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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힘들게 모은 3억을 쉽게 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옛말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속담을 거꾸로 해석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정부부처 차관,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등 서민을 위해 봉사할 사람들이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하여 가뜩이나 힘든 세상을 더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99개 가진 사람이 1개 가진 사람 것마저 빼앗아야 직성이 풀리는지 가진 사람들이 더 가지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보고 살 맛이 뚝 떨어지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사람만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가진 전부를 다 내놓고도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기쁘며, 돈을 더 벌 수 있다면 조금 더 모아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가슴 따뜻한 사람도 있습니다.

박춘자 할머니 평생 모은 전재산을 사회에 헌납한 기부천사
▲ 박춘자 할머니 평생 모은 전재산을 사회에 헌납한 기부천사
ⓒ 한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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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자(80) 할머니. 그는 남한산성에서 김밥을 팔고, 공사장 식당, 횟집, 슈퍼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해서 모은 전 재산을 아무 조건 없이 지체장애우들을 위해 기부한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부자였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위한 기부와 봉사의 공로를 인정받아 박춘자 할머니는 지난 14일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으로부터 표창을 받았습니다. 표창 받은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기에 힘들게 모은 전재산을 기부했을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16일 할머니가 머물고 계시는 성남 작은예수의 집을 찾아가 힘겹게 인터뷰를 했습니다.

박춘자 할머니는 1929년생으로 서울 왕십리에서 살며 10살이 채 안 되던 때부터 김밥과 옥수수 등을 팔면서 고생스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951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 결혼을 했으나 아이를 갖지 못하자 남편은 새로운 여자를 만나 떠나버렸습니다. 남편 없이 사는 것도 서러운데, 홀로 후처의 자식 2명을 갓난애기로 받아 키웠지만 그 자식들마저 10여살이 되자 친엄마에게 가버려 지금까지 홀로 살아 오셨습니다.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온다 그래요. 됐어요. 그만~~" 아름다운 미담의 주인공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전화를 하니 한사코 거부합니다. 정 그러시면 그냥 얼굴이라도 한번 뵙고 싶다는 간청을 하고 찾아갔더니 사람이 그리웠던지 의외로 말씀도 많이 하시고, 사진촬영도 응해주시면서 취재를 허락하셨습니다.

박춘차 할머니가 기부를 선택한 이유

- 어떻게 평생 모으신 전 재산을 기부하려는 마음의 갖게 되셨는지요?
"젊어서부터 불행도 겪었고, 고생도 많이 하면서 어렵게 번 돈이지만 즐겁게 쓰고 싶었지. 죽을 때가 다된 늙은이가 돈을 싸갈 것도 아닌데 욕심부리면 뭐하나? 그래서 기부한 거야."

박 할머니는 KBS '사랑의 리퀘스트'(불우이웃돕기 모금 생방송 프로그램)를 보시며 ARS를  통해 자주 기부를 해오시다, 몸도 아프고 이제 떠날 때가 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재산을 기부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옆에 있던 전예수요안나 수녀님(성남 작은예수 수녀회)이 보충 설명해 주셨습니다.

- 3억을 기부하고도 지금 지체장애우들과 함께 사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성남동 성당에 다니다가 신부님(최충렬)이 장애우 20여명의 후원을 받는다고 해서 후원금을 내왔는데, 그 장애인들이 살던 전세집이 갑자기 팔려오고 갈 데가 없어 내가 돌봐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서 그런 거지 뭐. 옛날에는 장애우들에게 전세집도 잘 안줘 집 구하기가 힘들었지. 그래서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랬던 거야. 지금은 다 한가족 같아."

