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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의 후안무치

 

후안무치(厚顔無恥). 낯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이 고사성어는 현재 이명박 정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다. 대선 당시 도덕성과 상관없이 경제만 살려주면 괜찮다는 국민들의 암묵적인 동의에 고취되었는지,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그런 낯 뜨거운 이야기를 정부가 전혀 아무렇지 않게, 대놓고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와 같은 뻔뻔함은 '강부자 내각'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재산 증식과 관련된 분야에서 도드라지는데, 최근 정부가 실질적으로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종부세' 논란은 그 대표적 예이다.

 

혹여 종부세 폐지의 의도가 올바른 것이었을지라도, 대통령의 재산 헌납이 어쩔 수 없이 늦어지고 있는 것일지라도, 어쨌든 작금의 모양새는 대선 전 재산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공언했던 대통령이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법안을 통과시켜 전체 공무원 중 가장 많은 감세 혜택을 보겠다고 덤벼드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정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매우 볼썽사납고 부끄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최근 발표한 10·21 부동산 대책 역시 현 정부의 염치없음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정부는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고 더 나아가 경기 부양을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그것은 건설자본의 후원으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을 걷어 자신을 도운 건설사들에게 수혜를 베푸는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역시 앞선 종부세 논쟁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의도를 최대한 선의로 해석할지라도 그 본새가 과히 올바를 수 없다.

 

지방 아파트 미분양 등으로 인한 건설사의 줄부도 위기와 이를 막기 위한 정부의 지원. 그것은 어쩌면 이미 예정된 수순인지도 모른다. 최근의 세계적 불황의 파고 속에서 우리나라만 안전할 수는 없는 노릇일 터, 그 경기 침체의 결과가 우리 사회에서 발현된다면 그것은 우리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 가장 많은 거품이 끼어있는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현실 속에서 아직까지도 정부가 기존의 방향을 철폐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몇 번이나 정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고장 난 축음기마냥 끊임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미 주택 보급률은 100%가 넘고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해 공급 과잉이 예상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종부세를 폐지하고 양도세 등을 인하함으로써 소수의 '강부자'들에게 더 많은 아파트를 사 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이 남아돌지만 정부는 계속해서 주택을 지어대는 이 웃지 못하는 현실. 내가 이 비극 아닌 비극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은 9월의 어느 날 북한산을 올라가면서였다.

 

욕망의 도시, 은평 뉴타운

 

 

북한산성 매표소로 가기 위해 내가 택한 길은 3호선 지축역에서 가는 노선이었다. 보통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버스를 타거나 구파발역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3호선 구파발역에서 지축역으로 가는 도중 지하에서 지상으로 들어서는 바로 그 순간, 눈앞에 나타나는 북한산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깜깜하고 답답한 도시의 지하를 벗어나는 순간 펼쳐지는 북한산의 그 숨 막히는 풍경. 수도권의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선호하는 역이나 구간이 있기 마련인데 내겐 구파발-지축 구간이 그러했다. 지난날 지하철 창밖으로 보이는 북한산 풍경에 혹해 충동적으로 산을 오른 것이 몇 번이던가. 북한산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침 일찍 배낭을 둘러매고 집을 나섰다. 5호선을 타고 가다가 종로3가에서 3호선으로 환승한 뒤 쭉. 자, 드디어 구파발을 지나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짜잔~.

 

그러나 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보이는 북한산의 수려한 자태는 그대로였지만 그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예전과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너른 논밭에 기껏해야 비닐하우스 몇 채 덩그러니 있던 목가적인 풍경은 사라지고, 대신 그곳에는 소리 없는 굉음을 내며 지어지고 있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기초공사 중이라 북한산이 보이기는 했지만, 공정률이 50%만 진척되더라도 북한산이 보일지 장담할 수 없는 풍경이 눈앞에 있었다.

 

은평 뉴타운이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야심찬 프로젝트이자 선거 공약으로서, 많은 주민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지만 정작 수많은 원주민을 서울 근교로 몰아내고 삽질을 하기 시작했던,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불황과 함께 거대 건설사마저도 미분양의 공포를 체험하고 있는 바로 그 공간이었다. 

 

정부는 도대체 저 많은 아파트들을 다 어찌하려는 걸까? 이미 다 지어진 은평 뉴타운도 사람이 들지 않아 이미 유령마을이 되어가고 있다던데,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해서 저 공사를 진행시키고 있는 것일까?

 

사람이 들지 않는 마을에는 기타 부대시설이 들어설 수 없고, 부대시설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사람이 들지 않는 법. 정부는 이 악순환을 타개하기 위해 10·21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겠지만, 건설사들의 미분양 아파트를 국민들의 세금으로 사들인다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 옳은 일인가.

 

지축역에서 내려 은평 뉴타운 한가운데를 지나 북한산성 매표소로 향한다. 전철에서 내다본 것보다 바로 옆에서 바라본 뉴타운은 더 한심했다. '북한산 자락 밑의 공기 좋고 한적한 곳에 위치한 은평 뉴타운'이 콘셉트였을 테지만 현재 그곳은 피자 한 판을 먹고 싶어도 저 멀리 구파발이나 불광동에서 피자를 사들고 와야 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은평의 미분양은 다행히 모두 해결될지도 모른다. 아니, 해결될 것이다. 어쨌든 이곳은 서울공화국의 핵심부인 서울이고 사람들은 꾸역꾸역 서울로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신 전국 어느 곳엔가는 미분양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미분양은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고 그것은 전체 경제의 독이 될 것이다. 혹자의 표현대로 현재 정부의 정책은 부동산 시장의 카드 돌려막기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이와 같은 문제가 고스란히 정부만의 몫일까? 물론 정부가 투기를 방치하고 오히려 그것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에는 책임이 있으나, 그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은 우리 국민들 개개인이다. 뉴타운 공약이 나왔을 때 자신의 집값도 오를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에 표를 던진 것도 우리들이며, 모든 가치보다 돈이 중요하다며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를 아무렇지 않게 남발하는 것도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유령처럼 서 있는 지금의 은평 뉴타운은 이 시대 욕망의 부산물이요, 어느새 돈밖에 모르는 악귀로 변해버린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북한동의 절규

