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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교육과학부 주관으로 전국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일제히 치른 국가 기초학력 진단 평가는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주장하는 장단점이 서로 다르다.

27년째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과 지내오는 사람으로서, 이번 평가를 찬성도 반대도 아닌 중간 자리에서 ‘객관적으로’ 살펴보려고 애썼다. 창피한 얘기지만, 그동안에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같은 초등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이런 평가를 하든 말든 내가 맡은 담임 학년이 아니면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올해 평가가 예년처럼 일부 표집집단만 보는 것이 아닌 전국에서 같은 평가지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똑같이 치르는 일제고사 형태로 진행됐고, 올해는 학교업무로 평가를 맡고 있어서 진행과정을 누구보다 자세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현장에서 직접 살펴보고, 또 진단 평가에 쓰인 평가지를 분석해 보면서, 이번 평가가 갖고 있는 단점이 생각보다 훨씬 많고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째, 이번 평가는 주인공인 어린이가 무시된 평가다.

이번 평가는 교육과학부 말대로 ‘어린이의 기초학력을 평가해서 부족한 기초학력을 높여주기 위한’ 어린이를 위한 평가다. 그러나 평가 시행 과정을 살펴보면 과연 어린이를 위한 평가였나 의심이 간다.

먼저 어린이들이 보는 평가지가 어린이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은 채 출제되었다.(자세한 내용은 이전 기사를 확인하기 바란다.) 그리고 경기도 교육청의 경우 당일 긴급 업무연락을 세 번이나 보내면서 급하지도 않은 내용은 평가도중인 9시 25분에 보내 9시 30분까지 보고하라고 하고(평가 미시행 학교 · 학생 현황, 교직단체의 평가 무력화 행동 지침에 참여한 교사 현황, 평가 거부 또는 답안지 미제출 교사 관련 보고), 10시 1분에 보내 10시까지 보고(초3 기초학력 진단 평가 응시 현황)하라고 하면서, 정작 인쇄가 잘못된 평가지가 배부된 내용에 대한 것은 해당교과 평가가 끝난 뒤(11시 24분)에 문제 탈락 오류 내용만 달랑 보냈다.

교육청이 보낸 긴급 업무연락으로 시험감독에 몰두해야할 교사들이 감독을 소홀할 수 밖에 없었고, 또 일부학교는 평가도중 결석한 어린이가 있는 담임교사에게 관리자가 아이 이름이 누구냐, 아이 부모 직업이 무엇이냐를 계속 묻고 메시지가 계속 날아오는 바람에 시험감독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한다. 나 역시 시험감독이 아니었지만, 평가담당자로서 긴급연락을 해결하느라 우리 반 수업에 몰두할 수 없었다.

또한, 평가지 인쇄 오류는 전국단위 평가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단지 그 문항뿐만 아니라, 전체 평가 문항을 해결하는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심리적인 영향이 매우 크기에 이런 실수는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인쇄 오류 문제 역시 그만큼 평가를 받는 어린이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둘째, 평가 방법과 내용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학력평가에 맞지 않는다.

교육과학부는 국가수준 기초학력 평가로 전국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의 기초학력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과연 지필평가로 서른 문제로 보는 평가로 어린이들의 기초학력을 진단할 수 있을까?

이미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학력은 범위와 의미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학력의 범위와 의미가 달라졌으면 그에 따르는 평가 역시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학력에 맞게 변해야한다. 그러나 이 시대가 추구하는 학력의 의미는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지만, 평가 방법과 평가 내용은 우리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인 3,40년 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평가 방법은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시대착오다.  

셋째, 초등학생의 기초학력을 잘못 짚고 있다.

교육과학부는 이번 평가 뒤에 어린이들의 성적 결과를 ‘도달’과 ‘미도달’로 통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초등학생의 기초학력 평가 대상은 읽기, 쓰기, 기초수학 뿐이다. 과연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기초학력이 읽기, 쓰기, 기초수학 뿐일까?