성남동성당의 신부님(최충렬)이 오갈데 없는 장애인 20여명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전세집을 얻어 힘들게 보살펴 오다가 힘에 부치게 되자, 성당 신자인 할머니가 그때부터 지체장애우(정신연령 4~5세 수준)들을 20여년째 돌봐왔습니다. 지금은 할머니가 연로하셔서 8개월 전부터 전예수요안나 수녀님과 봉사자들이 장애우들과 함께 생활하며 보살펴 주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전예수요안나 수녀님은 "할머니는 가족도 있으시지만 여기가 편하시다고 안가시려 해요. 엄마처럼 따르고 있는 지체장애우들도 할머니 없으면 찾고 그러죠. 이제 가족보다 더 진한 정이 쌓인거죠" 라고 말하며 할머니의 선행도 선행이지만 이젠 가족같은 정이 더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박춘자 할머니와 장애우들 현재 7명의 장애우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장애우들은 박할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하고 따르고 있다.
▲ 박춘자 할머니와 장애우들 현재 7명의 장애우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장애우들은 박할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하고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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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이나 가족은 없으세요? 왜 지금까지 혼자 사신거죠?
"남동생 2명이 있는데, 다 살 만해. 남동생들에게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곳에 찾아오지 말라고 했어. 그래야 장애인들과 한 식구라는 생각으로 정 붙이고 계속 살지. 내가 아니면 자식같고 가족같은 이들이 어디 가서 살겠어? 그래서 내가 죽어도 불쌍한 이들을 위해 내 남은 재산(성남동 빌라 등)도 다 기부하겠다고 신부님과 이미 약속했어. 다 주고 나니 마음도 편해."

박할머니는 1년 전부터 머리가 심하게 아파 한달에 한번씩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죽을 날이 멀지 않았구나 해서 전재산을 기부했는데, 재산을 기부하고 나니 이상하게 머리도 안아프고 건강도 좋아져서 요즘은 산에도 다니시고, 배드민턴도 치시며 건강을 다시 회복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좋은 일을 해서 하나님이 다시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 앞으로 남은 여생동안 희망과 바람이 있다면.
"다 늙은 사람이 무슨 희망이 있겠어. 좀 더 욕심을 부려 본다면 10년만 젊어져서 돈을 더 벌어서 불쌍한 사람을 더 많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 지금은 힘이 없어서 못해. 나는 그저 마음 뿐이야. 나는 억만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행복을 샀기 때문에 낼 죽어도 여한이 없어. 돈 많은 사람들이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돈을 좀 많이 내놨으면 좋겠어. 죽어서 싸갈 것도 아닌데."

한편의 드라마 같은 할머니의 삶

성남 작은예수의 집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작은예수회 집. 박할머니는 이곳에서 20여년간 돌봐온 장애우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 성남 작은예수의 집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작은예수회 집. 박할머니는 이곳에서 20여년간 돌봐온 장애우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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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현재 작은예수회에서 수녀님, 장애인들과 함께 가족처럼 지내고 있지만 따로 성남동에 빌라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집에서 생활하시는 것보다 작은예수의 집에서 사는게 편하다고 계속 그곳에서 기거하고 계십니다. 할머니 명의로 된 마지막 재산 빌라(싯가 2억원)도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하기로 하고 사후 헌납 공증을 받을 계획이랍니다.

인터뷰는 1시간 30분 정도 했는데, 말이 인터뷰지 주로 할머님이 지금까지 살아 오신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인생을 듣고 있자니 한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리얼 다큐멘터리도 이보다 더 생생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결혼 후 애를 낳지 못해 이혼당한 얘기, 남편이 새로 얻은 후처의 자식 2명을 키우며 겪은 어려움, 공사판 식당일, 남한산성에서 김밥과 닭죽을 팔던 일, 구멍가게, 횟집 일 등 그야말로 60~70년대 우리 어머니들의 고달팠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할머니가 가장 힘들었던 때는 바로 남한산성(성남시쪽 매표소 부근)에서 김밥과 닭죽, 음료수 등을 팔던 때였답니다. 지금은 도로가 뚫려 차가 쌩쌩 달리지만 그때는 그 높은 곳까지 김밥, 닭죽, 옥수수, 음료수 직접 머리에 지고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여름이면 어지러워 쓰러질 지경이었답니다. 그때의 고달팠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할머니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저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한편의 휴먼드라마 같습니다.

박 할머니는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가르쳐 주시는 듯 합니다. 쌀직불금 불법 수령한 고위공무원 등은 박 할머니에게 빨리 가서 어떻게 인생을 사는게 잘 사는건지 한수 배워야 할 듯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Daum) 블로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밥할머니#기부천사#박춘자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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