 유괴범'이었습니다.  조금 무시무시 하기는 하지만 경각심을 깨워주기 위해 일부러 붙인 별명입니다.

 

시흥 오이도로 가족나들이를 갔을때 갯벌에서 놀고 있던 작은 새끼 돌게를 몇 마리 잡은 적 있습니다. 집에 가져 가보았자 금방 죽으니까 그냥 보기만 하고 놔주라는 말을 둘째 아들은 듣지 않고 자기 고집세워서 들고 왔었습니다. 물론 그 다음날 아기 돌게들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생명을 돌아보라는 뜻으로 조금은 무시무시한 '꽃게유괴범' 이라고 별명을 지었던 것입니다. 

 

"엄마 게가 아기 게가 없어 졌다고 얼마나 놀라겠냐. 엄마게 입장에서는 자기들 아기를 잡아간 네가 바로 유괴범이니까. 너의 별명은 이제부터 '꽃게 유괴범'이야."

 

지난주 중간고사에서 둘째 아들은 두 과목은 100점, 과학은 70점, 사회는 90점이라는 점수를 받아왔습니다. 평균 90점입니다. 학교에서 우수상을 받는다고 합니다. 지난 1학기말 시험에서는 평균 87.5점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90점이니 성적이 향상된 것입니다.

 

지난주 화요일 성적이 적힌 시험지에 부모님 사인을 적어주면서 아들에게 말했답니다. "아들아 이제부터 너 별명은 '공부 잘하는 우리집 둘째 아들'이다".  별명을 바꿔 불러주니까 지 딴에도 만족한다는 듯 배시시 웃더군요.

 

학교와는 별도로, 중간고사 성적이 지난 1학기 시험보다 향상되었다며 아들이 다니고 있는 학원에서도 상을 줬답니다.  상장과 함께 그 부상으로 쌀 10kg 짜리도 얹어 주고요.

 

쌀은 같은 학원에 다니는 다른 학생의 엄마가 학원으로 직접 가서 자기네 아들의 상품과 함께 가져다 준 것입니다. 이날 아내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습니다.

 

"모든 집에 필요로한 것을 부상으로 주다니 학원 원장님이 꽤나 신경 쓴 것 같다. 그치!"

"그러게 말이다. 쌀로 밥을 해먹는 내내 아들 성적을 생각할테니 꽤 실용적인 선물인 것 같다."

 

우리 부부가 학원에서 받아온 쌀 한 가마니에 대해 마음 가득 뿌듯함과 흡족함을 느끼는 것과 달리 정작 상을 받아온 둘째 아들은 그리 탐탐치 않은 듯합니다. 입이 한 두어자는 불쑥 나온 채 툴툴거립니다.

 

"뭘 저런 걸 상이라고 주는 거야"

"왜! 아빠 엄마는 좋기만 하구만"

 

둘째 아들이 노동의 댓가(?)로 받아온 최초의 수입인 쌀 한 가마니. 어쨓든 집안에 쌀 한 가마니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넉넉해 지는 것 같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들아, 다음 기말고사에서는 최우수상 받아서 20kg 짜리로 들고 와라! 알았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학원, #쌀 한가마니, #호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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