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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로서 연기자로 변신할 때 편견을 갖고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며칠 전 <연예가중계>에서 소녀시대 윤아가 한 발언이다. KBS1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서 주인공 장새벽을 연기하는 윤아는 또 "처음엔 이런 편견이 크게 부담스러웠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신경 안 쓰고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수 출신 연기자에게 편견이 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노력하겠다. 그러니 예쁘게 봐 달라. 너무 익숙해져서, 이젠 조금 식상하기까지 한 멘트다. 

 

연예가에서 영역 파괴가 이뤄진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가수 출신 배우, 이젠 얘깃거리도 못 된다. 요즘 연계기획사에선 가수로 데뷔할 연습생에게 따로 연기연습까지 시킨다고 한다.

갓 데뷔한 아이돌 가수에게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아무개 선배님처럼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훌륭한 가수가 아니라,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어린 가수들, 갈수록 많아진다.

 

평생 연예계 밥 먹고 살려면 배우로? 옳은 선택일 수도 있다

 

사실 평생 연예계 밥을 먹고 살려면 일찌감치 배우로 돌아서는 게 옳은 선택일 수도 있다.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대중의 사랑과 주목을 한 몸에 받는 가수 중에 불혹을 넘긴 이가 몇이나 될까? 또 삼십대 중반을 넘기고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여가수는 몇이나 될까? 방송 무대에서는 이미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 공연장으로 눈을 돌려도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배우는 다르다. 특히 스크린에서 남자배우 나이 사십은 일도 아니다. 그들은 불혹을 넘겨도 주연으로 당당하게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활동한다. 송강호, 최민식, 한석규, 설경구 등 그 이름들이 주는 무게감은 여느 연령대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여배우도 마찬가지다. 전도연, 문소리, 김혜수 등등… 충무로의 간판 여배우 타이틀은 이들 삼십대가 차지하고 있다. 가히 언터쳐블(untouchable)이다.

 

나이를 더 먹으면 그 차이는 갈수록 분명해진다. 쉰, 환갑에 이르러도 배우는 쓰임새가 있다. 처녀 역을 하다 나이 먹으면 골드미스, 애 엄마, 그러다 이모, 엄마, 할머니까지…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중년 배우들은 겹치기 출연으로 방송사를 종횡무진하기도 한다. 뛰어난 열연으로 주연배우보다 주목받는 조연급 중년배우들도 있다. 하지만 그 나이를 먹으면 가수는 대부분 생명력이 다한다. 남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렇게 살아남아도 일 년에 한두 차례 디너쇼가 고작이다.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연기로 전향한 가수들에게 따라 다니는 꼬리표 '연기력 논란'

 

90년대 후반, 인기 절정을 달리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도 이제는 상당수 연기자로 전향했거나 연기자의 꿈을 갖고 제2의 연예인 생활을 시작한 상태다. S.E.S의 유진, 핑클의 성유리, 이진, 베이비복스의 윤은혜, 심은진, 신화의 에릭, 김동완, god의 윤계상, 데니안 등이 그 예다.

 

윤은혜는 <궁>, <포도밭 그 사나이>, <커피프린스 1호점>의 3연타석 홈런행진으로 벌써 회당 2천만원의 개런티를 받는 거물이 됐다. 상황이 이러니 후배 가수들도 가수로의 성공이나 긴 생명력을 꿈꾸기보다는 인기 있을 때 연기로 갈아타 16부작 미니시리즈의 주연을 목표로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연기로 전향한 가수들에겐 항상 '연기력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부정확한 발음, 국어책을 읽는 것 같은 대사처리, 미숙한 시선처리 등 자연스럽지 못한 연기로 자주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몇 년 동안 노래하고 춤추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연기를 하는데 제대로 된 물 오른 연기력을 보여준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연기를 하면서 노력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내공이 쌓이다 보면 해결되는 문제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이제 막 연기자로 전향한 가수들, 그들이 덜컥 주연배우로 시청자에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주연은 극을 이끌어 가는 인물이다. 극 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시청자에게 가장 많은 시간 모습을 비춘다. 감독이 아무리 연출을 잘해도, 아무리 좋은 대본이 뒷받침되어도 결국 그것을 담아내는 건 고스란히 배우의 몫이다. 그런데 배우가, 그것도 주연배우가 연기가 미숙하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런데 그 중요한 주연 자리를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초보들이 차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첫 작품부터 주연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 대개는 한두 작품 이내에 주연 자리를 꿰찬다. <천년지애>의 성유리, <궁>의 윤은혜, <불새>의 에릭 등이 그랬고, 이번 <너는 내 운명>의 윤아도 마찬가지다. 2007년 <9회말 2아웃>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뒤 바로 이듬해인 올해 일일 드라마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이다.

