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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아무리 해석상의 차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다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근현대사교과서 내용 257개 표현에 대해 심의한 결과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경향신문> <한겨레>의 평가와 <조선일보>의 평가가 극에서 극이다.

 

우선 국사편찬위원회가 낸 '보고서'의 성격과 그 내용에 대한 판단 자체에서부터 완전히 다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16일과 17일 기사와 칼럼, 사설을 통해 "국사편찬위원회가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정 심의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사편찬위 심의 결과에 대한 언론 평가 '극과 극'

 

그 이유는 이렇다. 우선 교육과학기술부가 257개 표현에 대해 구체적인 심의를 요청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 심의 결과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사편찬심의위원회는 대신 49개 항목의 근현대사 교과서 '서술방향'을 제언 형식으로 내놓았다. 교과부가 기대했던 257개 표현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수정'은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향신문>은 16일 기사에서 "257개 표현에 대한 심의를 맡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구체적인 판단을 유보하는 내용의 공식의견을 제출했다"고 평가했다. 17일 사설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두루뭉술한 보고서를 내 사실상 (교과부의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및 그 방식에) 사실상 반대의사를 나타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겨레> 역시 김종철 논설위원이 17일 '일본 우익보다 못한!'이라는 칼럼에서 "교과부의 애초 계획은 국사편찬위원회가 교과서 수정이라는 '역사적 대임'을 맡는 것"이었겠지만 "국편위는 상부의 이런 주문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역사 교과서 서술 방향에 대한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의견만 밝혔을 뿐 뉴라이트 등이 수정을 요구한 250여개의 구체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17일 한 면을 털어 "국사편찬위가 수정교과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국사편찬위가 교육과학기술부에 보내온 '근현대사 교과서의 서술방향'에는 더 이상 학생들이 현재의 좌편향된 교과서로 공부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현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6·25 발발 원인 ▲이승만 정부에 대한 인식 ▲북한 정권에 대한 인식 등에 대해 편향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단정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어떻게 동일한 보고서를 놓고 이처럼 정 반대의 평가를 내놓을 수 있는 것일까. 어느 한 쪽이 크게 오독하거나 아니면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겠다. 그것은 <조선일보>가 구체적으로 국사편찬위의 '서술방향 제언'을 놓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그 수정을 지시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 만큼 과연 그것이 합당한 해석인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는 가닥을 잡을 수 있다.

 

 

<조선>, 두루뭉술한 '서술방향 제언'을 단정적으로 '해석'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선일보>가 지면에 풀어놓은 '해석'은 말 그대로 견강부회가 많다.

 

우선 <조선일보>의 이 기사는 <"점유율 1위 금성교과서 기술에 문제"라는 판단>이라고 제목을 뽑고 있다. 하지만 국사편찬위원회의 '서술방향 제안'에는 특정 교과서를 특정한 표현을 구체적으로 문제삼거나 지칭한 것은 없다. 나아가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그렇게 단정적으로 제목을 뽑을만 한 기사 내용은 없다. 

 

다만 <조선일보>식으로 해석한 국사편찬위의 '서술방향 제안'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깊은 상관성을 서술토록 한 것을 들어 "이같은 지침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금성교과서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는, 기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 있을 뿐이다. '제언'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해 국사편찬위의 확정적 '판단'을 끌어냈다. 기가 막힌 스토리텔링이다.

 

또 <조선일보>는 "6·25와 북한사회 서술부분 다시 쓰게 요구"했다거나 "이승만·박정희 묘사 객관적으로 바꾸게" 했다고 역시 단정적인 제목을 뽑았다. 하지만 이 역시 국사편찬위의 '서술방향 제언'을 놓고 보면 그렇게 단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가령 국사편찬위의 '서술방향 제언'에는 북한 주체사상과 수령유일체제의 문제점, 경제정책과 실패, 국제적 고립 등에 의한 인권 억압, 식량 부족 등 정치·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서술토록 제언하고 있다. 또 북한에 대해 비판할 부분도 함께 서술토록 제언했다. 상식적인 이야기들이다.

 

그것이 <조선일보>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적시한 금성출판사의 "김일성 1인 체제를 강화하고, 김정일 후계체제를 확립해 갔다"는 표현을 '다시 쓰게 요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북한은 …점차 변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금성출판사의 서술을 고치라는 가이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승만 정권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과 독재화와 관련된 비판적인 면을 객관적으로 서술"토록 한 국사편찬위의 '제언'에 대해 그것이 "이승만 정부는 남북 분단 상황을 위해 독재정권을 유지했다"는 교과서 서술을 바꾸라는 가이드라인으로 바로 해석해 낼 수 있는 논리적 비약도 놀랍다. 그것이 어떻게 "이승만 정부는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뉴라이트 쪽 교과서 개정 요구 내용을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사편찬위 '서술방향 제언'에 대한 <조선일보>의 해석은 이밖에도 여러 곳에서 최소한의 형식 논리도 무시한 '과감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런 해석을 뒷받침할만 한 국사편찬위 관계자들의 인터뷰 하나 제시하고 있지 않다.

 

이와는 달리 <경향신문>은 16일자 기사에서 비록 익명이기는 했지만 "세세한 사항보다는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수준"이라는 국사편찬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김종철 <한겨레> 논설위원은 "뉴라이트처럼 현재의 교과서가 편향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다면 자신들의 관점에서 교과서를 써서 검정을 받으면 된다"고 제안했다. 역사학자들의 다양한 역사 해석과 시각에 딴지를 걸 열정이 있으면, 자신들의 역사관에 따라 교과서를 만들어 '검정'을 받고 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선택' 받을 수 있도록 해보라는 권유다.

 

그것은 <조선일보>에도 그대로 권유할만 한 제안이다. 출판사도 있는 만큼 '조선일보 근현대사교과서'를 만들어 당당하게 세상에 선을 보이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

 

김종철 논설위원의 칼럼 제목이 매섭다. "일본 우익보다도 못한!"


태그:#역사교과서 논란, #조선일보, #국사편찬위원회, #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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