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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가 아니라 정부에 손 벌리는 은행들

 

"주주 이외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이 일어나고 그 여파로 지금의 신한카드에 인수합병된 당시 LG카드가 부도 위기에 몰리자, 정부가 국민은행에 지원요청을 했을 때 당시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이를 거절하며 내뱉은 말이다.

 

기고만장했던 은행들은 세계 금융위기가 한국을 덮친 현재 외화 차입이 어려워져 극심한 달러 유동성 부족에 은행채를 소화하지 못해 원화 유동성 부족마저 겪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카드에도 시중금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은행채와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은행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떠받들던 주주가 아니라 정부에 구원의 손을 벌리며 아우성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외환위기와 국내 금융위기를 막겠다며 ① 은행 외화차입에 대한 1000억 달러 지급 보증 ② 추가로 입찰방식의 300억 달러 자금 직접 공급 ③ 한국은행의 은행채 직접 매입 ④ 기준금리 0.75%포인트 파격 인하(현재 4.25%)라는 조치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은행 구하기에 적극 나섰다.

 

승승장구하며 '글로벌 메가뱅크' 외치던 한국 은행들

 

새사연은 극단적인 외화자금 경색과 금융위기로 벼랑 끝에 선 우리 경제 현실에서 은행을 살려 금융경색을 풀어보자는 정부 대책의 발목을 잡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상황이 급하다는 명분 아래 마구잡이 대책을 쏟아 놓는다고 상황이 진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일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냉정하게 전후 상황을 짚어봐야 한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한국의 은행들은 지금의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위기는 기회'라고 적잖은 호기로 받아들였다. 9월 초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쓰러져 가는 리먼 브러더스를 60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해서 인수하겠다며 구체적인 인수협상까지 벌인 적이 있다.

 

게다가 지난 9월 지주회사 전환에 성공해 KB금융지주가 된 국민은행은, 여세를 몰아 KB금융지주 회장인 황영기 회장이 메가뱅크를 위한 금융권 재편에 나서겠다고 호언하기도 했다. 황영기 회장은 지난 9월 9일 KB금융지주, 신한, 우리 금융지주 등 자산규모 200조 원대의 은행들이 대등하게 합병을 추진해서 자산 규모 500조 원대의 글로벌 은행을 만들자는 주장을 폈다.  

 

2007년까지 수익으로 거액의 배당금 잔치 벌여

 

그뿐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철저한 수익 위주 경영으로 완전히 '금융회사'로 변신한 한국의 은행들은 신용카드 남발과 과잉 주택담보대출, 각종 펀드상품 수수료 수익을 챙기면서 수익률 증가 행진을 계속해 왔고, 그 수익을 주로 외국인 주주들에게 배당금 형태로 돌려주는 관행을 바로 지난해까지 이어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중은행들은 국민은행 2조 7000억원을 포함하여 대부분 조 단위의 당기 순이익을 벌어들이면서 최고의 호황을 누려왔다. 그러나 국민들을 상대로 벌어들인 각종 이자 수익과 수수료 수익을 서민들이나 우리 기업들을 위해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미 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은 완전히 외국은행이 되었으며 상장마저 폐지된 상태이다. 나머지 국내 은행들의 외국인 지분 비중은 우리나라 전체 상장기업들 가운데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다.

 

외환은행, 국민은행, 하나금융지주회사 등이 모두 외국인 지분율 상위 10위 안에 들어와 있으며, 신한은행은 재일교포 지분을 빼더라도 외국인 지분율이 2008년 4월 기준 56.9%에 이른다. 이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을 매년 수천억 원의 배당금으로 주주들에게 바쳤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외국인들에게 현금 배당되었고, 달러로 송금되었다. 외국인 배당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국민은행, 외환은행, 신한지주회사 등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위기의 순간에 은행 고유의 역할도 상실

 

올해에도 외국계 은행들을 필두로 한 이들은 단기 외화를 무분별하게 차입하여 금리차익을 노리고 재정거래를 했으며, 유망 중소기업들에게 환헷지 상품인 키코(KIKO)를 팔아 중소기업 도산에 앞장서면서 수수료 수익을 챙겼고, 예금 보유를 뛰어넘는 대출을 강행했다.

 

그러나 막상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국의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지고 주가 폭락, 환율 급등, 금리 급등, 달러와 원화 유동성 부족에 직면하자, 무너지는 우리 경제를 위한 금융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고사하고 금리를 올리고 기업 대출을 회수하느라 정신이 없다.

 

자본시장에서 완전히 자금 조달길이 막힌 기업들에게 자금을 중개해주는 은행 고유의 역할은 못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증권사나 투자기관들과 달리 적어도 은행들은 국민경제의 위기 순간에 자사 은행 수익 추구와 생존이 아니라 국민경제를 위해 기능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중앙은행과 정부가 나서서 은행의 자금난을 해소해 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

 

정부가 아닌 주주에게 지원 요청하라

 

이번 상황을 계기로 명확해진 것은 지금 투자은행을 신규로 설립하고 메가뱅크를 건설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물경제와 국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단기 수익을 추구해온 신자유주의적 은행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이것이 정부의 지원을 받고 치러야 할 대가다.

 

우선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민영화를 전면 중단할 필요가 있고, 나아가 우리은행 지분 매각 역시 재검토해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나머지 상업은행들에 대해서도 외국인 지분율 제한, 배당금 제한, 기업의무대출 비율 설정과 같은 더 강력한 규제와 공적 기능 수행을 요구해야 한다.

 

주주의 눈치만 보면 된다고 큰소리치던 은행들이여, 유동성이 아쉬우면 국가가 아니라 주주들에게 자본금 확충을 요구하라. 그것이 진정 주주자본주의 경영정신이 아닌가. 원화 유동성 비율을 완화해 달라고 구걸하지 마라. 아니면 주주를 바꿔라. 지원을 요청한 정부에 은행 지분을 내놓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대신에 기존 주주에게 주던 배당금은 이제부터라도 전면 동결해야 한다. 또한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신에 중소기업 키코 손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고 구제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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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http://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연구센터장입니다.


태그:#은행지급보증, #주주배당금,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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