27년의 교육경력으로 볼 때, 기초학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듣기’다. ‘듣기’는 단지 국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교과에도 가장 중요하고, 특히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의 교직경험으로 볼 때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는 잘 듣지 못해서이고, 잘 읽지 못하는 아이는 잘 듣지 못하고 잘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잘 쓰지 못하는 아이는 잘 듣지 못해서 잘 말하고 잘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읽기와 쓰기가 안 되는 것은 읽고 쓰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듣고 말하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 더 컸다. 다양한 내용을 많이 들은 아이들이 다양한 말을 많이 하고, 다양한 글을 읽고 이해하며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다. 정확한 발음을 들은 아이가 말도 정확하게 하고, 글도 정확하게 읽고 이해하며, 정확하게 쓸 수 있다. 그래서 듣기는 저학년에서 더욱 필요하고 잘 듣는 버릇을 갖추도록 가르쳐야 한다.

14일과 15일에 보는 초등학교 6학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는 국어와 영어에 듣기 평가가 들어가면서 정작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중요한 초등학교 3학년 기초학력 평가에서는 듣기 평가가 없다. 왜 그럴까?

‘읽기’ 역시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글 속에 들어있는 생각과 마음을 읽는 것이다. ‘쓰기’는 단순히 글자를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마음을 글자로 써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쓰기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자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수준 기초학력 평가에서 이 점을 놓치고 있다.

또한 기초수학의 경우에도 문제 풀이보다 먼저 기초수학에서 중요한 것이 구체물을 직접 조작하며 수 개념을 익히는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계산을 잘 못하는 아이들은 계산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 개념이 제대로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 개념은 추상기호인 숫자로 하면 안 되고, 구체물을 가지고 직접 세어보며 해야 한다. 그런데 지필 평가로 하는 기초수학 평가는 조작활동이 불가능해서 기초수학을 제대로 진단하기 어렵다. 

넷째, 어린이들에게 다양성과 창의성을 죽이는 평가다.

쓰기 25번 문항을 보자.

보기 그림에 우리 나라 대부분 아이들이 본 적도 없고, 보기도 힘든 어부의 모습을 등장시키고 있다.
▲ 국가수준 기초학력 진단평가 쓰기 25번 문항 보기 그림에 우리 나라 대부분 아이들이 본 적도 없고, 보기도 힘든 어부의 모습을 등장시키고 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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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의 기초학력으로 그림을 보고 설명을 하는 말을 쓰게 하면서, 하필이면 도시, 농어산촌 할 것 없이 우리나라 대다수 아이들이 보기도 힘들고 본 적도 없는 어부를 등장시키고 있다. 이런 문제 출제는 초등학생의 교육 내용과 방법이 어린이의 생활과 경험 중심으로 이루어져야한다는 초등교육과정도, 평가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나 하는 일이다.

세상은 점점 다양화되어 우리나라 모든 정책도 중앙집권에서 지역의 특색을 살려 분권화되고 다문화를 인정하며 서로 다른 모습과 표현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인데, 어떻게 된 탓인지 교육의 모습은 도시나 농촌, 어촌, 산촌 그 어디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똑같은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하고 똑같은 평가지로 평가를 받고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몇 개 교과를 제외하고 국정교과서로 전국에 한 권을 똑같지만, 이미 7차 교육과정부터는 지역차이를 생각해서 ‘지역과 학교 사정에 맞도록 재구성해서 지도’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평가는 이상하게도 점점 거꾸로 중앙집권적이고 획일화되어 간다.

원래 평가는 교육의 내용을 평가하게 되어 있지만, 평가 방법에 따라 교육의 모습을 규정하게 되어 있어 전국적으로 똑같이 이뤄지는 획일적인 평가는 전국 초등학교의 교육내용을 획일화시킬 수밖에 없다. 평가지에 나오는 내용이 교육 내용을 규정해서 획일화된 표현으로 굳어질 수 밖에 없다.

