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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 기조인 능동적 복지. 출범 초기부터 도대체 이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든 이가 알고 싶어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실망스런 베일이 벗겨졌는데, 마침내 그 첫 번째 결정판은 지난 9월 과감한 감세 정책을 선언한 것이었다. 대다수 선진국가들이 GDP의 4분의 1가량 쏟아부어 국민 삶의 지지망을 공공의 영역으로 관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이명박 정부가 결코 이를 따를 생각이 없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강력한 감세안을 꺼내드는 순간 확인되었다.

 

0.7%에 해당하는 상속세를 감해주고, 2%만 부담하는 종부세를 깎아주며, 면세점(免稅點) 이하의 저소득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소득세를 인하하고, 법인세 총액의 80%를 대기업이 담당하고 있음에도 그런 법인세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그 어떤 논리로도 '복지 확대'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로써 향후 5년 동안 무려 75조 원의 국가 수입이 감소할 예정이다. 이런 방침은 결국 그간 정부가 소홀히해온 복지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며, 향후 웬만한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증세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의 복지 정책 발전에 재앙적 결과를 예고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복지는 포기하나?

 

노무현 정부 시절의 이야기지만, 당시 대통령에게 총애(?)를 받고 있던 경제 관료들은 2030년에 복지 지출을 OECD 국가들의 평균 수준으로 확충한다는 지극히 보수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것이 '비전 2030'인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향후 20여 년 동안 1천조 원, 매년 평균 50조 원씩 추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것만 봐도 현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는 '미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저출산과 고령화, 양극화의 질곡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짓누르고 있는 시점에서 상위계층과 대기업 재벌의 부를 증식시킴으로써, 오로지 그들의 양동이를 채우고 난 뒤 "떨어지는 물방울로 나머지 계층의 삶이 보장되는" 이른바 낙수효과(trickling-down effect)로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발상은 대단히 안이한 것이며, 문제의 해법과는 거리가 멀기만 하다.

 

당연히 이같은 한계는 지난 10월 2일 이명박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09년 정부 예산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는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예의 "일자리 창출과 성장동력 확충 그리고 서민 생활 안정과 삶의 질 선진화"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강조했다. 그 가운데 특히 복지 관련 예산은 정부의 일반회계 예산 증가율 6.0%를 뛰어넘은 9.0%라며, 서민을 위한 복지 정책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실제 총량 면에서 볼 때 작년 대비 6조 588억원이 늘어난 73조 7104억원이 복지 관련 예산 총액으로 확보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숨길 수 없는 진실이 들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도 송두리째 부정하고 싶어하던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에 '말 타기' 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 근거는 이렇다. 내년 보건복지 관련 예산의 순증가액은 7조 3700억원이다. 그러나 그중 무려 5조 2809억원은 '참여정부'가 이미 법률적·제도적 장치로 확대해놓은 덕에 불가피하게 확충되는 몫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소위 능동적 복지를 추진하고자 추가로 편성한 예산은 7779억원에 불과하고, 이는 9%의 증가분 중 고작 1.2%밖에 안 된다. 보건복지가족부 예산으로 한정하면 더욱 심각해서, 아예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예산의 순증가분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실제 내부적으로 무엇인가 새로운 사업 예산을 편성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빈곤계층이나 일반 취약계층에 대한 기존의 사업 예산을 삭감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역사회 서비스 투자사업 삭감, 장애인수당 삭감, 노인 돌봄 서비스 예산 삭감, 기초생활보장예산 삭감 등이다. 이렇게 볼 때 이명박 정부가 내건 복지에 대한 성적표는 매우 실망스럽다. 말의 성찬 또는 정치적 레토릭으로서 능동적 복지를 천명한 것 외에 의미있는 성과를 가져올 전망은 없다 하겠다.

 

 

복지는 시장이 해결해줄 수 없다

 

또한 수치로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비수가 숨어 있기에 더욱 위험스러운 측면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시장과 경쟁, 민간 중심의 복지체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미 의료민영화 추진 의도가 드러났다 좌절되었지만, 소리없이 일반 복지의 영역에서 시장과 경쟁, 민간 중심으로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재정을 절감함으로써 복지 부문의 비효율을 걷어내겠다는 발상이 엿보인다. 딴에는 맞는 이야기일 법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의 내면에는 한국적 복지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거나 복지에 대한 천박한 발상과 시장에 대한 여전한 맹신이 깔려 있다.

 

현재 한국의 복지 체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국가 복지의 영역이 너무 협소하여, 복지의 근간이 국가 책임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GDP 대비 공공복지 지출 비중도 8% 정도에 불과하며,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비율도 전 인구의 3%를 하회한다. 시설에서 보호받아야 할 이들의 시설 입소율은 전체적으로 20%를 밑돌아,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아니면 입소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복지서비스 예산 대부분을 지방정부의 몫으로 이양해버린 지 오래이고, 복지시설에서도 국공립 비중은 미미하고 민간 복지법인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공공영역의 복지 전문 행정인력도 전국적으로 1만여 명에 그쳐, 찾아가고 발굴하는 서비스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탁상행정의 전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실정에서 국가나 공공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과 민간을 끌어들이는 것 그리고 그들간의 경쟁 기제를 활용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영리 부문의 도입으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이미 노인 장기요양시설에 이어 자활시설 그리고 장애인 요양시설 등이 영리기업이나 영리 목적을 인정하는 단체와 개인에게 문호를 열게 되었다. 결국 효율성의 이름으로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나 필수적인 생활서비스 공급이 이윤의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복지의 양적 확충에 대한 어떤 의지도, 질적인 면에서 공공성을 중심으로 구성하겠다는 어떤 철학도 지니지 못한 채, 우리나라가 장차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암운을 던져주고 있다.

 

현 정부의 복지 부문 왜곡에 단호히 맞서야

 

복지를 양적으로 확충하지 못하면, 우리는 1990년대 초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가입하고 2000년 페소화 지불 정지를 선언하여 양극화 사회의 전형으로 고착된 멕시코의 길을 밟을 것이다. 공공성을 중심으로 복지를 구성하지 못하면, 우린 여지없이 마이클 무어 감독이 적나라하게 고발한 '식코'(Sicko)의 세계, 미국의 길로 가게 된다. 그렇다면 이 비극적인 시나리오를 수정할 수는 없는 것인가? 시민사회의 깊은 고뇌가 엄정하게 필요한 지점이다. 향후 5년간을 오로지 인고의 세월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도 분명 여기에 존재한다. 복지의 지형이 뒤틀리고 그 기반이 영리조직으로 상당 정도 대체되고 나면, 추후 어떤 시점에서 이를 원상 회복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 이명박 정부가 능동적 복지라는 미명하에 자행할 수 있는 복지 부문의 왜곡에 대해 단호히 그리고 분명하게 거부의 전선을 만들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태수님은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 교수입니다.


태그:#복지정책, #감세정책,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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