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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청지에 들어서면 막 목욕을 마친 것 같은 양귀비의 석고조각상이 반나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 화청지는 양귀비와 현종의 로맨스로 더 유명한 곳이다. 화청지에 들어서면 막 목욕을 마친 것 같은 양귀비의 석고조각상이 반나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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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용을 벗어난 버스는 국자를 엎어놓은 것 같은 봉분 곁을 지나는데 바로 진시황릉이다. 2200년 풍화에 원래의 120m 높이는 현재 51.7m로 낮아져 있지만 여전히 그 위엄 있고 신비스런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진시황릉에는 도굴에 대비해 자동으로 발사되는 쇠화살이 설치되어 있고 수은의 강이 흐른다고 하는데 유물 보존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발굴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버스는 진시황릉 인근의 비단가게인 진금당(秦錦堂) 앞에 멈춰섰다. 한낮의 폭염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오후였기에 냉방이 잘 되어 있는 쇼핑센터를 선생님들이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였다.

황제들의 목욕탕, 피한산장 화청지

베이징에 있던 황제들에게 더운 여름을 나던 청더(承德)피서산장이 있었다면 시안(西安)에 있던 황제들에게는 추운 겨울을 나던 피한(避寒)별장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화청지(華淸池)이다. 화청지는 여산 북쪽 기슭, 진시황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당 현종(玄宗, 712~756 재위)과 양귀비(楊貴妃, 719~756)의 사랑으로 유명한 화청지는 6000년 동안 마르지 않고 겨울에도 43℃를 유지하며 시간당 114톤의 온천수가 나오는 곳이다. 그래서 서주(西周) 유왕(幽王)때부터 이곳에 탕을 만들고 황제들이 온천욕을 즐겼다고 한다.

화청지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가무 공연이 열리던 이원(梨園)이 자리 잡고 있고 멀리 리산(驪山)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가 우선 눈에 띈다. 해발 1302m의 리산이 높아 보이지 않는 이유는 화청지 일대가 분지지형으로 해발 500m 정도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일 먼저 하화지(荷花池)를 둘러보는데 연못가로 석류가 멋들어지게 가지를 드리우고 탐스런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가이드는 한 무제 때 장건(張騫)이 실크로드를 통해 들여온 석류가 린퉁(臨潼)의 3가지 보물 중의 하나고 석류씨가 위장병에 좋으며 양귀비도 이곳에서 석류를 직접 재배했다는 설명을 길게 늘어놓는다. 석류가 풍성함을 상징하면서 강한 유혹의 의미를 담고 있어 양귀비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안사변의 무대에도 정치적 고려가...

아름다운 호수 위로 오간청(五間廳)이 있는데 바로 시안사변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1936년 12월 12일 새벽, 장쉬에리앙(張學良)은 100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직접 장지에스(蔣介石) 체포 작전에 나섰고 장지에스는 부상을 입고 정자에 숨어 있다가 아침에 발각되어 구금되었다.

자신의 상관을 구금하고 내전정지(內戰停止)와 일치항일(一致抗日)을 간청한 장쉬에리앙의 이 시안사변은 일본에 대한 항일보다 공산당 토벌에만 몰두하던 국민당의 노선을 수정하게 만들면서 제2차 국공합작을 이끌어내 중국현대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된다.

당시의 총탄흔적이 남아 있는 벽과 깨진 유리 창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장지에스의 사진이 걸린 사무실 등이 역사적 현장감을 더해 준다.

연못을 돌다 보면 리산으로 올라가는 동그란 문이 있는데 그 위로 장지에스가 도망가다 체포된 정자가 있다. 원래 이름은 착장정(捉蔣亭, 장지에스를 잡은 정자)였으나 대만과의 정치적 관계를 고려하여 병간정(兵諫亭, 무력으로 간언한 정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양귀비는 '말을 알아듣는 꽃(解語花)'

당시에는 백옥으로 만들어진 초호화 욕탕이었겠지만 지금은 다소 칙칙한 느낌이 나는 황제의 욕탕이다.
▲ 해당탕(좌)과 연화탕(우) 당시에는 백옥으로 만들어진 초호화 욕탕이었겠지만 지금은 다소 칙칙한 느낌이 나는 황제의 욕탕이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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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옮겨 당대 황실의 욕실로 향하자 역사의 시계바늘이 천 년 이상 돌아 양귀비와 당 현종의 로맨틱한 서사시가 펼쳐진다.

