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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60주기 위령제 여수시 신월동 한화공장(옛 14연대주둔지) 입구에서 정문을 향해 행진하는 만장행렬 퍼포먼스
▲ 여순사건60주기 위령제 여수시 신월동 한화공장(옛 14연대주둔지) 입구에서 정문을 향해 행진하는 만장행렬 퍼포먼스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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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 빨간 선혈의
가을 아침,
부끄럽지 않은 기도를 위해
옷깃을 여미었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예순의 세월을 돌아돌아 예까지
아, 해마다 시월이면 가을햇살은 참으로 맑고 고운데
우리의 계절은
이미 우리 것이 아니었습니다

퇴적된 통곡조차 죄가 되어
눈멀고 귀 먼 가슴앓이
아파도 아플 수 없었습니다
(중략)

- 신병은 시인의 '여순사건 60주기 추모시' 중에서

60년 만에 찾아온 애환의 땅. 여순사건 발생당시 국방경비대 14연대가 주둔했던 곳. 지금은 (주)한화 여수공장이 자리 잡은 비극의 장소에서 꼭 60년만인 19일 오전 10시부터 위령제가 열렸다.

여수, 순천, 구례, 광양, 보성, 남해 등지의 여순사건유족들과 전국에서 참석한 민간인피학살자유족들, 시민단체관계자 등이 손에 국화송이를 들고 참석했다. 바로 눈앞에는 잔잔한 가막만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산자락에 꼭꼭 숨어 있는 땅이었다.

1948년 육군총사령부는 당시 14연대장 박중훈 중령에게 "19일 20시 출항하라"는 전보를 보냈다. 제주4·3항쟁을 진압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박중령은 일반전보로 도착해 비밀이 샐 것을 염려해 2시간 늦춘 밤 10시로 변경했다.

오전부터 시작된 군장검사는 저녁 무렵에 끝났고 병사들은 부대내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여수항구(현 구항)로의 이동을 대기하고 있었다. 밤 10시 10분쯤 비상나팔소리가 들리고 연병장에 집합, 지창수의 선동으로 부대를 장악하고 자정 무렵에 수산학교 학생들의 안내로 여수시내 진격을 시작했다.

그렇게 여수를 넘어 전남 동부권을 피로 물들게 했던 비극이 탄생한 이곳은 한화 공장(옛 한국화약)으로 변하면서 일반인들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됐다. 억울하게 부모형제를 잃어야 했던 유족들에게는 한번쯤 꼭 서보고 싶었던 땅이었는지 모른다.

폐쇄된 문과 길 구길로 연결되던 문은 폐쇄된 채 남아 있다.
▲ 폐쇄된 문과 길 구길로 연결되던 문은 폐쇄된 채 남아 있다.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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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위령제는 비극의 씨앗이 싹텄을 공장 내 옛 연병장부지가 아닌 인근도로에서 30m정도 들어간 정문 앞에서 치러졌다.

바닷가 쪽 4차선 도로가 아닌 60년 전 군용트럭을 타고 시내로 달려갔을 옛 정문은 '폐쇄'라는 빨간 딱지를 달고 그날의 참극을 비밀스럽게 닫아놓고 있었다.

먼저 정영만 선생이 이끄는 남해안 별신굿이 시작됐다. '넋맞이굿', '선왕굿'으로 비극을 자초한 넋들과 억울하게 '손가락총'에 원귀가 돼야 했던 넋들을 불러 모으는 굿. 이어 도로 방향 입구에서 참석한 유족들이 '진실과 상생'을 위한 60여 개의 만장을 앞세우고 입장하는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정문 앞을 돌아 위령제제단으로 돌아와 다시 '용선놀음'과 '송신굿'으로 '여는 굿'마당이 끝나고 이어 대북공연과 추모마당 행사, 각 종교별 의식, 헌화분향 순으로 이어졌다.

주승용 국회의원은 직접 제단에 정성으로 제주를 바쳤고, 98년부터 여순사건 진상조사작업을 시작했던 '진실화해위원회' 이영일 기획관(옛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은 이날 만감이 교차한 듯 목이 멘 목소리로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만 60년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또 이 기획관은 "(여순사건의 피해자조사가) 순천은 올 하반기, 여수는 내년 상반기쯤 마무리돼 조사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라고 유족들에게 보고했다.

여순사건60주기위령제 19일 오전 옛 14연대 주둔지에서 열린 여순사건60주기 위령제 사진모음
▲ 여순사건60주기위령제 19일 오전 옛 14연대 주둔지에서 열린 여순사건60주기 위령제 사진모음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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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평화인권예술제 18일 저녁 여수 미관광장에서 열린 여순사건 전야제 행사인 평화인권예술제
▲ 여순사건평화인권예술제 18일 저녁 여수 미관광장에서 열린 여순사건 전야제 행사인 평화인권예술제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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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인 18일 저녁 7시부터 여수시 여서동 미관광장(구 2청사 잔디밭)에서는 전야제 행사인 '평화인권예술제'가 열렸다. 이날 공연은 풍물패 '벅수골'의 길놀이로 시작되어 마무리는 특별초청가수 안치환이 '부용산', '위하여', '꽃보다 아름다워' 등 무려 6곡을 참석한 1천여명의 시민들과 유족들 앞에서 열창했다.

22일에는 여수MBC공개홀에서 '여순사건 지역의 역할과 미래'라는 주제로 토론회(23일 밤11시40분 방영예정)가 열리고, 25일에는 전남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문학심포지엄 등 문학예술제가 열린다. 또 역사순례, 인권영화제, 공동수업 등 이달 말까지 계속 될 예정이다.

한편, 이번 60주기 추모행사에 참여한 여수지역 시민단체와 여순사건여수유족회, 종교단체 등이 '진실과 평화' 위령탑 건립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총모금액은 1억원으로 여수시의 지원이 아닌 순수하게 시민의 힘으로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장소는 여수시 신월동 인근으로 잠정결정한 상태. 모금은 1구좌당 1만원 이상이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박종길 여순사건위원장은 “모금 목표는 1억원이지만, 적게 모이면 돌탑을 쌓더라도 시민의 힘으로만 건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순사건 60주기 주요 행사 일정 및 '진실과 평화' 위령탑 건립 시민모금안내
● 여순사건토론회-"여순사건 지역의 역할과 미래"
 10. 22(수)오후2시/여수MBC공개홀
 사회-박만규(전남대 5.18연구소장)
 토론-홍영기(순천대 교수), 노영기(조선대 교수), 이영일(진실화해위원회 조사기획관),
        주철희(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
 녹화방영-10.23(목)밤11시 예정
 토론회 방청객 참석 신청-(061)651-1530~1

● 문학예술제
 10. 25(토) 오후3시/여수시 화장동 전남학생교육문화회관
 1부-문학심포지엄(사회-박두규 시인)
       발제:현기영(소설가), 임동확(시인)
       토론:채희윤(소설가), 조진태(시인), 주철희 소장
       질의응답
2부-문학예술제
      평화시낭송-나종영, 이재무, 신병은, 김기홍, 이인범, 서애숙, 이민숙, 김진수 시인
      소설낭독-조정랙 작(태백산맥 중), 낭독-전향미 문학낭독가
      춤공연-장순향한반도춤패, 김기인과 스스로춤모임
      여수해원소리굿-오우열(무당시인,소리), 오광호(박수), 박경희(장고), 장현미(바라)
      노래-김현성(가수), 박선욱(바리톤, 시인)


#여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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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어용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세월호사건 후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내고 향토사 발굴 및 책쓰기를 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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