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 이슬람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니에요

 

오늘은 시작하기 전에 제 종교적 스탠스를 좀 밝히고 들어가야 될 거 같아요. 제 종교가 뭐냐면, 무교입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잠재적인 불교'이구요. 저도 어릴 적에는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 교회고 성당이고 몇 번 씩이나 나가 봤었거든요. 그렇지만 곧 죽어도 혼자 잘난 맛에 사는 성미인 저는 절대자에게 귀의하여야 하는 종교하고는 궁합이 잘 안 맞더라고요.

 

저희 아버지한테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안하는 판에  밥  먹기 전에 기도를 하라는 게 제일 귀찮았고요. 아담과 이브 만들듯이 금은보화도 하나님이 그냥 창조하면 될 텐데 제 코 묻은 돈을 헌금으로 바치라는 것도 몹시 불합리해 보였어요. 게다가 록음악을 듣지 말라는 건 또 뭐예요. 전 서태지·신해철·마릴린맨슨 팬이란 말이에요.

 

대학 들어가고 머리 좀 굵어진 다음에는, 예쁘장한 여자후배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시 나갔다가 사찰이 무너지게 하소서라는 목사님 기도에 기겁했던 적도 한 번 있었군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최고 가치로 배우는 법대생인지라 앞으로 성당이면 모를까 교회에 발 딛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씩씩 대던 게 기억나네요. 하긴 애초에 믿음이 없는데 성당이라고 크게 다르겠어요.

 

 

이제부터는 제가 이슬람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할 텐데요. 저는 이슬람교 신자가 아니에요. 앞으로 이슬람교를 믿을 생각도 전혀 없고요. 이슬람교에서는 탐욕스럽고 더러운 짐승이라 하여 돼지고기를 절대로 먹지 말라는 계율이 있는데요. 족발과 삼겹살에 환장하는 저와는 역시 상극이지요. 신이 과연 존재한다면, 과연 돼지를 먹지 말라는 계율과, 족발에 삼겹살이라는 최고의 음식이 동시에 존재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절대자라는 분이 우리를 위해 그 맛있는 걸 이 땅에 내놓고도 먹지 말라니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서야 원.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율법에, 록음악이나 돼지고기 같은 엄한 금지도 없고, 주말마다 귀찮게 불려나갈 필요도 없고, 그러면서 정작 아쉬운 게 생기면 '대학 붙여 주세요. 취직 시켜 주세요. 병 낫게 해 주세요' 정성스럽게 빌기만 하면 되는 잠재적인 불교가 제 입맛에는 가장 맞지요. 흠. 저 같은 기회주의자한텐 부처님도 돌아앉으시지 않을까 싶네요. 이쯤 되면 저는 무교나 다름없어요.

 

하지만, 교회도 안 가고 성당도 안 가고 필요한 게 있을 때만 절에 가는 저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종교에 가장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성격이 성격이라 객관성이랑은 담 쌓은 글을 지향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가능한 한 공정한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해 볼게요.

 

이슬람 사원이 언제 생겼냐면요

 

우리나라에 이슬람교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6·25 때 파병 온 터키군에 의해서라고 알려져 있어요. 그들 덕에 우리나라에도 이슬람 사원이 지어지고, 이슬람교가 우리나라에도 조금씩 뿌리 내릴 수 있었다고는 하는데요.

 

땡!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 사원이 지어진 건 1976년이에요. 6·25 휴전선언과는 20년도 더 넘는 시간차가 있지요. 터키군 아저씨들은 전쟁 끝나고 다들 본국으로 돌아갔을 테고요.

 

 

예전에 70년대에, 중동에서 석유파동이 있었거든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이 국제원유값을 4배씩 뻥튀기 시키면서 다른 나라들에게 시비를 걸었던 거예요. 우리로서는 새마을운동하느라 한창 바쁠 때였는데 연료가 없으면 큰일이잖아요. 석유 한 방울 생산 못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미국말고도 잘 보여야 할 상대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지요. 한남동 이슬람사원은 그 와중에 순전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부랴부랴 지어진 거예요.

 

저희는 그렇게 지난 8월 28일 한남동의 이슬람사원을 찾아갔습니다. 모델은 학과 후배 커플이에요. '만원의 데이트 비슷한 거'라고 만원어치씩 밥을 사 주겠다니까 졸래졸래 잘도 따라오더군요.