 

가수 출신 연기자, 단박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는 이유는?

 

이렇게 가수 출신 연기자들이 이 방면에서 이렇다 내세울만한 이력도 없는데 단박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외주제작과 홍보효과에 있다.

 

드라마의 외주제작이 활발해지면서 최근 드라마 제작과 투자를 겸업하는 연예기획사가 늘어났다. 이들 연예기획사는 자사에서 제작하는 드라마에 자사 소속 배우들을 대거 기용하거나, 자사 소속 스타의 출연에 신인들을 끼워 파는 형식으로 드라마 캐스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스타의 출연이 아니면 편성을 따내기 쉽지 않은 방송가 현실에서 연출자가 이런 관행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영화 제작에서 중요한 투자자를 모으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것이 바로 스타의 캐스팅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해야 하는 투자자 입장에선 이름 있는 스타의 출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영화가 성공을 거두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설사 흥행에 실패한다고 해도 '스타가 캐스팅됐기 때문에 투자했다'는 면죄부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홍보 효과도 한 몫 거든다. '모 그룹 출신 가수 아무개가 새로 시작할 미니시리즈 주연으로 낙점됐다더라'는 소식부터가 홍보가 된다. 언론에서도 기삿거리로 쓸 게 많아지고, 팬들의 지지와 대중의 비판어린 시선 등,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숱한 화제를 몰고 다니게 된다. 연기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한 번이라도 더 언론에 작품 이름이 오를 수 있으니, 이런 것이 모두 '홍보'가 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기는 잘하지만 스타성이 없는 배우와, 연기는 못하지만 가수 출신으로 인지도가 높은 스타가 있다면 대부분 후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얽혀 주연으로 캐스팅된 가수 출신 배우들, 연기력은 어떨까? 앞서 말했다시피 일부 특출난 사람 한두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연기력 논란'이 작품 할 때마다 따라다닌다. 연기력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그들은 외우기라도 한 듯 반복한다. 처음이라 부족한 점이 많다. 노력하겠다. 예쁘게 봐 달라. 그런데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연기 못하는 배우를 예쁘게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청자 입장에선 그것만한 고문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가수 출신 연기자=연기 못하다' 편견, 그들 스스로가 만들었다

 

노래 못하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소음이며 스트레스다. 마찬가지로 연기 못하는 배우가 하는 연기는 불편함, 민망함 그 자체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대개 시청자는 두 가지 판단을 한다. 채널을 돌리거나, 그냥 체념하고 보는 거다.

 

예컨대 얼마 전 <에덴의 동쪽>에서 연기력 논란이 불거졌던 이연희(아, 이연희는 가수 출신은 아니다), 초반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지만 요즘은 비교적 잠잠하다. 그녀의 연기력이 조금이나마 진일보한 까닭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보단 시청자가 '포기'한 측면이 더 크지 않을까?

 

이처럼 연기 못하는 배우는 시청자에게 '인내'를 배우게 하고 '포기'를 하게 만들고 적당한 '타협'을 가르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편견'을 갖게 한다. '가수 출신 배우는 역시 연기를 못해'와 같은.

 

가수 출신 배우들은 새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자신들에게 편견을 갖지 말아달라고. 노력하고 있다고. 그런데 그 편견, 누가 만들었나? 그들 스스로가 만들었다. 처음부터 색안경끼고 안 좋게 보는 시청자는 없다. 편견을 만드는 것도, 없애는 것도 가수 출신 연기자들, 여러분이 할 탓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http://mhchoi.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연기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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