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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사 온 보약  저녁에 퇴근하고 들어가니 한약 한 보따리 놓여 있었다.
아내가 사 온 보약 저녁에 퇴근하고 들어가니 한약 한 보따리 놓여 있었다. ⓒ 변창기

저녁에 일 마치고 집에 이르니 한약 한 보따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게 웬 한약이오?"

궁금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당신이 우리집 기둥인데 아프면 안되잖아요."

지금 아내는 남편인 내가 아프고 있는 게 영 걱정스럽나 봅니다. 벌써 2주째가 넘고 있는데도 이번 감기는 잘 났지 않고 있습니다. 밤마다 심한 기침을 해대고 열도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얼마 전 회사에서 신체검사 받은 결과 통보서가 나왔습니다. 그것을 아내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 후로 남편에 대한 건강 걱정이 많아진 듯합니다.

신체검사 통보서에 의사는 3가지 소견을 밝혀 두었습니다. 신장질환, 고혈압, 비만관리가 그것이지요. 여러 가지 질병이 의심 된다면서 2차 검진 안내서도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약 1개월 전 1차 신체검사 때 상황이 떠오릅니다.

오줌을 받아 거기다 당 등을 검사하는 막대 모양의 도구를 넣었다 뺀 후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담당 의사가 말했습니다.

"오줌에 피가 섞여 있네요."

나중에 오줌에 왜 피가 섞여 나오는지 궁금해 여기저기 알아보니 몸이 많이 피곤해도 그럴 수 있고 신장에 이상이 생겨 그럴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 하나 혈압을 잴 때 입니다.

"혈압 수치가 높게 나오네요."

작년 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고혈압이라니…. 며칠 전 2차 신체검사도 마쳤는데 그때도 1차랑 똑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솔직히 나도 놀랐습니다. 내 몸에 여러 가지 이상 징후가 있다는 소견이 나와서 말이지요. 비정규직 노동자로 8년 넘게 일하는 동안 몸만 망가지고 있는 거 같아 속으로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나요? 현실이 그런걸.

그렇다고 주간만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주말 특근을 거부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8시간 노동하고 8시간 쉬고 8시간 잠자는 시간이 노동자의 노동 철칙인데 현실은 그런 게 철저히 무시되고 있지요.

그런 노동의 원리만 지켜져도 노동자의 건강이 이토록 망가지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올해만도 원청 노조소식지에서 여러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보았습니다. 어떤 노동자는 암으로 어떤 노동자는 사고로 어떤 노동자는 심장 마비로 그렇게 하루아침에 갑자기 세상과 등졌습니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결과 통보서엔 친절하게도 내 몸에 진행되고 있는 질병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문도 있었습니다. 내 몸에 나타나고 있는 이상 징후에 대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고혈압-
방치할 경우 뇌졸중, 동맥경화, 심근경색, 심부전 등의 질병으로 연결될 수 있어 반드시 치

료 해야 함.

-고지혈증-
우리 몸에 지방 성분이 과하게 많이 함유하고 있는 상태. 심장마비나 뇌졸중이 일어날 때까지 대부분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못함.

-신장질환-
신장기능이 약화되어 노폐물이 몸 안에 쌓이고 수분과다 상태가 지속되는 상태. 대부분 초기에는 전혀 증상이 없음. 빈혈, 전신피로 및 부종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증상 경미 함.

-빈혈-
혈액 내 적혈구수 또는 혈색소 양이 감소되어 적혈구 기능인 산소운반 능력이 감소되는 질병. 증상 없음. 심해지면 쉽게 피로하고 추위를 많이 탐. 운동 시 호흡곤란, 어지럼증, 두통, 이명 현상 등이 발생 됨.

그러고 보니 현재 내 몸 상태가 그런 거 같습니다. 일할 때 가끔 어지럼증이 있고 귀에서 '윙'하는 소리도 납니다. 또, 피곤하고 일하기도 힘듭니다. 감기도 벌써 2주째 지났는데 잘 났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덜컥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건강검진 결과 통보서를 들고 동네 약국에 들렀습니다.

통보서를 보여 주면서 신장 기능 완화제, 혈압 안정제, 빈혈 약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건 제 소관이 아닙니다. 큰 병원 가서 정밀검사 받으세요. 처방전이 있어야 약을 드릴 수 있습니다."

큰 병원 가서 정밀검사 받으려면 고가의 의료 장비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내겐 그럴 비용이 없습니다. 아내에게 말하면 빌려서라도 병원비 구해 주겠지만 생활비가 모자라 여기저기 빌려 쓰는걸 그동안 보아 왔기에 미안해서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예전엔 약국 가서 그렇게 증세를 이야기하면 즉시 약을 내 주었었는데 요즘은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약도 먹을 수 없나 봅니다. 몇 천 원짜리 약봉지 하나 약국에서 받으려고 고가의 의료장비 사용료를 지불해야만 하는 의료 체계 현실이 우리 같은 서민층엔 왠지 부담스럽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현실이니까요.

왜 내 아픈 곳의 약을 사먹고 싶은데도 꼭 의사의 허락이 필요하고 허락이 없으면 약국에서 사먹는 것조차 불가능 한지 이해 할 수가 없네요.

"이거 가지고 한의원에 갔더니 한의사님이 보시고 너무 무리해서 그렇데. 한약 먹고 나면 좀 괜찮아 질 거래."

오늘 퇴근해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웬 한약 한보따리 내밀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회사 출근 한 사이 걱정된 아내가 신체검사 통보서를 들고 동네 한의원을 찾아 가보았나 봅니다. 내 몸에 일어나는 질병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아내가 지어준 보약이라도 고맙게 받아먹고 건강을 회복 해 보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습니다.

약국에서는 의사 처방전 가지고 와야 약 준다고 하지 큰 병원 가서 정밀 검사 장비 사용료에 돈이 많이 드니 왠지 그 방법도 썩 내키지 않습니다. 돈이 없지 큰 병원, 정밀 검사 장비가 없겠습니까.

한약이라도 먹고 기운 내라는 아내의 정성이 참 고맙습니다.


#비정규직#노동자#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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