 

 

이슬람교인께 친절한 설명을 듣다

 

그냥 가도 되지만 홈페이지(http://www.koreaislam.org)에 들어가서 방문신청 메일을 미리 보내두는 게 좋아요.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한국말 유창한 이슬람교인 분께 이슬람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가 있거든요. 원래는 굉장히 오붓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오고 간다고 들었는데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따라 아파트 부녀회 어머니들께서 잔뜩 몰려와 계시더군요.

 

사람이 많아지니 토론이 아니고 강연이 될 수밖에 없더군요. 그래도 친절한 선생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슬람교에 대해 막연하게 갖고 있던 오해와 편견을 푸는 것이 대부분의 내용이었는데요. 그 동안 제가 다른 문화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었던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유익했어요. 이날 들은 내용을 여러분께 들려드리면서 저도 복습을 해 보도록 하지요.

 

 

이슬람교는 기독교, 불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이고, 신자수는 무려 15억 명가량으로 세계 인구의 약 1/5 정도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슬람교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얼마나 있나요? 이슬람교 하면 그저 터번을 둘러 쓴 남자랑, 자살폭탄테러 같은 유혈충돌만을 떠올리곤 하죠. 이건 이슬람 세계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국 중심의 언론을 통해서만 이들을 인식하고 판단해 온 결과예요. '광주에서 빨갱이가 폭동을 일으켰다' 하는 걸 곧이 곧대로 믿는 거랑 다를 게 뭐예요. 예쁘게 말 꾸밀 필요도 없이 무식했던 거예요.

 

알라신이라는 건 없어요

 

이슬람교에서는 무슨 신을 믿는지 아시나요? 알라신이라고요? 알라신이 어떻게 생겼는데요? 지금 혹시 머리에 뿔이 아홉개쯤 나 있고, 부리부리한 눈매에 턱수염 길게 기른 남자를 떠올리고 있나요?

 

아랍어로 신(神)이라는 뜻이 알라예요. 영어로는 GOD. 순우리말로 풀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야훼라고 불렀잖아요. 히브리어로 신은 ILAH거든요. 일라흐. 일라흐. 야흐. 야훼. 여기에 아랍어 The인 AL을 붙이면 AL ILAH. 알 일라흐. 알라흐. 알라. THE GOD.

 

똑같은 절대자인데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되는 거고 절에서는 부처님이 되는 거고 이슬람에서는 알라가 되는 거라구요. 다시 말해 알라신이라는 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알라라는 게 하나님이라는 뜻이에요. 알라신이라고 하면 '역전 앞'과 같이 동의어를 반복하는 잘못된 표현이 되는 거죠.

 

응? 잠깐만. 예수 그리스도라구요? 야훼? 하나님? 지금 이슬람교 이야기 하는 거잖아요? 맞아요. 좀 전에 말한 건 기독교에 나오는 그 예수님이고, 마찬가지로 같은 하나님 야훼이야기 하는 거예요. 기독교는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거든요.

 

이슬람교 경전인 꾸란(코란)에도 아담, 아브라함, 노아, 모세 같은 메시아의 이야기가 다 나와요. 물론 예수도 나오구요. 이슬람교에서 예수는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서, 최상위 인격체로 추앙 받죠. 기독교의 성경책이랑은 내용이 좀 다르긴 한데, 성모마리아의 수태고지부터 병든 자를 고친 각종 기적들, 사후의 부활 재림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 있어요. 심지어는, 이슬람 경전이면서도 무함마드에 관한 이야기보다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아요.

 

사원정경

( 1 / 18 )

ⓒ 이중현

 

이슬람교는 폭력을 가르치지 않아요

 

다음으로 흔히들 하는 오해가, 이슬람교는 폭력적이라는 거예요.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꾸란을'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과거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메카를 향해서 예배하는 모습이라든지, 오사마 빈라덴이 소총을 들고서 '알라를 위해!'하고 고함 지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슬람 = 테러분자 = 나쁜 놈'의 이미지를 구축한 서구 언론에게 놀아 난 결과예요. 이슬람교의 가르침은 정말 평화로워요.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얼마나 관용적인데요.

 

'한 손에는 칼 어쩌고'라는 말은 과거에 십자군전쟁이 한참일 때 나온 말이거든요. 아까 말 했듯 절대 신은 한 명이고 신을 뭐라고 부르 건, 어떤 방식으로 모시 건 결국은 하나뿐인 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종교의 형태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이슬람교예요. 단지 인간의 언어적인 문제로 이교도로 몰아 부치고, 시비를 걸었던 십자군전쟁이 대표적인 오해고요.

