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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란 이름이 보여주듯 자신들이 맨 오른쪽에 있는 줄 모르고 교과서를 바라보니 모두 좌편향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교과부는 검정 교과서에 대한 전무후무한 '검열' 시도를 멈춰야 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교과부에 건넨 고교 <한국근현대사> 역사교과서 6종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공개된 직후인 16일 저녁. 윤종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45·서울온곡중 교사)은 "뉴라이트 세력의 정치공세를 대변한 교과부의 수정 요구를 국편도 사실상 거부한 만큼 교과부는 이제 자숙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교과부는 자체 수정팀을 가동해 10월말까지 교과서 수정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문제가 된 교과서로 직접 학생들을 가르쳐온 교사단체인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현재 이 단체는 정회원만 1500여 명이고 온라인회원까지 합하면 모두 8000여 명에 이른다. 전국 중고등학교 역사교사가 7000여 명인 점에 비춰보면 상당한 규모다.

16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에 있는 전국역사교사모임 사무실에서 만난 윤 회장은 국편의 가이드라인을 읽고 있었다. 국편은 지난 15일 교과부에 건넨 6종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분석 보고서에서 단원별 서술 방향 등 모두 49개 항에 걸쳐 가이드라인을 포괄적으로 제시했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그간 뉴라이트 계열이나 상공회의소 측이 요구해온 주장이 다소 반영돼 있지만 당초 교과부가 기대했던 250여 개 표현에 대한 세부 수정안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다음은 1시간여에 걸쳐 윤 회장과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국사편찬위원회로부터도 교과서 수정 거부당한 교과부

 윤종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윤종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 윤종배제공

- 국편 가이드라인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교과부가 자신의 산하기관인 국편으로부터도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250여 개 표현에 대한 수정을 사실상 거부당한 것이다. 가이드라인을 보니 포괄적인 내용이었다."

- 국편이 왜 가이드라인만 제시했다고 보나?
"애초 좌편향 교과서 논란은 교육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정치공세의 일환이었다. 결국 '학자들의 검토'를 거치는 모양새를 갖추려고 했던 교과부가 얼마나 무리하게 교과서 수정을 벌이려고 했는지 백일하게 드러난 것이다."

- 국편에서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니까, 교과부는 자체 수정팀을 만들어 10월 말까지 수정안을 만들려고 하고 있는데….
"교과서에서만큼은 정치중립성을 지켜야 할 교과부가 칼날을 휘두르는 격이다. 검정교과서가 어떤 것인지 아는 분들이 국정 교과서처럼 메스를 들고, 검열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수정팀을 내세워 수정안을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졸속이면서 전무후무한 정치중립성 훼손 행위다."

- 교과부는 한 달 전부터 현장교사들의 의견수렴을 해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어떤 의견수렴을 했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최대 역사교사 모임인 우리 단체에게는 전화 한 통 없었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말이 있는데, 태도를 돌변한 교과부의 모습과 딱 들어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이명박 대통령까지 '북의 사회주의가 정통성이 있는 것 같이 돼 있는 교과서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속에서 교과부가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지 않나.
"최근 정치권의 발언들은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한 번도 안 읽어 보고 한 말 같다. 금성출판사가 낸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책만 봐도 북한 부분은 20여 쪽에 불과하다. 북한의 객관적인 변화도 적었지만, 경제의 곤란함 등 비판적 시각도 담고 있다. 천리마운동은 9줄 서술에 1줄 비판하고, 새마을 운동은 20줄 서술에 2줄 비판했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 객관적 서술을 뺀 채 비판만 싣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 그렇다면 최근 이른바 좌편향 교과서 논란은 왜 일어나고 있다고 보나.
"'뉴라이트'란 이름이 보여주듯 자신들이 맨 오른쪽에 있는 줄 모르고 교과서를 바라보니 모두 좌편향으로 보이는 것이다. '조중동'이 좌편향, 좌편향하니까 일부 국민들은 정말로 교과서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좌편향을 주장하는 국방부가 낸 교과서 수정안 수준을 바라는 게 속마음일 것이다."

"교과부는 자숙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금성출판사가 발간한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좌)와 교과서포럼이 발간한 대안교과서(우).
금성출판사가 발간한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좌)와 교과서포럼이 발간한 대안교과서(우). ⓒ 박병춘

- 교과서 논란에 대해 주변 역사교사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대부분의 역사교사들은 '좌편향 교과서' 소식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 이념적 문제를 꿈에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모임 회원이 올해 3월 1000명에서 지금은 1500명으로 불어났다. 교과서 논란이 벌어지면서 역사교사들이 우리 모임에 힘을 보태주고 있는 것이다."

- 교과부가 수정안을 만들어 출판사에 수정을 요구할 것으로 보이는데...
"출판사는 고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집필진 가운데 일부가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 교과부가 강요를 하게 되면 검열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

-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특별한 계획을 갖고 있나?
"15일부터 전국 역사교육자 선언 작업에 들어갔다. 교과서 수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초등부터 대학까지의 역사 교원들이 명단을 공개할 것이다. 역사학계에서는 부당한 수정 강요에 대해 가처분 소송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마지막으로 교과부에 하고 싶은 말은.
"교과부는 제발 교과서를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서'로 봐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위험하고 한심한 교과서라면 역사교사들부터 가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교과서를 놓고 벌이는 어른들의 싸움에 대해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다. 지금 교과부가 해야 할 일은 자숙하고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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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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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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