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향을 다녀 왔습니다. 요즘 고향에 자주 가게 됩니다. 어머니에게 고향보다 더 큰 위안이 없어 보입니다.

진정한 고향, 땅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면 고향이 더 향긋한 그리움이 되나 봅니다.

 

고향에 가면 정신이 아주 총총해지십니다. 내가 못 알아보는 옛날 사람들을 어머니는 다 알아보십니다. 어릴 때 헤어진 내 또래 사람들이 몇몇 귀향을 해 사는데 나는 못 알아 봐도 어머니는 한눈에 알아봅니다.

 

"니가 도북띠기 둘째 아들 형포 아이가?" 하십니다.

 

...놀랍습니다.

 

 

 

아름다운 내 고향 마을에 있는 정자. '거연정'. 코흘리개 시절 여기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놀다 홑이불 하나 덮고 자기도 했습니다.

 

"이거 다 우라부지가 맹글은기라. 거연정도 다리도... 저기 저 나무도 우라부지가 심은기라."

 

쳇. 뭐든지 자기 아버지가 다 했대요. 쳇.

 

"어머니. 저기 저 구름은요?"

"저 구름도 우라부지가 하늘에서 맹그런기라."

 

나 원 참.

 

 

지금은 이렇게 다리가 놓여 있지만 옛날에는 비만 오면 떠내려가는 나무다리였습니다. 이 다리 밑에서 빨래하고 멱 감고 했답니다. '거연정'을 더 자세히 감상하려고 아래쪽에 새로 놓인 다리 위로 왔습니다.

 

거연정이 잘 보이는 이곳에서 한참을 어머니 옛 이야기 들었습니다. 내가 다 아는 사연들도 있고 첨 듣는 사연들도 엄청 쏟아져 나왔습니다.

 

제가 할 역할은 겨우 어머니가 이리 가자 그러면 이리 가고 저리 가자 그러면 저리 가고. 큰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모든 상황을 주도하십니다.

 

마을로 들어서서 우리집으로 가는 길에 나락을 널고 있는 동네 할머니들을 만났습니다. 앞쪽 할머니는 환갑이 갖 지났는데 시집오던 날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마도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일텐데 새색시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짓궂게 놀려대는 구경꾼들 때문에 들러리들이 끄는 대로 오가면서 끝내 훌쩍훌쩍 울었던 분입니다.

 

전라도 운봉에서 시집와서 운봉댁이라 불립니다.

 

고향집 앞 마당에 심어 놓았던 호박이 싱싱하게 온 마당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늙은 호박 만들 것은 남겨두고 나머지를 다 땄더니 열 몇개나 되었습니다. 어머니 좋아 하시는 호박잎도 한 자루 따 왔습니다.

 

말려서 겨울에 호박잎 국밥 해 드릴 생각입니다.

작은 호박은 볶아 반찬했고 부침개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큰 호박들은 썰어서 말렸습니다. 모두 어머니가 했습니다.

 

이 좋은 가을날.

치매 부모님 모시고 나들이 길 나서 보라고 하늘이 불효자의 속죄기회를 주시는 듯합니다.


태그:#어머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