 

따지고 보면 십자군전쟁은 종교전쟁이 아니고 그냥 종교를 명분 삼은 영토 다툼이었는데,

이슬람교랑은 별로 관계가 없으니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죠. 혹시나 흥미 있으신 분은 제가 쓴 유럽 여행기 프라하편이랑 바티칸편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읽어보셔도 좋아요.

 

여튼, 잘못된 생각을 가진 십자군이 먼저 공격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전 지하드를 선포하고 방어한 거예요. 땅 내놓으라고 칼을 들고 찾아온 손님은 칼을 들고 맞이 해야지 어쩌겠어요.

 

요즘의 테러도 마찬가지에요. 살인은 이슬람에서도 가장 큰 죄예요. 사람을 죽인 이는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믿어요. 9·11 테러는 성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구요. 오사마 빈라덴 같은 과격분자들은 대부분의 이슬람국가 내에서도 배척과 타도의 대상이에요. 절대 다수의 무슬림들은 상식과 양심에 따라 인류의 공통된 가치를 지지하거든요.

 

동네 애들 싸움 구경을 할 때도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되는 거잖아요. 제 생각에는, CNN이나 BBC 같은 서구 언론의 주장만을 고대로 재방송하고 알자지라 같은 이슬람방송의 이야기는 전혀 소개하지 않는 한국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봐요.

 

무슨, 이슬람 원리주의자라느니, 서구와 이슬람의 문명충돌이라느니 하는 모호한 말로 우기는 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해요. 원리주의(Fundamentalism)라는 말은 원래 기독교의 과격복음주의자, 우리로 치면 단군상 목 따고 다니던 그런 사람들한테 쓰이던 말인데요. 서구문명을 받아 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이슬람세력에게 자의적이고 악의적으로 갖다 붙인 말이에요.

 

촛불집회하는 사람들더러 빨갱이라고 몰아 세우는 거랑 하나도 다를 게 없어요. 그러면 안돼요. 하도 빨갱이 빨갱이 하니까 요즘은 내가 진짜로 빨갱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막 들고 그러거든요. 문명충돌도 아니고 종교분쟁도 아니고 그냥 석유전쟁일 뿐이구요. 서방세계 언론이 쏟아내는 왜곡된 정보는 15억 이슬람 인구의 문화와 역사를 세상의 그림자라고 모욕하는 행위예요.

 

민간인들을 잔뜩 태운 비행기를 납치해다가 멀쩡한 건물에 꼴아박는 건 커다란 잘못이 맞고, 그들이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인 것도 맞아요. 무슬림도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고 응당 거기에 대해 죗값을 치뤄야 하지만, 그런 무슬림의 잘못을 이슬람 전체의 잘못으로 치부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십자군전쟁이나 마녀사냥, 단군상 참수 같은 일들도 예수의 가르침을 행하는 이들이 잘못한 거지 예수가 잘못된 것을 가르친 게 아니듯이요.

 

꾸란이 맞나? 코란이 맞나?

 

이쯤 이야기했으니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는 얼추 다 풀렸으리라 믿구요. 그럼 이제 꾸란을 한 번 살펴 보도록 하죠.

 

축구선수 'Ronaldinho'는 '로날딘호'가 아니고 '호나우지뉴'라 읽어야 하잖아요. 같은 맥락으로 '마호메트'는 잘못된 표현이고 '무함마드'라는 게 맞다네요. 우리가 '코란'이라고 알고 있던 것도 '꾸란'이라 발음하는 게 더 정확하다 그러구요.

 

하나님이 여지껏 도합 25명의 예언자(메시아)를 통해 계시를 전달했었는데, 모세가 계시를 받아 기록한 것이 구약이고, 다윗은 시편, 예수가 신약. 뭐 이런 식인 거죠. 그리고 마지막 예언자가 무함마드이고, 무함마드가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꾸란이구요.

 

 

이 꾸란은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독특한 문장체계의 경전이라 하네요. 단어 하나하나의 짜임새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암기하기도 쉽고, 그 덕에 이 두꺼운 책을 줄줄줄 정확히 외우는 사람이 지금도 수백만 명이나 된대요. 믿거나 말거나죠.