쓰기 2번 문항처럼 ‘잔잔하다’는 정답 그림과 ‘출렁이다’ 정답 그림은 이번 평가를 받은 우리나라 전국의 모든 어린이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모습으로 박히게 된다.

‘펄럭이다’, ‘출렁이다’, ‘잔잔하다’는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낸 것인데, 그 모습이 제대로 나타나 있지도 않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한 컷 그림으로 문제를 내고, 그 문제에 정답을 맞출 수 밖에 없는 ‘국가수준’의 우리나라 교육 모습이 애처롭다 못해 창피하기까지 하다.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낸 낱말을 엉성한 한 컷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어서, 이 평가를 본 전국의 어린이들의 표현을 획일화할 위험이 있다.
▲ 국가수준 기초학력 진단평가 읽기 2번 문항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낸 낱말을 엉성한 한 컷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어서, 이 평가를 본 전국의 어린이들의 표현을 획일화할 위험이 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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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우리나라 16개 시도교육청이 내세우고 있는 교육지표에 ‘창의성’이라는 글자가 들어있는 곳이 모두 10개다.

다섯째, 어린이들에게 공부하는 재미를 없애는 꼴이 되었다.

교육과학부에서는 이번 평가가 어린이들의 기초학력을 진단하는 목적으로 쓰일 뿐이라고 했다. 평가 결과 또한 점수가 아닌 단지 각 영역별로 ‘도달’과 ‘미도달’로 통지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평가를 받는 초등학생도 그들의 부모도 달리 이 평가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이 마음 편하게 평가를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즈음 초등교육 현장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질 않다. 인터넷 서점에서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치면  기출문제 풀이를 포함한 예상 문제집이 나오고 있고, 평가 일주일 전부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가에서는 진단평가 대비반이 토·일요일 할 것 없이 밤늦도록 이뤄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진단 평가를 앞둔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3학년 담임으로서 진단 평가 결과에 대해 초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진단 평가 대비 문제를 풀어줄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왜냐하면, 이런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방법은 머릿속에 기초학력이 많이 들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많이 풀어볼 수록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도 평가에 자유로울 수 없다. 학교 단위 평가는 같은 동네 아이들끼리만 비교하면 됐는데, 이제는 우리 아이가 전국 아이들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가철이 되면 동네에 아이들 모습이 사라지고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학원에서도 오직 지겨운 문제집과 씨름하게 된다. 이런 공부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재미,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를 잃고 공부를 지겹게 여길 수밖에 없다.

여섯째, 국가적으로 치르는 일이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평가다.

이번 평가가 한 나라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과학부의 주관으로 전국에 걸쳐 실시된 중요한 국가적 일인가 싶게, 출제된 평가 문항이라든가 평가 시행과정은 매우 허접하다.

같은 급으로 국가적으로 치르는 수능 시험에서는 평가 절차에 문제가 있거나 문제 출제에 조금이라도 오류가 생기면 주관부처인 교육과학부 장관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나서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퇴하기까지 하는데, 이번 국가수준 진단평가에서는 진행과정과 출제 문항에서 상당히 많은 오류가 생겼는데도 평가를 시행한 지 나흘이 지나도록 책임자의 사과가 없다.

말로는 기초교육으로서 초등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와 같은 모습은 초등교육을 무시하지 않고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이번 기초학력 진단 평가가 가지는 문제점을 얘기했다. 이번 기초학력 진단평가가 문제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장점이 분명 있을 터인데, 기초학력 진단 평가를 꼭 치러야하는 까닭인 장점은 무엇일까?

현장에서 국가수준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자세히 지켜본 나로서는 아무리 장점을 찾으려 해도 찾을 길이 없었다. 이 글을 읽고 이번에 실시한 국가수준 기초학력 진단 평가의 장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부디 알려주길 바란다.


태그:#일제고사, #국가수준기초학력진단평가, #일제고사의문제점, #기초학력평가지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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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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