 

국립공원 관리소를 지나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은 가을 하늘답게 높고 푸르렀으며 덕분에 저 멀리 백운대가 훤히 다 보였다. 아까 은평 뉴타운을 둘러보며 속이 상한 탓인지 아무 말 없이 포근하게 나를 감싸주는 북한산의 품이 고마울 뿐이었다.

 

자연이 선사하는 위로와 치유. 어쩌면 그것은 산을 찾는 이들이 얻고자 하는 공통적인 요소인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마냥 산이 좋아 오른다고는 하지만, 등산이라는 것이 농촌보다 도시에 사는 이들의 기호인 것을 보면 많은 도시인들이 그들의 일상에서 부족한 결여태를 산에서 찾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맥락으로 은평 뉴타운이 내세우는 강점은 역시 자연이 주는 위로와 치유였을 것이다.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북한산 자락 밑에서 자연이 선사하는 혜택을 누리라는 것이 그들의 마케팅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기존에 있던 자연을 파헤치고 난 뒤 바로 그곳에다 아파트를 짓는다고 그와 같은 혜택을 얻을 수 있을까?

 

건설사들은 자연 친화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아파트 단지 내에는 공원을 만들 것이요, 단지 밖으로는 멋있게 펼쳐진 북한산 풍경을 내세울 테지만, 자연이 사라진 바로 그 공간에서 자연의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아파트의 등장과 함께 사라진 것은 자연 뿐만 아니라, 그 사라진 자연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우리들의 감수성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뉴요커 스타일로 대변되는 도시적인 삶 속에서 주말에 한 번 즐기고 마는 자연은 결코 독자적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그것은 박제된 자연이요, 오히려 자연보다는 인공물에 가깝다.

 

 

30분쯤 걸었을까? 앞에 대서문이 보였다. 북한산 대동문과 대남문은 자주 봤지만 대서문은 처음이었다. 다른 문과 생김새는 비슷했지만 분위기가 왠지 달랐다. 낮은 곳에 있어서인가? 그러나 그 의문은 문을 지나자마자 풀렸다.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법정 마을로서 이름이 북한동이라 했던가. 비록 그 본원적 기능은 사라졌지만 실제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과 살을 섞고 있기 때문에 대서문은 다른 문들과 달리 활기차 보이는 것 같았다.

 

대서문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북한동의 유래를 적어놓은 안내판이 적혀 있었다. 마을이 저 멀리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고, 60여 가구와 30만 평의 사유지가 있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었다. 굳이 알 필요 없는 내용들이 열거된 안내판이 이곳에 서 있는 이유는 뭐지?

 

이 의문 역시 조금 걷다 보니 추측할 수 있었다. 마을 곳곳에는 시뻘건 현수막에 거친 글씨들이 적혀 있었는데 내용인 즉, 국립관리공단은 원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한 뒤 이주 정책을 펴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것은 국립공원 보호를 명분으로 한 정부와 뚜렷한 생계 보장책 없이 쫓겨날 수 없는 원주민들 간의 싸움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자연보호 운운하는 정부의 주장에 마음이 기울었을진대, 자꾸만 아까 본 은평 뉴타운이 눈에 어른거렸다. 과연 국립공원보호를 주장하는 정부의 주장은 순수한 것일까? 국립공원을 벗어나자마자 난개발을 펼치고, 세계적인 습지나 갯벌마저 모두 갈아엎으려는 정부가 순수하게 자연 보호를 위해 원주민들의 이주를 독촉하는 것일까?

 

물론 다른 지역처럼 원주민의 이주 이후 북한동에 고층빌딩이 들어설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그렇게 깨끗해진 북한산 국립공원은 주위 뉴타운의 땅값을 올리는 데 분명 한몫할 것이다. 대부분 등산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북한동 주민들이 모두 사라지면 그 지역의 계급은 뉴타운을 중심으로 비교적 균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나 훌륭한 뒷동산이 생기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 전 주에 다녀왔던 도봉산의 원도봉계곡이 떠올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계곡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주택과 식당들을 모두 철거한 뒤 계곡이 깨끗해졌다고 자랑하고 있었지만, 강제 철거 뒤 어디론가 쫓겨난 그 원주민들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물론 자연 복원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과 같은 방법은 자연을 핑계 삼아 더 큰 자본과 개발을 위해 영세한 자본과 서민들을 내쫓는 꼴이 아닐까? 원도봉계곡을 내려오면서 보았던 그 쇠락해가는 계곡 끝 마을에 대한 연민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부디 모두 굳건히 행복하시기를.

 

북한동을 지나 백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맑은 날씨 덕에 멀리까지 잘 보였지만 북한산 밑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서울의 아파트들이 내내 눈에 걸릴 뿐이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산을 사랑하는 이 적지 않은 등산객들이 제발 이 시대의 맹목적인 삽질을 막기를 바랄 뿐이다. 군자요산(君子樂山)이라 하지 않았던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북한산, #은평뉴타운, #부동산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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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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