 

아, 이건 물론 아랍어 기준이에요. 그래서 '아랍어를 모르면 이슬람 교도가 될 수 없다'라는 말도 있대요. '맥점, 두텁다'와 같은 바둑용어를 영어로는 죽어도 풀이할 수 없는 거랑 비슷한 맥락이겠죠.

 

무슬림들이 죄다 멘사도 아닐 텐데 저 두꺼운 책을 무슨 수로 다 외우냐고. 뻥치지 말라고 반박하고 싶어도 아랍어를 모르니 어떻게 알겠어요. 우리말로 번역된 내용을 훑어보며 그런가 보구나 해야죠.

 

그리고 꾸란의 내용은 세상의 모든 경전 중에서 가장 논리적이래요. 모순이 전혀 없대요. 괜히 기독교와의 우열을 가리는 것 같아서 이야기하기가 켕기는 내용이긴 한데요. 괜히 원죄라는 개념을 만들어내서 사람들을 집단적 죄의식에 빠뜨리지도 않고, 다른 종교를 믿는이 더러 지옥불에 떨어진다는 식으로 협박하지도 않아요.

 

제 생각에 족발과 삼겹살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돼지고기를 금하는 거 하나만큼은 심각한 모순 같은데 여하간에 그렇다네요. 꾸란의 다른 내용들은 다 괜찮은가 보죠.

 

이슬람식으로 절 하려고 폼 잡다가 납치당하다

 

사원 안을 살펴볼까요? 하느님께 직접 예배를 드려야 하는 거지 십자가나 그림을 우러러 떠 받들어서는 안된다며, 우상숭배를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내부에는 알라신 동상 같은 건 물론이고, 조그마한 조각이나 그림 한 장 없어요. 다만 꾸란의 내용들이 문자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을 뿐이에요.

 

마침 하루에 5번 있는 예배시간 중 정오의 예배시간이래요. 그래서 여러 사람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중이에요. 무슨 일주일에 한번 교회 가기도 벅찬데 하루에 5번씩이나 절을 하라니요. 사실 예배를 하기 위해 사원에 반드시 올 필요는 없고, 집에서든 회사에서든 메카가 있는 방향으로 절만 한 3, 4분쯤 하면 끝이래요. 목사님 설교 말씀도 없고 일어서서 노래 부르는 시간도 없어요. 교회나 성당에도 일년에 한두 번도 안 나가는 나일롱 신자가 많잖아요. 이슬람에도 마찬가지로 게을러서 생전 기도 안 하는 나일롱 신자들이 많대요. 인간적이군요.

 

 

이슬람식으로 절을 하려면요. 양손과 이마, 코, 양 무릎과 엄지 발가락이 땅에 닿아야 해요. 배워 익힌 건 써 먹어 보랬다고, 우리 모델더러 어설프게 흉내를 시켜보고 사진을 막 찍으려 하고 있었거든요.

 

옆에서 고슬고슬 수염 기른 무슬림형제 아저씨들이 뭐라고 말을 걸더군요. 힘들게도 영어였어요. 제가 해외 유학 경험은 없지만, 그래도 라이온킹 무자막 비디오를 300번쯤 보면서 자란 영어 조기교육의 총아랍니다.

 

"무슬림이신가요?"

"아니요. 하지만 좀 전에 사무실에서 1시간 동안 강의를 듣고 무슬림에 커다란 흥미를 느껴서요. 무슬림이 아니면서 이렇게 절을 하는 게 실례라면 사과할게요."

 

"아, 그렇지는 않은데 이런 것보다는 이슬람교에 대해 보다 깊이 아는게 훨씬 더 중요할 거 같아요."

"그… 그렇겠네요. 하하."

 

"하하. 우리는 홍콩에서 한국의 무슬림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온 사람들입니다. 당신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학생?"

"서울의 대학생인데요. 어느 신문사에서 수습기자를 하고 있는데 여기 이슬람사원을 소개 하고 싶어서 찾아온 거예요."