당시는 백옥(白玉)으로 만든 초호화 욕실이었겠지만, 지금은 물줄기가 끊겨 칙칙한 분위기의 욕실이 덩그러니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다. 양귀비가 목욕을 했던 곳이라 하여 귀비지(貴妃池)라고 이름 부쳐진 누각에 들어서자 해당탕(海棠湯)이라는 꽃모양의 작은 욕탕이 있다. 부용탕(芙蓉湯)이라고도 불리는데 물이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배수구에 동전을 넣으면 복이 온다는 믿음에 많은 동전이 꽃잎처럼 흩어져 있다.

연화탕(蓮花湯)은 현종의 독탕인데 그 규모가 커서 '수영장 아니냐?'고 했더니 궁녀들과 함께 목욕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는데 두 물줄기가 분수처럼 솟아올라 한 송이 연꽃처럼 합쳐진다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하니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뜻하고 있다.

현종은 양귀비를 '말을 알아듣는 꽃(解語花)'이라 칭하며 꽃보다 예뻐했다고 한다. 진흙 개펄에서 자라되 오염되지 않는다는 연꽃의 이제염오(離諸染汚)를 양귀비와 현종은 어지럽고 참담한 백성들의 현실은 거들떠보지 않은 채 그들만의 향락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화청지의 주인공은 단연 양귀비인 듯하다. 곳곳에 그녀의 모습들이 새겨져 있다.
▲ 양귀비 동상과 석고상 화청지의 주인공은 단연 양귀비인 듯하다. 곳곳에 그녀의 모습들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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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 모양으로 생긴 성신탕(星辰湯)은 야간에 목욕을 하던 곳으로 지붕이 없어 하늘의 별을 보며 목욕을 하던, 일종의 노천탕이었던 셈이다. 그 물길 위로 황제 전용 탈의실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목욕한 온천수로 난방을 하는 과학적인 지혜가 돋보인다.

황제가 목욕을 한 그 물을 재활용해서 관리들이 또 목욕을 하니 그곳이 바로 상식탕(尙食湯)이다. 황제가 목욕을 하고 남은 물(剩水)은 성스러운 물(聖水)과 중국어발음이 같아서 관리들은 황제가 목욕한 물을 성수(聖水)로 알로 목욕을 했다는 것이다. 상식탕에는 6개의 구멍이 있는데 배수의 기능을 위함인지 발을 씻던 용도인지 가이드는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고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목욕탕 뒤쪽에는 온천수의 수원(水原)이 있어 직접 손을 물에 담가보니 정말 따뜻함이 느껴졌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5마오(毛, 우리돈 100원)씩 받고 온천수에 손을 씻고 세수를 하는 곳이 있는데 실제로 광물을 다량 함유해 피부에 아주 좋다고 한다.

로맨틱한 사랑이 녹아 있는 아름다운 비하각

부는 바람에 양귀비가 머리를 말리던 곳이다.
▲ 담쟁이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비하각 부는 바람에 양귀비가 머리를 말리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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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을 빠져 나오자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듯한 반라의 양귀비 석고조각상이 구룡호(九龍湖)에 요염하게 서 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양귀비가 불어오는 바람에 그 긴 머리를 말리던 아름다운 정자 비하각(飛霞閣)이 담쟁이 넝쿨에 감싸여 있는데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며느리였던 27살의 양귀비를 사랑한 62세의 현종! 35년의 세월을 극복한 그들의 애틋한 '왕니엔리엔(忘年戀)'이었기에 이처럼 세심한 배려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전용 헤어드라이 누각을 마련해 준 현종의 사랑은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 잘 묘사되어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홍안화수(紅顔禍水, 미인은 화근이 된다)라고 양귀비의 아름다움은 곧 재앙을 불러오는 화근이 되니 바로 안사의 난(安史亂, 755~763년)이다. 현종과 함께 촉 땅으로 도망가던 중 반란군에 의해 양귀비는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비익조, 연리지를 꿈꾸던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도 막을 내리게 되며 융성하던 당나라도 슬슬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화청지를 나오면서 문득 중국의 목욕탕 중에는 밀실을 준비해 놓고 퇴폐영업을 하는 곳이 많은데 그 기원이 어쩌면 양귀비와 현종의 이 화청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이 별거냐? 돈 벌어야지!"

