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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겉표지
 <유배>겉표지
ⓒ 갤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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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보면 종종 유배당한 벼슬아치들이 나온다. 사극으로 보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유배라는 형벌은 꽤 무서운 것이었다. 유배는 원칙적으로 무기종신형으로 먼 곳으로 보내져 자유로이 활동할 수 없는, 그야말로 꽁꽁 묶인 신세가 되는 것이다. 쓸쓸하고 참혹한 그 형벌을 두고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고, 백주 대낮이라도 황혼 무렵 같았다. 산 무덤이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조선인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꿈꿨고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 역사와 세상 속에서 그 이름을 떨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어려운 처지에서도 누가 무슨 사연으로 그리 된 것일까?

김만선의 <유배>는 그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권력이 지우려 했지만 세상이 간직하려 했던 유배자들을 쫓아 우리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글씨’로 유명한 이광사, 그의 집안은 왕실의 후손으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영조가 즉위한 후부터 몰락하기 시작한다. 가족들이 여러 사건에 연관돼 유배를 가게 되더니 급기야 이광사 또한 나주벽서사건에 연루돼 유배를 떠난다. 이때 이광사는 모든 것을 잃은 처지였다. 아내와 자식도 없었다.

그 순간, 이광사는 자신이 갖고 있던 단 하나의 재산을 알게 된다. 글씨였다. 이광사는 유배지에서 글씨에 빠져들었다. 단지 빠져들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만의 정서가 담긴 ‘동국진체’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그로 인해 이광사의 이름은 세상에 남게 된다.

‘글씨’로 말하자면 김정희를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잘 나가던 그였지만, 권력에 의해 유배를 떠나게 된다. 억울할 법도 하겠지만 떠나는 순간에는 죽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는 유배를 떠난 뒤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마음 쓰린 것이 오죽했을까 싶지만, 그래도 김정희는 달랐다. 조선 회화사의 최대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세한도’를 남긴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도전, 그도 유배를 떠났다. 그런데 그는 ‘산 무덤’에서 다른 것을 얻게 된다. 주민들과 지내며 ‘민본 정치’를 깨닫게 된다. 훗날 그가 실제로 그때 배운 것을 실천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때의 경험이 그가 조선 왕조를 세우고 초기 왕권을 확립시키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유배지에서 주민들과의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은 것으로 치면 정약용을 빼놓을 수 없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그는 권력이 바뀌면서 유배를 떠나게 된다. 그 순간, 그를 향했던 세상의 인심은 사납기 이를 데 없었으니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유배지에서도 그를 박해하려는 관리들이 있으니 그의 마음은 한시도 편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세월을 한탄만 하면서 보내지 않았다. 주민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것을 저술하기에 이른다. <흠흠신서>등이 나온 것도 이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후학을 기르려고 했던 것은 어떤가. 그는 유배를 떠나기 전에는 권력 세계 속에서 유명했을지 모르지만 유배를 떠난 이후에는 세상과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이외에도 김만선은 조정철, 송시열, 조광조, 최익현, 지석영, 윤성도 등의 행적을 쫓으며 세상에 이름을 남겼던 유배자들을 조명하고 있다. 그들이 유배를 떠나게 된 이유부터 유배지에서 꿈꾸고 했던 무언가를 찾아 ‘산 무덤’이라 비유되는 그곳에서 세상에 이름을 남기게 된 사연을 통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유배>의 시선은 나아가 조선의 ‘어느 모습’을 보여준다. 유배자들의 삶을 쫓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선의 생각이나 문화 등을 말할 수밖에 없으니 가능한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 책은 미시사적인 관점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이야기하는 셈이다.

몸은 가고 없지만 끝끝내 세상에 남겨진 조선의 유배자들을 이야기하는 <유배>, 역사를 알려주는 방법이 신선하기도 하지만 그 내용도 가볍지 않으면서도 흥미롭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풍경을 그리는데 도움이 된다.


유배 - 권력은 지우려 했고, 세상은 간직하려 했던 사람들

김만선 지음, 갤리온(2008)


태그:#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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