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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YTN 류희림 선배.

일면식도 없지만 그냥 편하게 '선배'라고 부르겠습니다. 1985년 KBS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1994년 YTN으로 옮긴 뒤 청와대 출입기자,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고 해외방송팀장까지 맡았던 화려한 이력을 가진 언론계 대선배이니까요.

전 몰랐습니다.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류희림'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기 전까지…. 가족 같았을 YTN 후배들에게 그 잔혹한 징계를 내린 선배들은 모두 저널리즘의 본령과는 담을 쌓으신 분들인 줄만 알았습니다. 특히 류 선배에 대해 "일부 조합원의 멱살을 잡고 취재기자를 밀치기도 했다" "구본홍 사장이 참석한 랜덱스 행사를 매년 생중계했다고 허위 보고했다"는 주장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습니다.

이 책 지은이가 정녕 류희림 선배 맞습니까

 지난해 류희림 YTN 대외협력국장이 펴낸 <우리는 뉴스에 속고 있다>
 지난해 류희림 YTN 대외협력국장이 펴낸 <우리는 뉴스에 속고 있다>
ⓒ 글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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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책 제목부터 범상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뉴스에 속고 있다>. '미디어의 함정'이란 수식어가 달렸고 '현장의 기자가 해부하는 뉴스의 허상과 진실'이라는 부제가 붙었습니다. 2007년 7월 10일 세상에 나왔으니 1년이 조금 넘었군요. 400쪽에 이르는 꽤 두꺼운 책입니다.

(그 해 10월 홍익이스트 정기세미나에서는 '차세대 리더'들에게 '언론의 공정성과 객관성', '뉴스에 속지 않는 방법' '한국의 언론이 사익 언론에서 벗어나 나아가야 할 대안'을 강의하기도 했더군요.)

참 좋은 책입니다. 2쇄 찍으셨더군요. 언론 지망생들이나 갓 입사한 막내기자들에게 필독서로 꼽힐 만한 책입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미디어의 속성을 잘 짚었고, 여러 매체를 훑어 뽑아낸 오보 사례들은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습니다.

특히 "어떻게 저널리스트들을 필기시험으로 뽑나"면서 한국식 언론고시에 문제를 제기한 부분은 적극 공감합니다. 그런데….

이 책 지은이 류희림이 지금 YTN에 있는 그 분 맞는지요? 이렇게 기자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저자 류희림이, 10월 6일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대량 징계를 내린 인사위원 류희림과 동일한 인물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함정을 파고있는 공범자' 반성한 것 맞습니까

 지난 10월 2일 구본홍 사장이 참석하고 YTN이 생중계한 '랜덱스 2008' 행사장에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과 설전을 벌이고 있는 류희림 YTN 대외협력국장(왼쪽)
 지난 10월 2일 구본홍 사장이 참석하고 YTN이 생중계한 '랜덱스 2008' 행사장에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과 설전을 벌이고 있는 류희림 YTN 대외협력국장(왼쪽)
ⓒ 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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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선배는 책 머릿말에 이렇게 썼습니다.

"지난 20여년간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오면서 뉴스 콘텐츠를 전하는 미디어가 어떤 속성을 가지고 때때로 잘못된 사실을 전달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죄책감을 느낀 적이 많았다."

제가 YTN을 취재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피곤에 찌든 얼굴이면서도 혹여 집회 시각에 늦을까 택시에서 내려 달려오고,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래며 집회에 참석했다 곧바로 취재에 나서는 YTN 후배들은, 바로 선배가 책에서 지적하던 그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우직하게 발버둥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나 역시 때로는 나 자신도 모르게 그 함정을 판 공범자로서의 역할을 한 적도 없지 않다. 그러한 역할이 크든 작든 사람들에게 잘못된 미디어의 함정에 빠지게 한 데 대해 깊이 반성한다."

이런 반성 위에서 책 한권을 세상에 냈는데 지금 다시 '함정을 파고있는 공범자'가 되어 있다는 생각, 그래서 괴롭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는지요. '자신도 모르게' 한 역할에 대해 반성하셨다는 분이, 지금처럼 YTN 사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이 시기에 아예 대놓고 후배들에게 비수를 날리다니요.

미국 버지니아 공대 참사에 대한 한국 신문의 보도 흐름을 짚으면서 '모순'이란 단어를 사용했더군요. 2007년 이 명저의 지은이 류희림과 2008년 YTN 인사위원 류희림을 비교하며 가장 적확한 표현이 바로 '모순'일 것입니다.

2007년 류희림과 2008년 류희림의 '모순'

가장 핵심적인 말은 책 35쪽에 나옵니다. 1장 '함정을 팔 준비를 하는 미디어들' 중 '뉴스는 진실인가'라는 문단에 삽입된 문구입니다.

"…군사독재정권이 끝나고 민주화가 됐다고는 하지만 우리 언론들이 정치적·경제적으로 과연 독립된 보도를 하고 있는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사주가 있는 언론은 사주의 이익을 위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고 경제적으로 빈약한 언론은 광고주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이 다음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사주도 없고 경제적으로 튼튼한 언론이라고 해서 아무런 외풍을 받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사장 임명에 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이른바 공영방송은 방송대로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 언론이 최대의 언론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국민을 외면하고 정치권의 손을 들어주는 파렴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뜻밖에도 2008년 YTN에 이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YTN 간부들이 사원과 국민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런 우려에 대한 정답이 같은 책에 나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뉴스 콘텐츠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건전한 양식에 달린 것이다. 저널리스트로서 올바른 양식을 키우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모순'입니다. 저는 이렇게 썼던 분의 '저널리스트로서의 건전한 양식'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구본홍 사장 선임 이후 출근 과정에서, 인사위원회 개최 과정에서, 징계 발표 과정에서 저는 류 선배가 이 건전한 양식을 표출해 '노'라고 얘기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구본홍 사장설'이 나돌 땐 후배들에게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가, 구 사장 선임 이후에는 후배들과 낯붉힌 적이 많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후배들이 얼굴에 눈물이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류희림은 그들을 어루만지고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칼을 잡았습니다. '저널리스트로서 올바른 양식'을 강조하고 있는 책 내용과 또 '모순'입니다.