 

수습기자는 '개뿔'이죠. 하지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달리 표현할 말이 즉각 떠오르지 않았어요. 인터넷 뉴스 게릴라 어쩌고 하면서 어영부영 설명을 할 수는 있었겠지만, 아저씨들 생긴 걸 보니 터번에 수염 덥수룩하게 기른 폼이 인터넷의 '인' 자도 모를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 아저씨들, 제가 말이 좀 통하는 친구라고 생각했나봐요. 아니면 신문이라는 뻥에 솔깃 했는지도 모르죠. 대뜸 하는말이, 시간 있으면 점심 식사를 대접하고 싶대요. 조금 뜬금 없긴 하지만 달리 거절할 이유가 있나요.  정말 색다른 기회잖아요. 제가 언제 그런 진짜 무슬림 음식을 먹어 보겠어요.

 

"Yes, I would like that very much~."

 

여자랑은 밥도 안 먹나봐요

 

그런데 이 아저씨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 여자모델을 보더니 표정이 조금 굳더라구요. 이슬람교는 아직까지 굉장히 남녀차별적인 종교라서 사원 안에도 남자들만 득실거렸거든요.

 

 

우리도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임금님 아버지 입에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이 나왔었잖아요. 남녀칠세 부동석. 서양의 레이디 퍼스트도 사실은 여자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니까 남자가 보살펴야 한다라는 서구식 남존여비사상의 산물이구요. 미국에서도 여자한테 투표권 생긴 지 얼마 안됐어요.

 

요즘은 이란에서 여성이 재판 받다 말고 히잡을 벗어 던지는 일이 벌어지는 등, 이슬람쪽 도 슬슬 여성의 권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양성 평등의 전파가 세계적인 추세보다 조금 더딘 것뿐일 거예요.

 

결국 그 아저씨들은 무슬림형제들이 수두룩히 모여서 식사하는 큰 방을 지나쳐서, 자기네가 기거하고 있다는 작은 방으로 우리를 안내하더군요. 여자랑은 식사를 함께 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는 모양이에요.

 

뭐 위에서 언급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 주면서, 식사는 아니었지만, 중동지방의 특산품인 대추야자를 대접하더라구요. 대추야자는 람세스 같은 책에서나 간간이 보던 거예요.

대관절, 대추도 아니고 야자도 아니고 중간쯤 되는 열매가 어떻게 생겨먹었을지, 맛은 어떨지 궁금했었거든요. 실제로 맛 볼 기회가 생기니 퍽이나 들뜨더군요.

 

음, 야자랑은 별로 연관이 없는 것 같고 생긴 건 딱 대추인데, 속이 꽉꽉 들어찬 게 맛은 우리의 곶감이랑 비슷했어요. 곶감보다 조금 더 맛있던데요. 우리 무슬림 아저씨가 저희를 확실히 맘에 들어하셨나 봐요. 아웃백에서 부시맨빵 하나 싸 주듯, 테이크아웃용 박스도 하나 주더라구요. 저만 맛있다고 잘 먹은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다들 좋아하데요.

 

 

우리도 문화상대주의를 배울 필요가 있어요.

 

예전에 브리짓 바르도라는 프랑스 배우가 우리의 보신탕 문화를 맹비난한 적이 있었어요. '문화상대주의를 배우라'며 손석희 교수를 필두로 온 네티즌이 죄다 들고 일어났었거든요. 

 

근데, 이슬람 사회에 관한 한 우리도 문화상대주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그 동안 그렇게 노력해 온 세계화란, 곧 서구화였던 게 사실이었잖아요. 우리가 본 이슬람권의 사람이란, 거무스름한 피부색에 낯선 외모를 가진 데다 경제적인 약소국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이었어요. "사장님 나빠요. 향숙이 나빠요"하는 블랑카처럼요. 무식하고 더럽고 무서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해 왔었구요. 잘못된 생각이었죠. 이렇게 뒤늦게라도 깨달은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라요.

 

진정한 세계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싶다면, 우리 이웃에 있는 그 15억의 공동체를 알고 싶다면, 그리고 대추야자를 먹어 보고 싶다면, 이태원역 3번 출구, 한남동의 이슬람사원을 찾아가 보세요.

 

생각보다 훨씬 의미 있는 시간이 되리라 확신해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www.slrclub.com, www.prettynim.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참고서적
이슬람과 서양 - 로베르트 반 데 바이어, 좋은글
9.11 테러와 이슬람 세계 이해하기 - 이희수 이원상 외, 청아출판
하룻밤의 지식여행 : 이슬람 - 지아우딘 사르다르, 김영사
무함마드를 따라서 - 칼 W 언스트, 심산


태그:#가짜시인, #이슬람, #알라, #꾸란, #지하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