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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미친 사람들을 만났다. 산을 모르는 사람, 산에 오르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산에 왜 오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는 산악인들을 향해 왜 산에 오르냐고 산악인들에게 묻는 것은 그들에겐 왜 사느냐고 묻는 것과 같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산으로 가는 사람들, 생물조차 살 수 없는 고지대, 그곳을 오르다가 눈 덮인 산에서 죽은 동료들이 묻혀 있는 히말리야에 한발 한발 내딛는 사람들, 그리고 그 정상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이름하여 산에 미친 사람들이라 한다.

현재 14좌 완등을 한 산악인은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씨 등 세계에서 13명 뿐이라 한다. 여성 산악인 중에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브루너와 스페인의 에드루네 파사반이 11개 봉을 올라, 14좌 완등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오는 11월 6일은 산악인 박영석씨가 이끈 원정대의 에베레스트 도전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길>이 개봉된다고 한다.

어제, 모 일간지에서 여성 산악인 오은선(42세)씨가 세계 8위 고봉 마나슬루(8163미터)를 무산소 등정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오은선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들과 버스를 타고 가다가 북한산 인수봉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걸 보고 어른이 되면 꼭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수원대 전산과 입학 후 곧바로 산악부에 가입했지만 가벼운 등산을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2학년 때 인수봉에서 암벽 등반을 처음 해본 후 '더 이상 행복할 순 없다'고 생각했고 그 후 완전히 산사랑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졸업 후 그녀는 서울과학교육원에서 전산직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1993년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해 직장을 때려치웠다고 한다. 대학 때 산악부에 가입한 이후 그녀의 머리는 온통 산으로 가득 찼고 남아 있는 건 산뿐이라고 한다.

오씨는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고소공포증이나 겁 없이 산을 탄다고 한다. 오씨의 기사를 접하기 얼마 전, 나는 산악인 엄홍길의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와, 역시 산악인 박영석의 <끝없는 도전>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을 읽고 오은선씨의 기사를 접하면서 더 흥미로웠다. 자주 등산을 하는 편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산과 등산이라는 것은 국내에 한정되어 있는 산이고, 울창한 숲과 계곡, 자연의 품속에서 마음껏 어리광도 부리고 또 그 안에서 쉼과 휴식, 즐거운 에너지도 얻을 수 있는 그런 푸른 산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그 변화무쌍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산이다. 우연히 산악인 엄홍길씨와 박영석씨의 등반 이야기를 읽으면서 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엄홍길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

엄홍길
▲ 책표지 엄홍길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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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의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마음의숲)는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8000미터급 16좌를 오른 등정가 엄홍길의 '등정기'인 동시에 그의 인생과 등정 철학이 담겨있는 책이다.
말이 히말리야지 그곳 8000미터가 넘는 높은 산을 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들을 사진으로만 보아도 아찔했다. 평균 5000미터가 넘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고 한다. 나무도 풀도 거의 없고 오직 눈과 바람과 강추위만 있는 곳이다.

그곳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인 듯했다. 경남 고성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때 운명처럼 산과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부모님이 원도봉산 깊숙이 자리 잡은 집에서 등산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게 되었고, 다른 아이들이 그 또래에 맞는 숨바꼭질이나 공차기 놀이를 하며 평지에서 뛰어놀 때, 그는 산을 벗하며 산을 놀이터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어린시절을 보면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25살에서부터 히말리야에 도전했고, 드디어 꿈을 이루어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있는 산사람, 엄홍길, 평생 동안 산만 올랐던 그는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길이 없는 곳은 없다. 지금 이곳이 길이 아니고 길이 막혔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길이 없다. 길은 가다가 높은 암벽을 만나도 오르면 그것이 길이고, 끊어진 낭떠러지가 나오더라도 로프를 타고 내려가면 길이 되는 것이다. 길의 진정한 의미는 있는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없는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걷지 않는 길에 도전하는 것이다."

박영석 <끝없는 도전>

박영석
▲ 책표지 박영석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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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박영석의 <끝없는 도전>(김영사)역시 그의 등반이야기이며 인간 승리의 기록이다. 산악인 엄홍길과 박영석의 책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산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산악인 엄홍길씨가 그러했듯 박영석 역시 어릴 때부터 산을 좋아했다는 점이 그렇다. 엄홍길은 등산객을 상대로 장사를 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산을 놀이터 삼았다. 박영석은 군납업을 한 부모님이 있었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편은 아니었지만 어디서든 높은 곳을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머리는 좋았지만 공부하기를 싫어했던 그가 동국대학교 산악부에 가기 위해 포기하다시피 했던 공부를 했고 재수를 하면서까지 기어코 원했던 대학교에 입학했고, 입학 후 곧바로 산악부에 가입했을 정도로 산을 좋아했다. 또 있다.

그들은 바로 코앞에 히말리야 정상을 앞두고 있을지라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렀을 땐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았다. 100미터 앞에 정상을 두고 돌아설 때 얼마나 가슴이 쓰라렸을까.

그래도 그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욕심과 만용을 내려놓을 줄 알았다. 이 두 책에서 그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히말리야를 오르기 위해 원정대를 꾸릴 때 등반 기술과 경력은 그리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원 자질은 인간됨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산악인의 기본자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로 그들은 지체없이 '헬프(help)'를 선택했다.

도전과 진취적 기상, 고난 극복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등반 중 어려움에 처한 동료를 도울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산악인 박영석은 히말리야 산맥에서 8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 14개를, 1993년 무산소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이후 8년 동안 이 봉우리들을 모두 올랐다. 그는 굽히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그랜드 슬램'을 꿈꾼다.

그랜드 슬램은 히말리야 14좌와 7대륙 최고봉, 지구 3극점(에베레스트. 남극점. 북극점)을 산악 그랜드슬램이라 부른다. 그의 꿈과 열정은 잠들지 않고 있다. 체력만으로는 결코 오를 수 없는 히말리야, 생물이 살 수 없는 고지대를 그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승리한 자만이 밟을 수 있는 땅'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극복하고 삶의 시련을 이겨내는 것이 히말리야를 정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오늘도 나를 찾기 위해 조용히 인생이라는 이름의 산을 오른다."

그는 그가 꿈꾸었고 포기하지 않았던 남극점에 도달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그랜드슬램을 이루었다. 문득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떠오른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 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만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한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 - 인류 최초 16좌 완등 신화 엄홍길의 도전 정신

엄홍길 지음, 마음의숲(2008)


태그:#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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