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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은 밤 근무조라서 밤 9시까지 출근을 해야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일찍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아직 몇 시간 더 남았는데…'라며 몸을 뒤척이다 그냥 일어났다.
 

"저 오늘 좀 일찍 출근합니다."

 

집에선 아이 때문에 시끄러우니 회사에 가서 좀 쉬자는 계산이었다.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고 오후 6시께 집을 나섰다. 버스정류장에 이르러 버스 타려고 기다리는데 저만치 삼거리 길 모퉁이에서 촛불 여러 개가 아른거리는 게 아닌가.  

 

'아직도 미국소 반대 촛불문화제 하나?'

 

시간이 좀 남아 구경이라도 하려고 가까이 가보았다.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든 피켓 내용을 보니, 미국소 반대 촛불 집회는 아닌 듯했다.

 

"오늘 무슨 일로 이리 모여 촛불을 들고 있나요?"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물어봤다.

 

"현대미포조선 하청업체 용인기업 아시죠?"

 

법원 판결도 무시한 현대 미포조선의 시간끌기
 

그리곤 설명이 이어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난 2003년 1월 초 현대미포조선 사측은 사내 하청업체인 용인기업을 폐업시켰고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동 전원해고되어 버렸다. 억울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폐업에 불복해 노동부에 진정을 냈고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 냈다.

 

그럼에도 현대미포조선 사측은 불법파견 판정받은 용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시 고법까지 '종업원지위확인소송'을 했으나 패소 판결을 받았다. 그렇게 끝내기엔 너무도 억울했던 그들은 어려운 가정 생활을 이어가면서 대법원에 항소했고 지난 7월 10일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현대미포조선 도급업체인 용인기업 근로자 30명이 현대미포조선을 상대로 낸 종업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에서 고법 판결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파기 환송하면 고법은 대법원 판결문에 따라 다시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고법은 어찌된 영문인지 아직까지 미적거리며 판결을 보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아보니 현대미포조선 사측이 변호사를 새로 선임하고 계속 새로운 자료를 고법에 제출하여 시간끌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영화 속 대사만이 아니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 또한 국내 최대 대기업 사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으며 지난 2003년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내가 일하는 대기업은 묵묵부답이다. 아직까지 어느 것 하나 바뀐 게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거기에 모인 사람 50여 명 대부분이 작업복 차림이었다. 지난 2003년부터 5년 넘게, 하지 않아도 될 해고자 생활을 하며 복직활동을 하는 그들이 꼭 나의 미래인 것 같아 안타까웠다. 불법 파견이라는데도 대법원에서 복직시키라고 판결했는데도, 현대미포조선 사측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이다.

 

오후 5시 30분 넘어 시작된 용인기업 비정규직 복직을 위한 촛불 문화제는 저녁 7시 다되어 끝이 났다. 집회 참가자도 흩어지고 나도 출근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경찰 버스 한 대가 마을 뒤편에 숨어있다가 휙 하고 집회 장소를 지나 사라졌다. 멀어지는 집회 장소만 유난히 어둡게 보이는 거 같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니 '주먹이 법보다 가깝다'느니 하는 문구들이 영화 속 대사만은 아닌 거 같다.  

덧붙이는 글 | 나는 현대미포조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판정이 났고 대법원에서 원청의 고용인정을 판시 한 것에 대해 종이 신문에 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이제 복직되고 가정이 다시 안정되겠구나'하고 한시름 놓았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대법원에서 다시 복직 시키라고 주장하면 뭐하는가? 대법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현대미포조선 사측은 용인기업 노동자를 아직도 받아 들이고 있지 않은 현실인 것을.

그분들은 지금 가정생활이 말이 아니게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집안의 가장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으니 오죽하랴. 예나 오늘날에나 노동자의 처지는 하나도 변한게 없는듯 하다. 노동자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켜 내려면 처절한 몸부림으로 현실에 맞서야 하니 말이다.

대법원에서 용인기업 노동자의 주장이 옳다지 않은가. 현대미포조선 사측은 하루 빨리 복직을 마무리 지어 지난 5년 동안의 생활 고통을 말끔히 사라지게 해주기를 희망한다.


태그:#비정규직, #불법파견, #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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