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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정부가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은 3조의 추가 감세와 11조(공기업 투자 포함)의 추가 재정지출이다.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서의 감세는 경기 활성화 효과없이 재정만 축내 결국 국가재정을 위기로 몰고 가는 정책임은 이미 여러 번 지적한 바 있으니, 추가 감세에 대하여는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재정적자 폭탄이 터질 시기가 좀 더 앞 당겨질 것이라는 점만 지적해두고자 한다.

 

불황기의 재정지출 확대는 많은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쓰는 정책이므로 재정지출 확대 자체를 갖고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재정지출의 방향이다.

 

정부가 발표한 추가 재정지출 규모는 공기업 투자를 포함해 11조인데, 이 가운데 절반인 5.6조(재정지출 4.6조, 공기업 투자 1조)가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사업에 쓰일 전망이다. 반면, 불황기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저소득층의 복지 지원에는 불과 1조원만이 책정돼 있다.

 

저소득층 복지지원 예산 가운데 3000억원은 '저소득층 대학생 장학금 및 학자금 지원 확대'로 쓰여지는데, 이미 기존에 편성된 2009년 고등교육 예산 가운데 '정부보증 학자금대출 및 이차 보전지원 금액'이 2008년에 비해 2173억원 삭감된 것을 고려하면 궁극적으로 깎인 예산을 다시 원상태로 회복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3100억원은 생활안정자금으로 빌려주는 것이므로 본래의 지원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결국, 저소득층 복지지원 예산은 내용없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왜 이렇게까지 건설에 집착하는 것일까

 

대통령이 아무리 건설회사 CEO 출신이라고 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건설에 집착하는 것일까?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이 "재정지출에서 경기활성화 효과가 제일 큰 것은 역시 건설사업"(<프레시안> 10월 31일자)이라고 발언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경제 관료들의 잘못된 상식이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국가 재정지출의 가장 직접적인 목표는 고용 창출이다. 2010년 산업별 취업계수(명/십억원) 전망을 보면, 건설업이 33.5명에 불과한 반면, 교육서비스는 51.8명, 기타 사회복지사업 53.3명에 이르고 있다(<중장기 인력수급 전망>, 노동연구원 2005). 즉, 10억원을 건설업에 투자하면 33.5명의 고용이 창출되는데, 교육에 투자하면 51.8명, 사회복지사업에 투자하면 53.3명의 고용이 창출된다는 것이다.

 

또한, 투자 대비 소득 창출 효과에서도 건설보다 사회서비스가 우위에 있다. 예를 들면, 산업별 소득창출 효과 계수를 보면 건설은 1.529인 반면, 교육 및 보건은 1.639에 이르고 있다(<정부지출의 거시경제 및 산업별 파급효과>, 산업경제정보 제236호. 2004).

 

게다가 SOC 투자 금액의 상당부분은 토지구입 대금으로 쓰여진다. 토지구입 대금은 토지 소유자의 주머니에 그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고용창출 효과 또는 소득창출 효과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만약, SOC 투자 금액의 30%가 토지구입 대금으로 지출된다면 앞에서 산출된 건설 분야의 취업계수와 고용창출계수에서 30%를 줄여야 한다. 이 경우 SOC 재정 지출의 비효율성은 그만큼 더 커지게 된다.

 

한편, 사회서비스는 교육·보육·의료보건 등 국민들의 복지와 직접 관련이 되는 서비스 분야를 말하는데, 우리나라 사회서비스업의 고용 비중은 12.6%로 OECD 평균 21.7%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창출 방안에 관한 연구>, 노동연구원 2006). 이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수준이 매우 낮은 상태에 있으며, 이 분야의 투자 수요는 그만큼 높다는 걸 의미한다.

 

사회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많을수록 국민들의 복지 수준은 그만큼 높아진다. 투자 대비 고용창출 효과와 소득창출 효과 면에서도 사회서비스가 SOC 분야보다 훨씬 높아 경기활성화에도 더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사회서비스 고용 비중이 매우 낮아 투자 수요도 높다. 그런데, 정부는 왜 건설부문만 바라보는 것일까?

 

뉴딜,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라

 

최근,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1929년 대공황을 극복한 미국 뉴딜정책에서 힌트를 얻어야 하며, 이를 위해 SOC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고 있다. 만약, 이러한 발언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빨리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뉴딜정책을 토목공사로 취급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뉴딜(New Deal)'이라는 용어는 원래 "카드를 새로 쳐서 다시 나누어준다"는 뜻이라고 한다.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뉴딜정책은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재편성한다는 큰 뜻을 갖고 있다. 또한, 뉴딜정책의 풀네임은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긴 기존의 자유방임주의에서 벗어나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통제하여 소외된 사람들을 보호함으로써 자본주의를 건전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뉴딜정책의 기본 목표임을 알 수 있다.

 

뉴딜정책은 경제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정책이다. 1935년에 제정된 사회보장법이 뉴딜정책의 가장 큰 성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실업보험, 노령연금, 공적부조 등 각종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되어 미국의 복지제도가 비로소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당시 미국 행정부가 수행한 공공발주 공사는 취로구호가 주목적이었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보호대상자에게 굴욕감을 준다는 판단 아래 취로사업을 수행하게 하고 임금 형식으로 보조금을 지급한 것에 불과하다. 건설업체와 땅 주인의 배를 주로 불리고 하청업체 노동자에게는 떡고물만 떨어지는 지금의 SOC 투자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뉴딜정책에서 공공발주 공사는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한 형식에 불과하였는데, 우리나라에 와서는 공사 자체가 목적이 되었고 뉴딜정책은 곧 토목공사의 대명사가 되었다.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다.

 

지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뉴딜정책을 배우라는 말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라. 뉴딜정책은 토목공사가 아니라 사회복지정책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고 정책을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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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뉴딜정책, #토목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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