자식들의 학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그에게 올림픽은 그저 먼 곳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 즉석 사진을 찍는 대안탑 앞의 아저씨 자식들의 학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그에게 올림픽은 그저 먼 곳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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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기 위해 시안역 근처 식당으로 이동을 하는데 해가 지고 있다. 저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올림픽 성화가 불을 밝히고 2008베이징올림픽의 성대한 개막식이 펼쳐질 것이다. 걸음을 서둘러 식당에 갔으나 TV조차 없다. 연수단이 개막식을 보려고 한다고 하자 식당측에서는 TV를 준비해주어 다행히 그곳에서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볼 수 있었다. 화려한 식전공개행사와 불꽃놀이에 선생님들은 박수와 감탄을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밤 9시 즈음 숙소로 자리를 옮기는데 호텔 로비에도 종업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개막식을 보고 있다. 그냥 숙소에서 개막식을 지켜볼 수가 없어서 무턱대고 택시를 타고 사람들이 모여 있을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에게 개막식 안 보고 왜 영업을 하고 있냐고 묻자 비록 손님은 2/3 이상 줄었지만 사장이 쉬지 못하게 해서 어떨 수 없다고 한다. 먼저 대안탑(大雁塔)에 갔는데 바로 앞 중국 패스트푸드점에서 많은 중국 젊은이들이 음식을 시켜 먹으며 개막식을 보고 있다.

대안탑 주변을 서성이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즉석사진을 찍어주는 아저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말을 걸어보았더니 "올림픽은 젊은이들에게나 관심이 많지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지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이 뭐 별 거냐?"며 "비록 오늘 손님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평상시처럼 12시까지는 영업을 하다 퇴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시안의 중심인 종루(鐘樓)에 가 보았다. 종루 바로 옆에 대형 스크린이 있지만 광고와 올림픽 홍보영상만 반복해서 나올 뿐 개막식 현황이 생중계되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계단식 광장에는 데이트를 즐기는 몇몇 연인들만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천년고도 시안에서 맞이한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시안 종루 앞 패스트푸드점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TV를 통해 보고 있다.
▲ 패스트푸드점에서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있는 시안의 젊은이들 시안 종루 앞 패스트푸드점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TV를 통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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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수 없이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우리나라로 하면 도청쯤 되는 산시성(陝西省) 정부청사 광장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택시를 좀 세워 달라 하고는 내려서 보니 바로 그곳에서 대형스크린을 통해 올림픽 개막식이 중계되고 있었고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자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과 올림픽 기분을 내기 위해서 왔을 뿐이라며 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시민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베이징이 중국을 대표하여 찬란한 중국의 문화를 개막식에서 성대하게 보여주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 시민은 베이징올림픽은 개혁개방 30년의 총합이고 100년의 꿈이 이뤄지는 역사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이라며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면 베이징올림픽은 발전에 대한 자신감에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중화사상이 버무려진, 그 자랑스러운 명함 한 장을 세계에 내미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안을 한 바퀴 돌아 숙소에 돌아오니 성화 최종점화자인 리닝(李寧)이 공중을 돌아 성화에 점화하는 장면에 이어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중국 100년의 꿈'이라는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중국 역사의 가장 깊은 뿌리를 간직한 '천년의 수도 시안'에서 지켜보게 된 셈이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보기 위해 많은 시안사람들이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움집해 있다.
▲ 산시성(陝西省) 정부청사 광장 앞에 모인 사람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보기 위해 많은 시안사람들이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움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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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8월5일~14일까지 중국여행을 기록한 것입니다.



태그:#시안, #화청지, #양귀비, #베이징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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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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