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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 여인 신윤복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문근영.
▲ 바람의 화원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 여인 신윤복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문근영.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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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드라마 붐이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주몽> <대조영>을 비롯하여 <대왕 세종> <이산> <최강칠우> <일지매> 그리고 최근 방영되기 시작한 <바람의 나라> <바람의 화원> 등 사극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드라마속의 역사. 우리는 사극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재화가 신윤복을 남장여인으로 등장시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바람의 화원>이 역사왜곡 논쟁에 휩쓸렸습니다. 혜원 신윤복을 남장여인으로 설정한 발칙한 상상. 우리는 이러한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황당하다고 외면해야 할까요? 답은 이미 나왔습니다.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재미있게 보고 역사 속에 실존했던 화가 신윤복의 작품은 작품대로 감상하고 싶은 욕망이 시청자를 미술관으로 끌어냈습니다.

서울 성북동에 있습니다.
▲ 간송미술관 현판. 서울 성북동에 있습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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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은 개인 컬렉션이다 보니 협소하고 편의시설이 열악합니다. 하지만 국보급 문화재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미술관중의 하나입니다.

그 중에서 혜원 신윤복의 작품 소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입니다. 이 미술관이 최근 만원사례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18세기 조선 여인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미인도'를 비롯하여 사대부집 젊은이들의 봄나들이를 그린 '년소답청'(年少踏靑). 창포에 머리감고 있는 여인들을 훔쳐보는 동자승의 관음 삼매경을 헤집어 놓은 '단오풍정'(端午風情), 헤어지기 아쉬워 돌아서지 못하는 젊은 연인의 심리를 묘사한 '월하정인'(月下情人) 등 회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 앞으로 시청자를 끌어낸 것이 드라마라는 것입니다.

헤어지기 아쉬운 젊은 남녀의 심리를 묘사했습니다. 화제를 해독하면 더욱 극명해집니다.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지.”
▲ 월하정인. 헤어지기 아쉬운 젊은 남녀의 심리를 묘사했습니다. 화제를 해독하면 더욱 극명해집니다.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지.”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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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드라마는 그 속성상 역사가 아닙니다.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역사를 바탕으로 한 사극입니다. 극(劇)이란 무엇일까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심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심하게 부풀렸거나 심하게 축소했다는 뜻이지요. 모든 사물을 부풀리거나 축소하면 어떻게 될까요? 변형이 되지요. 즉 왜곡시켰다는 말이 됩니다. 시청자들은 이것을 알고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시장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유명 식품회사의 고추장을 한 번 살펴볼까요. 포장용기에 원재료 고추분이 12.6%라 함유되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 12.6% 마저 국산 27% 중국산 73%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12.6%의 27%면 순수 국산은 얼마입니까? 3.4%이지요. 국산 4%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고추장을 우리는 100% 고추장으로 알고 사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소설가는 어떤 사람일까요? 글자그대로 얘기하면 이야기꾼입니다. 이야기가 뭡니까? 지어낸 말, 허구라는 것이지요. 소설가는 지어낸 이야기를 사실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공인된 거짓말쟁이라는 것이지요.

소설가가 역사를 바탕으로 역사소설을 쓰고 그 원작소설을 드라마화 했다면 그 드라마의 순도는 몇 %쯤 될까요? 아마 위에서 열거한 고추장과 별 차이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최근 역사왜곡 논쟁에 휩쓸린 <바람의 화원>은 동명소설을 드라마 화 한 것입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이준익과 이준기를 세상에 알렸던 '왕의 남자'도 공길이라는 두 줄짜리 역사적 소재를 가지고 완성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역설적이게도 원재료가 적게 들어간 작품일수록 관객들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원재료가 많이 들어간 작품은 관객과 시청자들의 구미에 맞지 않다는 결론입니다. 여기에서 작가와 감독, 피디들의 고민이 있습니다. 역사에 충실하면 재미가 없고, 재미있게 만들면 역사적 사실과 멀어지고 이것이 바로 드라마가 아니라 딜레마입니다.

그렇다면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역사를 왜곡했다고 비판하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역사는 모두 진실일까요?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은 있어도 모두가 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조로부터 훌륭한 문화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조선왕조실록'은 사료의 보고입니다. 실록에 기록된 기사가 모두 진실일까요? 유감스럽게도 아닐 수가 있습니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 릉.
▲ 장릉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 릉.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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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세조의 일대기를 기록한 '세조실록'은 신숙주가 총감독을 맡고 한명회가 총지휘하여 편찬했습니다. 실록에는 성삼문 하위지 이개 등 일명 '사육신'을 역모 혐의로 처형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되어 있으니까 사실(史實)일 수는 있으나 진실은 아닙니다. 당시 사관들의 시각으로 사실(事實)일 수 있으나 진실은 아닙니다. 이것이 역사입니다.

드라마 시간에 역사교육을 편성하여 방영한다면 TV앞에 시청자들이 앉아 있을까요? 서슬 퍼런 방통위의 위세에 편성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시청자를 붙잡기는 역부족일 것입니다. 과장과 왜곡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재미라는 당의정 때문에 사극을 시청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그렇게 아둔하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재미있게 보고 사실과 진실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그:#바람의 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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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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