책에 갇혀있는 류희림의 소신

 지난 8월 6일 오후 YTN 사장실 문 틈 사이로 찍은 간부들 사진. 맨 왼쪽이 류희림 대외협력국장
 지난 8월 6일 오후 YTN 사장실 문 틈 사이로 찍은 간부들 사진. 맨 왼쪽이 류희림 대외협력국장
ⓒ 김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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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쪽 '정치인들은 어떻게 이미지를 만드나' 편에서는 이렇게 쓰셨습니다.

"…자신한테나 또는 자신이 모시고 있는 상관한테 불리한 기사가 보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치인들은 온갖 압력을 다 가한다. 이는 굳이 정치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정치인들은 그 정도가 대단하다. 한국의 경우 이른바 공영 방송사 사장들의 임명에는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으니 주로 기사를 쓴 당사자보다는 그 윗선을 통해 기사 삭제나 축소의 압력을 가해온다."

구구절절 맞는 말입니다. 이 역시 YTN 노조원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낙하산 사장 반대' 이유 아닙니까. '윗선'이 명확한 사장이 내려왔고 '정치권의 입김'이 여기저기서 작용하고 있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는데도 류희림의 '소신'은 책에 머물러 있습니다

125쪽 '정치인 이미지 킬러, 돌발영상'. 이번에는 '돌발영상'에 대한 찬사가 이어집니다.

"뉴스전문채널 YTN의 간판 프로그램인 '돌발영상'은 정치인의 허상을 깨고 진상을 적나라하게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전 같으면 뉴스로 취급될 수 없는 뉴스 현장에서의 인간적인 면모가 영상을 통해 여과없이 수용자들에게 전달되면서 정치인들의 인격과 그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돌발영상이 뉴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론의 여지가 없었지요. 그러나 그 여지가 생겼습니다. 지금 <돌발영상> 어디 갔습니까? 편성표에서 빠진 지 오래입니다. 돌발영상 '개척자'였던 노종면 노조위원장과 임장혁 기자 등이 해고당하고 정직당했습니다. 아직도 YTN 안내 책자는 두 개척자의 얼굴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개척자'를 쫓아내는 회사는 없습니다.

 YTN 안내 브로슈어에서 여전히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는 '돌발영상'. 그러나 임장원(오른쪽에서 두번째) 팀장 등 두 명의 기자가 중징계당한 이후 돌발영상은 제작되지 못하고 있다.
 YTN 안내 브로슈어에서 여전히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는 '돌발영상'. 그러나 임장원(오른쪽에서 두번째) 팀장 등 두 명의 기자가 중징계당한 이후 돌발영상은 제작되지 못하고 있다.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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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쪽에서는 '상실감 주는 용어를 쓰지 말자'며 '퇴출'이란 단어를 예로 들고 계십니다.

"퇴출된 당사자나 언제라도 퇴출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구성원들에게 주는 심리적 스트레스는 조직 전체에 음습한 기운을 불어 넣는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렇게 잘 아시는 류 선배는 33명을 징계하고 그 중 6명을 해고하는 데 찬성하셨습니까. 국장이나 간부들은 '노'라고 하지 않고, 부팀장들은 난데없이 단식을 시작해 조합원들로부터 '비둘기 단식'(구구단식, 구본홍 구하기 단식)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조직 전체에 음습한 기운이 돌고 있습니다.

 노종면 현 노조위원장은 류희림 국장이 언급한대로 '돌발영상'의 '개척자'였다. 그러나 류 국장을 포함한 인사위원들은 그에게 해임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노종면 현 노조위원장은 류희림 국장이 언급한대로 '돌발영상'의 '개척자'였다. 그러나 류 국장을 포함한 인사위원들은 그에게 해임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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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한 조합원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구본홍보다 더 미운 건 후배들 내치며 권력에 붙은 선배들"이라고요. 또 다른 조합원은 "국장, 부팀장 선배들이 정말 처절히 부끄러워 하고, 우리가 자랑스러워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요. 자신 있으십니까?

<우리는 뉴스에 속고 있다>… 제목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과연 누가 속고 있는 것일까요? YTN 사태를 가만히 바라보면, 속지 않고 속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노종면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원들인 것 같고, 구본홍 사장과 간부들은 자꾸 속고 속이려고 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 후배들이 싸우는 이유,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이유, 바로 '우리는 뉴스에 속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 아니겠습니까. 2007년 7월 '청계산 자락'에서의 그 반듯한 마음을 너무나 빨리 잃으신 것 같아 아쉽습니다.

"책을 낸 사람은 몸을 바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언행일치'를 강조한 말이겠죠.

이제 그만 선배가 그토록 강조하신 '함정'에서 빠져 나오시지요. 자신을 속이지 마시고요. 류 선배가 '노'라고 말했다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래서 일 년 전 <우리는 뉴스에 속고 있다>고 강변했던 그 류희림과 일치한다면, 저는 이 책을 꽤 사서 기자가 되겠다고 하는 제 후배들에게 돌리겠습니다. 약속드립니다.

부디 선배의 소신이 책 행간에서만 아니라 YTN 사옥에도 올곧게 남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YTN#류희림#구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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