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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남한에서 세 번째로 높은 설악산(1708m). 강원도 속초시와 양양군, 인제군, 고성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최고봉은 대청봉이다.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이 오면 우리 지역 산악회 사람들은 가장 먼저 단풍 소식이 들려오는 설악산으로 저마다 무박 산행을 떠난다.

 

무박 산행이란 것이 산악회 버스 안에서 대충 눈을 붙인 뒤 어둠이 짙게 깔린 이른 새벽부터 산행을 하기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설악산 산행을 뒷전으로 미루기만 했다. 그런데 올 가을엔 말로만 듣던 무박 산행을 나도 한 번 하고 싶어져서 얼굴 아는 사람들이 비교적 많은 '경남 산사랑회' 회원들을 따라나서게 되었다. 

 

  
  ⓒ 김연옥

지난 11일 토요일 밤 8시 30분에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설악산국립공원 오색분소(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에 도착한 시간은 그 다음날인 12일 새벽 2시 30분께였다. 모두들 버스에서 내려 산악회에서 준비한 시래깃국에 밥을 말아서 이른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한계령에서 오색분소로 내려가는 구불구불한 길에서 차멀미가 났는데도 밥을 든든하게 먹으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 허겁지겁 먹었다. 남설악 오색분소에서 대청봉까지 거리는 5.3km. 새벽 3시 10분께 헤드 랜턴 불빛으로 애써 어둠을 가르며 대청봉을 향해 올라가는 등산객들의 거대한 물결 속으로 나도 정신없이 걸어 들어갔다.

 

좁은 산길이나 계단이 나올 때면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한자리에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순간 함께 온 일행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어둠 속에서 낯선 얼굴들만 어렴풋이 보였다. 게다가 차멀미로 계속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 몹시 힘들었다.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서 바라본 경치.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서 바라본 경치.  ⓒ 김연옥

그러나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가파른 돌계단이 끝없이 이어지는 컴컴한 오르막길에는 등산객들의 헤드 랜턴 불빛이 작은 별빛이 되어 여기저기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대청봉 정상에 올라서서 눈부시게 떠오르는 붉은 해를 꼭 보고 싶었다. 그런데 정상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거리서 벌써 날이 밝아 오기 시작해 정말이지,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대청봉 정상에 이른 시간은 아침 7시께. 갑자기 무슨 바람이 그렇게 차갑게 부는지 더워서 배낭에 넣어 둔 바람막이 웃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 정상 표지석에는 등산객들이 자꾸 몰려 표지석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기가 어려웠다. 표지석을 붙들고 사진 찍기에 바쁜 사람들을 향해 잠시만 비켜 달라고 처량하게 소리를 질러 대던 내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우습기만 하다.

 

봉정암에서 웅장한 기암괴석의 절경에 취하다

 

중청대피소  
중청대피소  ⓒ 김연옥

대청봉 정상에서 10분 남짓 걸리는 위치에 있는 중청대피소로 내려가니 등산객들이 북적거렸다. 나는 그곳에서 쉬지 않고 계속 걸어갔는데 1시간이 채 안 되었을까, 소청대피소가 나왔다. 거기서 우리 일행 몇몇과 마주쳤지만 나는 혼자서 백담사에 딸린 암자인 봉정암 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어떤 여자 분이 발을 헛디뎌 넘어졌는지 팔다리를 다쳐서 꼼짝 못하고 앉아 있었다. 안쓰러웠지만 같은 산악회 사람이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 같아 좀 안심이 되었다. 20분 남짓 걸었을까, 거대한 바위들 아래 자리 잡고 있는 봉정암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자 등산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김연옥

웅장한 기암괴석으로 내설악에서 최고의 절경을 이루는 봉정암(鳳頂庵)은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이다. 해발 1244m로 5월 하순에도 설화(雪花)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모셔 온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이 절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봉정암 석가사리탑  
봉정암 석가사리탑  ⓒ 김연옥

봉정암에서.  
봉정암에서.  ⓒ 김연옥

나는 석가사리탑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거대한 암벽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석가사리탑(강원도유형문화재 제31호)은 여느 탑과 달리 거대한 바위를 기단(基壇)으로 삼아 세워졌기 때문에 마치 바위를 뚫고 높이 솟아오른 듯했다. 몸돌 각층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고 2층 몸돌은 1층에 비해 급격히 높이가 줄어들었다. 고려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가사리탑 앞에서 많은 불교 신자들이 소원을 빌며 경건하게 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국수 한 그릇을 베푼 영시암을 거쳐 백담사로

 

  
  ⓒ 김연옥

가을이 곱게 내려앉은 봉정암을 뒤로하고 나는 일행 몇몇과 수렴동계곡 쪽으로 내려갔다. 봉정골, 백운동과 수렴동계곡을 지나 절집 백담사에 이르는 길에는 단풍이 얼마나 고운지 천국이 따로 없었다. 사람이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는 천상의 색깔이라고나 할까. 나무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색깔의 조화를 이루어 내는 자연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 아름다운 단풍 길이 없었다면 끝없이 걸어야 했던 산행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었을까.

 

수렴동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40분께. 그 부근에서 일행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나는 혼자서 백담사를 향해 계속 걸어갔다. 그런데 영시암(永矢庵)에서 오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국수 한 그릇을 베풀었다. 그날 마침 대웅전 상량식이 있었다 하는데, 절집의 인심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다.

 

  
  ⓒ 김연옥

이미 점심을 먹어 배가 부른데도 절집에서 음식을 얻어 먹는 즐거움에 나도 국수를 조금 맛보았다. 영시암은 조선 숙종 15년(1689)에 일어난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서인을 몰아내고 재집권하면서 사사된 김수항의 아들 김창흡이 속세와 인연을 끊을 생각으로 지은 암자라고 한다. 

 

내설악 백담사 앞에서.  
내설악 백담사 앞에서.  ⓒ 김연옥

백담사 만해기념관 앞에 있는 만해 시비와 만해 동상.  
백담사 만해기념관 앞에 있는 만해 시비와 만해 동상.  ⓒ 김연옥

오후 1시 50분께 내설악의 대표적인 절집인 백담사(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이르렀다.  백담사에 들어서면 <님의 침묵>의 만해 한용운이 1905년에 그곳에서 승려가 되어 구도자의 길을 걷게 되어서 그런지 그에 관련된 건물들이 눈에 띈다. 백담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동안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백담사에서 용대리 마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우리 일행은 무려 2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겨우 탈 수 있었다. 산행을 하면서 11시간 가까이 걸은 것도 처음이고 15분 정도 타는 버스를 한참이나 줄을 서서 타 보기도 처음이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서울→영동고속도로→현남 I.C→양양 방면→양양삼거리서 인제,원통 방향→오색주차장
*대구→중앙고속도로→원주 I.C→영동고속도로→현남 I.C→양양 방면→양양삼거리서 인제, 원통 방향→오색주차장
*광주→대구 I.C→중앙고속도로 원주 I.C→영동고속도로→현남 I.C→양양 방면→양양삼거리서 인제,원통 방향→오색주차장




#설악산단풍#봉정암#백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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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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